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없는 당신을 위하여
스물여섯 번째 기록 - 누군가의 무게
「엄마, 우리 언제 도착해?」
다희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나 보다. 종착역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나도 그곳만을 기다렸는데 어느새 깨달았다. 종착역만을 생각하기보다는 그 과정을 즐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 고비사막만을 바랄 때는 가는 여정이 피곤하고 고되다고 느껴졌는데, 가는 길에서 만나는 양떼, 나누는 이야기, 지나가는 풍경 하나하나에 기뻐하고 감사하니까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어쩌면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한참 달려가다가 어떤 마을을 지나가게 됐다. 많은 자동차가 세워져 있었고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도대체 어디 숨어 있다가 다들 나타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니마는 시골에서 열리는 나담(축제)이라며 우리 보고 운이 좋다고 말했다. 울란바토르에서 봤던 경기장 보다는 협소했지만 사람이 정말 많았다. 몽골 전통 의상 ‘델’을 입고 있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대기는 우리를 위해 어떤 게르에 들러 양해를 구했고 우리는 주막처럼 꾸며놓은 게르 내부를 구경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전통 마유주와 아롤(가축의 젖으로 만든 시큼한 과자)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대기는 거기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불현듯 어치르 씨와 함께 갔던 레스토랑 일이 생각났다. 어떤 할아버지가 다른 테이블에 가서 음식을 얻어먹는 것을 보고 경악했는데, 몽골인은 눈만 맞으면 친구가 되는 것 같다.
은선 언니와 나는 마유주와 아롤을 해치우느라 울상이 됐다. 마유주도 시큼하고 아롤도 시큼해서 눈물이 찔끔 맺혔다. 게르를 가득 채운 이들은 대가족으로 보였는데 그 수를 양손으로도 셀 수가 없었다. 솔롱거스(몽골어로 한국을 이름)에서 왔다고 하니 아는 한국어를 몇 마디 하시는 분도 계셨다. 우리는 기념사진을 남기고 다시 차로 돌아왔다.
그렇게 3시간을 더 달려 오늘의 종착역에 다다랐다. 이름하여 flaming cliff, 플레이밍 클리프였는데 자연이 만들어낸 절벽으로 아주 광활했다. 미국인인 플레이밍이 최초로 발견하여 플레이밍 클리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했다. 길을 따라 걸을수록 장관이 펼쳐졌지만 한편으로는 땅이 너무 건조하고 메말라 보였다. 사진을 찍고 우리가 머물 숙소로 이동했다. 게르 캠프라 그런지 게르가 일목요연하게 줄지어 있었고 식당도 있었다. 샤워장이 있다는 얘기에 냉큼 달려가서 줄을 섰다. 오래간만에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하니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었다. 밀려있던 빨래를 해결하고 게르로 돌아가는 길에 이탈리아에서 여행 온 노부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우리는 한참 동안 몽골 찬양을 하다가 이내 고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중에서 이탈리아의 청년 실업률이 약 43%에 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까무러쳤다.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이미 과포화 상태라는 것을 체감했다. 젊은 사람들은 기성세대가 갖고 남은 물자를 나눠가져야 한다. 이 시대의 젊은이로 나는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할까.
저녁을 먹고 난 후 대기와 함께 설거지를 하면서 조금 더 진솔한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녀는 나보다 겨우 3살이 많은 28살 언니였다. 남편과는 성격차이로 3년 전에 헤어졌고 5살 난 딸아이와 함께 산다고 했다. 한국에서 알던 언니들과는 사뭇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어서 조금 낯설었다. 대기의 친언니가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데 자기도 한국에 와보고 싶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아직 꿈 많고 하고 싶은 것 많은 대기 언니가 5살 난 딸을 위해 양보하고 희생하는 모습에 가슴이 먹먹했다.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고 고심도 했다.
나도 머뭇거리다가 내 이야기를 꺼냈다. 부모님께서 이혼한 이야기, 엄마의 반대를 무릅쓰고 취업하지 않은 이야기, 내가 살고 싶은 삶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이야기 할수록 내가 가지고 있는 고민이 별 것 아니라고 느껴졌다. 이야기하고 보니 그냥 그럴 수도 있는 삶의 한 모습이었다. 둘 다 영어가 어눌한 탓에 더듬거리며 말했지만 분명 이야기가 통하고 있었다. 우리는 설거지를 다하고도 꽤 오랫동안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오늘따라 달빛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주변에 다른 불빛은 없고 달빛만이 유일한 빛이었는데 대낮처럼 훤했다.
다만 내가 그리운 것은 내 위로 얹어지는 누군가의 무게다. 무엇인가 무게를 느끼고 싶다. 안겨보고 싶기도 하고 안아보고 싶기도 하다. 누군가가 지상에 있는 나를 붙들어 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