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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ny Nov 09. 2017

'다시보기'를 즐기는 나만의 방식

드라마 재방송은
TV에서 틀어줄 때만 가능한 줄 알았어!


20년 전 일입니다. 방송국에서는 매주 주말 한가로운 오후 시간이 되면 시청률이 잘 나오지 않는 그 시간을 메우기 위해 그 주에 했던 가장 핫한 드라마(주로 미니시리즈)를 틀어주곤 했습니다. 일상을 보내느라 본방 사수를 못한 시청자들을 위해 다음주 새로운 에피소드를 시작하기 전 한번 더 기회를 주는 그런 형태였습니다. 드라마 시작 10분 전 TV앞에 앉아 대기하던 학생 시절 어쩌다 가끔 본방 사수를 못하는 때면 이 시간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상황은 바뀌었습니다. 홈페이지에서 '다시보기' 서비스가 등장하고 IPTV 등장으로 거실에서 언제든지 원하는 시간에 드라마를 직접 틀어서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주머니 사정이 아쉽던 학생일 땐 그래도 아직도 주말에 방영하는 재방송 드라마를 봤죠. 하지만 직장인이 되면서 드라마 재방에 돈을 투자! 굳이 재방송을 기다릴 필요가 없이 언제든 원하는 때에 볼 수 있게 됐죠.


한번 더 방송한다는 의미의 '재(再)방송'이 아닌 여러번 직접 볼 수 있는 '다시보기'가 가능해진 겁니다. 상황이 이렇게 바뀌면서 '다시보기 마니아'가 된 제게 가장 좋은 점은 내 감정과 기분에 따라 드라마를 선택해서 다시 볼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내 상황에 맞춰서 보고싶은 드라마가 있을 때 방송 스케쥴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상태에 맞춰 드라마를 시청하는 것이죠.


2017년 11월 4일 토요일 TV편성표. 여전이 주말 오후 시간에는 드라마 재방송이 방영된다. 최근에는 드라마보다 예능 인기가 더 높아지면서 예능도 많은 편.


서사가 아닌 감정 중심의 드라마를 좋아합니다.


전 드라마를 두 종류로 나눕니다. 극에서 주로 다루는 대상이 서사 즉 극의 스토리 흐름인지, 캐릭터의 감정선인지에 따라 드라마 흐름이 크게 달라지죠. 스토리 라인과 캐릭터의 감정이라는 것이 어느 하나를 배제할 수 없는 요소지만 어떤 것에 방점을 두느냐에 따라 드라마의 성격은 크게 달라집니다.


영화 '덩케르크'를 예로 들어보죠. 덩케르크는 전쟁영화일까요? 7월 개봉 당시 덩케르크는 호불호가 매우 갈렸습니다. 이런 질문에 맞다 아니다 라는 답변도 첨예하게 갈렸죠. 제가 내린 답은 '아니다' 입니다.


이 영화는 분명 전쟁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 우리가 봐왔던 전쟁 영화의 공식을 따르진 않습니다. 전장에서 전략 전술을 짜는 장군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전투 구도, 전세(戰勢)와 전략 전술 등이 보이지 않죠. 일부 장면에서 지휘자의 모습을 드러내긴 하지만 극의 중심이 '전쟁'에 맞춰져있지 않습니다.



덩케르크에서 주로 보이는 건 전시 상황을 겪고 있는 사람의 심리입니다. 소재는 전쟁이지만 전시 상황에서 혼란과 불안, 삶에 대한 의지와 죽음에 대한 공포와 같이 전쟁터에 있는 인간의 감정에 초점을 맞춰 극을 진행하죠. 연료가 떨어진 전투기에 물이 차오르자 생존을 위해 유리를 두드리는 조종사나, 전쟁터로 나서는 작은 배에서 구조한 군인이 동료를 죽였음에도 슬픔을 자제하고 끝까지 전쟁터로 가는 선원의 모습은 관객들이 그들의 심리에 공감하고 인간이란 무엇인지 고민하게끔 합니다. 전쟁을 다룬 영화지만 기존 전쟁영화와 다른 느낌을 주는 이유죠.


덩케르크를 본 관객들의 호불호가 나뉘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서사를 중심으로 스토리를 즐기는 관객은 전쟁의 진행과정이 크게 두드러지지 않는 극에 실망감을 느꼈다고 말합니다. 반면 감정 변화에 초점을 맞추는 관객들은 죽음을 앞둔 캐릭터들의 감정이 덤덤하고 세밀하게 묘사돼 영화를 더욱 깊게 즐겼다고 평가하죠. 각자 선호하는 극의 전개방식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겁니다.




전 드라마 재방을 통해 캐릭터의 감정 변화를 살피고 그 속에서 인간의 본성을 고민하는 재미를 느낍니다. 제가 재방을 즐기는 방식인거죠. 이미 봤던 드라마를 다시 보면서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묘한 감정이 스멀스멀 피어나고 그 속에서 삶을 고민해보는 재미도 있습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그리 하냐고 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감정이 중심이 된 드라마는 인간의 본성을 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행복, 슬픔, 불안감, 욕망, 간절함, 열등감 등등 각종 감정을 통해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들죠.


전 그래서 호흡이 긴 드라마를 좋아합니다. 영화는 길어야 3시간인 데 반해 드라마는 대부분 16부작, 20부작 등 10시간이 넘는 동안 스토리를 이끌어갈 수 있죠. 대하드라마는 수개월에서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방영되기도 합니다. (물론 단편극도 있습니다.) 영화가 짧고 강하게 스토리를 압축해서 전달한다면 드라마는 긴 호흡으로 세부적인 감정 변화를 묘사해가며 다양한 각도에서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시청자를 급하게 설득할 필요가 없죠. 캐릭터에 대한 설명도, 감정 변화 흐름도 영화보다 세밀하고 꼼꼼하게 설명해나갈 수 있죠.


개인마다 스토리를 즐기는 방식은 다양할 겁니다. 전 서사보단 감정, 압축적인 전달 대신 호흡이 긴 드라마를 좋아하죠. 이런 관점에서 한번 드라마를 다시 보시면 어떨까요? 나름 재미가 쏠쏠합니다.


참고/

http://blog.naver.com/bigjhj/221139962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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