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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했던 11월이 왔고, 새로운 사람을 만났다.

by 라엘리아나

조금 기대했던 11월이 왔다.
혹시나 했던 10월의 만남은 역시나 그렇게 끝이 났다. 그런데 두 번째 ‘혹시나’가 갑자기 찾아왔다. 감사하게도 상대가 먼저 OK를 준 미차감 만남이었다. 이제 결혼정보회사에 남은 기회가 한 번 뿐인지라 더 반갑게 느껴졌다.


금요일 저녁, 어느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그의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마음씨 좋은 부장님 같은 편안함이 있었다. 대화도 어색하지 않았고, 분위기도 무난하게 흘렀다. 음료를 마신 후에는 그가 미리 예약해 둔 레스토랑에서 식사까지 했다.


그는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온 사람이었다.

경제적인 능력도 갖추고 있었다. 대화도 지나치게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잘 맞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이성적인 느낌이 잘 오지 않았다. 참 신기하게도 ‘별로인데 이성으로 느껴지는 사람’이 있고, ‘사람은 괜찮은데 이성으로는 느껴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는 후자였다.


아마도 ‘남자 사람’과 ‘이성’으로 나뉘는 가장 큰 기준은 결국 외모일지도 모른다. 어디까지나 개인 취향의 영역이라 내 눈에 그는 아직 ‘괜찮은 남자 사람’ 정도로만 보였다. 하지만 첫 만남에 모든 게 결정될 필요는 없다. 천천히, 시간을 두고 알아가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와 달리 그는 처음부터 내가 꽤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만남이 끝나기도 전에 다음날 만나자고 했다. 선약이 있어 사양했고, 그다음 주말에 만나기로 했다. 그런데 그것도 길어 보였는지, 주말 전 평일에도 보고 싶다고 다시 연락을 했다. 업무상 어려워 또 사양했고, 원래 예정된 주말로 다시 맞췄다.


그의 적극적인 태도는 기분이 좋으면서도, 한 번 만났을 뿐인데 너무 서두르는 건 아닌지 걱정 아닌 걱정도 됐다. 아직 판단하기엔 이르고, 서로를 천천히 알아갈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부분에서 이미 우리 둘의 속도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약속 전날, 그의 문자 두 개가 도착했다.

이동 중이라 늦게 확인했는데, 첫 번째는 시간과 장소를 확정하는 내용이었고, 정확히 20분 뒤 두 번째 문자는 ‘만남 취소’ 통보였다. 너무 이상했지만, 지인들과 함께 있는 상황이라 길게 답할 수 없어 일단 알겠다고만 했다.


집에 돌아와 혹시 무슨 일이 있는지 물으니 장문의 메시지가 왔다. 일방적으로 자기만 연락하는 것 같고, 1시간 뒤에 답장이 오는 게 힘들다고 했다.

엥? 그가 나에게 먼저 보낸 문자는 단 두 번이었다. 처음 메시지에 2시간 늦게 답한 건 급한 업무 때문이었고, 그다음부터는 거의 바로 주고받았다. 황당했지만 사실대로 설명하며, 이제 막 한 번 만난 사이이니 연락은 천천히 늘려가면 좋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과거에 가까웠던 사람이 연락을 끊은 적이 있다며 “좋은 사람 만나세요”라고 답장이 왔다.

이게 웬 급발진인가?

20분 답장 없었다고 일방적으로 약속을 취소하고, 내 설명은 들을 생각도 없이 자기 얘기만 쏟아내고, 과거 일을 끌어와 비교까지 한다니. 나는 그에게 ‘가까웠던 누군가’가 아니라, 한 번 만난 사람일 뿐인데. 다음 만남도 잡혀 있었고, 내가 연락을 안 받았던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갑자기 폭주한 걸까.

초반의 풀악셀이 결국 급발진으로 끝나 버린 느낌이었다.


돌아보니 내가 바로 약속 확정 문자를 못 본 게 오히려 신의 한 수였던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자기중심적인 사람과는 어차피 오래가지 못했을 것이다. 여기서 멈춘 게, 지금 생각하면 참 다행이다.


40년 넘게 살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봤지만, 이런 유형은 또 처음이다.

그래도 나는 다음 만남을 기다린다.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는 만큼, 분명 나와 맞는 사람도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나와 속도를 맞춰 걸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나는 계속 찾아갈 생각이다. 조금 늦어지고 있지만, 서두르지 않고. 내 페이스를 지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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