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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로 Mar 02. 2016

《당신에게 몽골을》::스물일곱 번째 기록::

이름 없는 당신을 위하여

스물일곱 번째 기록 - 낙타의 품


  오늘도 달렸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겠고 왜 있는지도 모를 지경이다. 진짜로 적도 가까이에 가고 있는 것인지 처음 맛보는 미친 더위에 진이 다 빠졌다. 고비사막이 한 지역만을 말하는 줄 알았는데 넓게 퍼져있는 곳을 다 고비라고 하고 남쪽 고비(south gobi)라고도 한단다. 어쩐지 이런 불볕더위가 그냥 있을 리가 없었다.

  그나마 나를 구원해주는 것은 은선 언니가 전해준 한 권의 책, 『꾸뻬 씨의 행복여행』이다. 한국에서 읽었던 것이지만 이렇게 지루한 때 생명끈과도 같은 역할을 했다. 책에 집중하면 조금이나마 더위를 잊게 되는 것 같아서 좋다. 다희와 다연이는 인터넷 소설책에 빠져선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처음에는 차 안에서 안전대를 잡고도 비틀거렸는데 이제는 글도 쓰고 책도 읽는 경지에 올랐다. 마치 이렇게 살아왔다는 것처럼 고비사막 여행이 일상이 되어버렸다.

  약 6시간 정도 달려서 또 다른 유목민 네에 도착했다. 가족과 함께 인사를 나누고 우리가 머물 곳을 인도받았다. 오늘은 낙타를 타고 산둔이라는 모래사막을 올라서 노을을 본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퍼져버렸다. 어제 더위와는 또 다른 더위에 꼼짝도 못 했다. 세포 하나하나가 바짝바짝 말라가는 기분이 들었다. 대체 이 사람들은 어떻게 이런 땅에서 생활을 하는 걸까?

  한 숨 자고 일어나 게르 밖으로 나왔다. 다른 집에는 말, 양, 염소뿐이었는데 이 집은 낙타까지 소유하고 있었다. 게르도 4~5개나 있었는데 각각 다른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이 머물고 있었다. 게르 외부에 그들이 널어놓은 빨랫감이 눈에 들어왔다. 이 가족은 고비 쪽으로 여행 오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소정의 금액을 받고 투어, 숙박을 제공하는 듯했다. 가족의 게르 입구에는 태양광 발전기도 있었고 게르 내부에는 한국산 텔레비전도 보였다.

  나는 다희와 함께 낙타를 구경하러 갔다. 낙타도 더위에 지친 것인지 전부 앉아있었다. 사진에서 봤던 것처럼 혹도 2개나 가지고 있었는데 모양이 다 제각각이었다. 낙타의 눈은 정말 컸는데 좀 구슬퍼 보였다.

  우리는 낙타를 타기 전에 주의사항을 전해 들었다. 낙타 위에서 소리를 지르면 낙타가 놀라기 때문에 조용히 해야 했다. 나는 낙타가 앞다리만 세우고 앉아있을 때 주변의 도움을 받아 안착하게 되었다. 그런데 가이드가 낙타를 일으켜 세우는 순간 괴성이 절로 나왔다. “흡” 생각보다 너무 높기도 했고 잡을 곳이 없었다. 낙타가 한걸음,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그 위에 있는 나는 균형을 잡지 못하고 비틀댔다. 하늘 위 태양은 이글거리고 뜨거운 기운이 감도는 가운데 낙타는 느릿느릿 걸어갔다. 우리 게르가 거의 안 보일 때쯤 낙타의 움직임에 익숙해졌다. 날도 더운데 나까지 고생시키는 것 같아서 괜히 미안해졌다. 낙타의 털은 건조하고 거칠었고 낙타의 혹은 생각보다 힘이 없었다. 혹이 조금 휘어져있는 낙타도 있었다. 언제나 말이 많은 다희도 숙연해졌고 다연이도 가만히 있었다. 평소에 내가 걷는 것 보다 느린 속도였는데 이런 사막에서는 낙타를 타는 것이 유리할 것도 같았다.   

  그 누구든 밤바든, 은율이든 그 누구가 문제인 것 보다도 내가 염두 하는 것은 ‘나는 세계를 유랑하고 싶은데……’이다. 그러면 ‘은율이는 안 되잖아’, ‘밤바는 말이 안 통하잖아’의 생각이 연이어 떠오른다. 그러니까 내게는 이 두 가지가 제일 중요한 것 같다. 나와 함께 유목민의 삶을 살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

  낙타가 느릿느릿 걷는 시간이 억만 겁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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