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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성훈 Jan 06. 2021

vol. 67 - 가난을 읽는 법

코로나로 재택근무가 길어지면서 사무실 청소도 덜하게 되었습니다. 원래는 매주 금요일이나 월요일에 청소를 하는데, 출근하는 인원이 줄어들자 청소 주기가 무너졌습니다. 청소에 대해 별 생각은 못했습니다. 하지만 <가난의 문법>을 읽자 다른 면이 보입니다. 


<가난의 문법>은 재활용품을 수거하는 여성 노인의 하루를 기준으로 사회상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말이 좋아 재활용품 수거라고 하지, 폐지 줍는 사람이라고 해야 이해가 빠릅니다. 이 일을 하는 노인들 입장에서는 도심이 한가해지는 게 좋은 일이 아닙니다. 배출하는 쓰레기가 줄어들기에 재활용품 수거 역시 쉽지 않게 됩니다. 대부분 시청이나 구청에서 가져가긴 하지만, 그럼에도 시차를 두고 남는 것들이 있었는데 그마저 얻기 힘들게 된 것입니다. 한편, 코로나는 다세대 주택가의 ‘종이상자’ 수를 늘렸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택배 박스가 동네에 더 들었을 겁니다. 재활용품도 많이 나오는 곳이 달라진 것입니다. 


산동네에 가까운 우리 마을에는 ‘야채집’이라 불리는 곳이 있습니다. 야채는 없고 폐지와 상자만 쌓인 곳입니다. 알고 보니 동네 사람들이 그 집에 재활용 종이를 가져다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집 아들이 이제는 어머니가 아파서 더 이상 종이를 받을 수 없다는 글을 써붙였을 정도입니다. 아파트 단지는 어떨까요? 그곳은 재활용품 수거 노인들이 발붙일 틈이 없습니다. 모든 쓰레기는 깔끔하게 정리 되어 어딘가로 갑니다. 그런 환경에서 아이들이 자라면, 생의 거친 면은 아무 것도 모르고 자라는 건 아닐지 우려가 되기도 합니다. 


<가난의 문법>은 우리 사회의 ‘가난’을 읽는 법을 배우라는 책 같습니다. 관찰하고, 현상 이면에 놓인 사회-경제적 이유를 체득하라 말하는 것 같습니다. 카트를 끌고 종이를 모으는 우리 동네 할머니들을 조금 더 자세히 읽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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