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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제적 독립운동가 Aug 20. 2020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 유시민


글쓰기의 희열을 온몸으로 체감하던 시기가 있었다. 

중학생 시절 썼던 "이미지 광고"라는 제목의 논설문이 처음이었다. 코카콜라 병의 잘록한 부분을 거미가 통과하던 광고에 대한 묘사로 시작해서, "아버님 방에 보일러 놓아드려야겠어요"라는 멘트를 앞세운 경동 보일러가 광고에서 제품 기능만 계속해서 늘어놓은 대원 보일러를 압도했다는 내용으로 이어나갔다. 마지막으로 광고에 주어진 15초에서 30초 남짓한 시간동안 소비자의 뇌리에 남기 위해서는 이미지 광고를 해야한다라는 내용의 글이었다. 이후에는 PC통신 유니텔 게시판에 올렸던 에세이들이었다. 일상에서 경험한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을 맛깔나게 글로 풀어놓는 재미와 독자들이 주는 반응에 푹 빠져살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후부터는 대학생 시절 짧게 SNS에 올리던 독후감들을 제외하고는 이렇다할 글쓰기없이 지내왔다. 


몇년 전부터 글쓰기는 계속해서 미뤄둔 숙제같은 것이었다. 

독서를 하고, 직접 실행 및 경험을 하고, 내가 타인에게 설명해줄 수 있을 정도로 수준에 오른 아이템들을 나의 콘텐츠로 삼아 글을 쓰고, 출판을 하고 싶었다. 나의 콘텐츠를 출판을 통해 Archiving하고 나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오랜기간 글쓰기를 멈춘 관계로,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를 모르는 상태였다. 이러한 순간에 접하게 된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은 미뤄둔 숙제를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아주는 책이었다. 


"발췌"와 "요약"만으로도 훌륭한 글쓰기를 할 수 있다. 내 청소년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이었던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작가의 말에 따르면 '거의 100퍼센트 발췌 요약'이다. 최근 가장 인상깊게 읽은 인문학 서적이었던 <청춘의 독서> 또한 "발췌"와 "요약" 형식을 따르고 있다. 텍스트를 읽고 핵심을 요약하는 훈련을 계속해서 해야한다. 일단 거칠게라도 "발췌"와 "요약" 형식의 글을 독후감 영역에서부터 시작해볼 예정이다. 




p.19

첫째, 취향 고백과 주장을 구별한다. 둘째, 주장은 반드시 논증한다. 셋째, 처음부터 끝까지 주제에 집중한다. 이 세 가지 규칙을 잘 따르기만 해도 어느 정도 수준 높은 글을 쓸 수 있다.


p.62

첫째, 많이 읽어야 잘 쓸 수 있다. 책을 많이 읽어도 글을 잘 쓰지 못할 수는 있다. 그러나 많이 읽지 않고도 잘 쓰는 것은 불가능하다. 

둘째, 많이 쓸수록 더 잘 쓰게 된다. 축구나 수영이 그런 것처럼 글도 근육이 있어야 쓴다. 글쓰기 근육을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쓰는 것이다. 여기에 예외는 없다. 그래서 '철칙'이다. 


p.63

(...)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거의 100퍼센트 발췌 요약'이었다. 

'발췌'는 텍스트에서 중요한 부분을 가려 뽑아내는 것이고, '요약'은 텍스트의 핵심을 추리는 작업이다. 발췌는 선택이고 요약은 압축이라 할 수 있다. 발췌가 물리적 작업이라면 요약은 화학적 작업이다. 그런데 어떤 텍스트를 요약하려면 가장 중요한 정보를 담은 부분을 먼저 가려내야 한다. 효과적으로 요약하려면 정확하게 발췌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렇게 보면 발췌 요약이라는 말은 요약이라고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요약에 불과한 <거꾸로 읽는 세계사>가 내가 쓴 모든 책 중에 가장 많이 '읽혔다'.


p.64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대학교에 들어간 후 10년 동안 읽은 책을 요약한 것이었다. 굳이 수준을 평가하자면 요령 좋은 대학 졸업반 학생의 리포트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책을 왜 많은 독자가 오랫동안 읽었을까? 글이 좋거나 내용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상황에 비추어 볼 때 매우 흥미진진한 역사적 사건을 다루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제법 괜찮은 책이었다. 역사에 대한 식견이 모자랐고 문장도 허름했지만 20세기를 만든 역사적 대사건의 원인과 결과, 주요 인물들의 생애와 사상, 그리고 사건과 인물이 세상에 남긴 흔적의 의미를 요약해서 전파하는 데는 성공했다.

지금은 훌륭한 세계사 교양서가 많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는 없어도 괜찮은 책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줄 알면서도 그 책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은 텍스트 요약이 논리 글쓰기의 첫걸음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다. 텍스트 요약은 귀 기울여 남의 말을 듣는 것과 비슷하다. 내가 남의 말을 경청하고 바르게 이해해야, 남도 내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남들이 잘 이해하고 공감하는 글을 쓰고 싶다면, 내가 먼저 남이 쓴 글을 이해하고 공감할 줄 알아야 한다. 말로든 글로든, 타인과 소통하고 싶으면 먼저 손을 내미는 게 바람직하다. 


p.67

독서와 토론의 수준이 높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내가 그때 기초적인 독해와 텍스트 요약 훈련을 한 것만큼은 분명하다. 글쓰기 능력을 기르고 싶다면 누구나 그런 방식으로, 텍스트를 읽고 핵심을 요약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군사독재 시절 운동권의 의식화 방법론'이라고 내치지 말기 바란다. 21세기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강남 학원가에 있는 대입 논술 전문 강사도 똑같은 방식으로 학생을 지도한다. 


p.78

우리가 아는 정보와 논리 중에 스스로 창조한 것이 얼마나 될까? 별로 많지 않다. 사실은 거의 없다. 대부분 누군가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이다.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책, 방송, 신문, 인터넷, 대화를 통해 얻는다. 정보와 논리만 그런 게 아니다. 그것을 담은 어휘와 문장도 마찬가지다. 지식과 정보, 논리 구사력, 자료 독해 능력, 어휘와 문장, 논리적 글쓰기에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는 남한테서 받는다.

그 모든 것을 가장 효과적으로 받을 수 있는 경로는 책이다. 책을 많이 읽을수록 아는 것이 많아진다. 아는 게 많을수록 텍스트를 빠르게 독해할 수 있고 정확하게 요약할 수 있다. 텍스트를 독해하고 요약하는 데 능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은 지식과 정보를 얻는다. 그러면 글을 잘 쓸 가능성 또한 높아진다. 그래서 많이 읽지 않고는 잘 쓸 수 없다는 것이다. 글을 잘 쓰고 싶다면 독서광이 되어야 한다. 책을 읽지 않고 타고난 재주만으로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없다. 글 쓰는 기술만 공부해서 잘 쓰는 사람도 물론 없다. 


p.91

글은 지식과 철학을 자랑하려고 쓰는 게 아니다. 내면을 표현하고 타인과 교감하려고 쓰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공감을 끌어내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화려한 문장을 쓴다고 해서 훌륭한 글이 되는 게 아니다. 사람의 마음에 다가서야 훌륭한 글이다.

글을 쓸 때는 읽는 사람이 누구일지 미리 살펴야 한다. 글을 쓰고 나면 독자의 반응을 점검하고 타인의 평가와 비판을 들어야 한다. 다음에는 그런 것을 더 깊이 고려하면서 글을 써야 한다. 모두가 가명을 썼기 때문에 A의 이름은 그때도 몰랐고 지금도 모른다. 가명도 이젠 기억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시장조사'를 하면서 유인물을 만들었던 창의적 작업 방식은 잊은 적이 없다.


p.131

임재춘 선생은 한 문장에 하나의 개념 (생각, 주장)만 담는다는 글쓰기의 원칙을 설명하려고 이 예문을 들었다. 한 문장에 생각 하나를 담으면 저절로 단문이 된다. 나는 문장을 단문으로 쓰는 원칙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글을 쓸 때 이 원칙을 따르려고 노력한다. 


p.136

첫째는 인간, 사회, 문화, 역사, 생명, 자연, 우주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개념과 지식을 담은 책이다. 이런 책을 읽어야 글을 쓰는 데 꼭 필요한 지식과 어휘를 배울 수 있으며 독해력을 빠르게 개선할 수 있다. 

둘째는 정확하고 바른 문장을 구사한 책이다. 이런 책을 읽어야 자기의 생각을 효과적이고 아름답게 표현하는 문장 구사 능력을 키울 수 있다. 한국인이 쓴 것이든 외국 도서를 번역한 것이든 다르지 않다.

셋째는 지적 긴장과 흥미를 일으키는 책이다. 이런 책이라야 즐겁게 읽을 수 있고 논리의 힘과 멋을 느낄 수 있다. 좋은 문장에 훌륭한 내용이 담긴 책을 즐거운 마음으로 읽으면 지식과 어휘와 문장과 논리 구사 능력을 한꺼번에 얻게 된다.


p.149

칼 세이건 박사는 <코스모스>에 1980년대까지 인간과 생명, 지구와 우주에 대해서 인류가 알아낸 거의 모든 것을 압축해서 담았다. 나는 밤하늘의 별과 내 몸이 같은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큰 위로를 받았다. 내 몸을 구성하는 물질은 그 무엇도 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니 삶이 덜 외롭고 덜 허무해 보였다. 우주의 질서와 운행 법칙을 예전보다 더 명료하게 이해하게 되었고 의식과 지성을 가진 생명체로 세상에 온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 새삼 깨달았다. 

(...)

비록 최신 연구 결과를 반영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책은 언론에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하는 새로운 과학적 발견과 그것이 야기한 정치적, 윤리적, 사회적 논쟁을 이해하는 데 충분한 기초 지식을 제공한다. 여러 번 읽으면 책이 담고 있는 모든 개념, 어휘, 개념의 상호 관계, 새로운 과학적 사실에 대한 해석, 간결하고 품위 있는 문장을 한꺼번에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 책 한 권이 때로는 기적이라 해도 좋을 만한 정신의 변화를 일으키기도 한다. <코스모스>가 바로 그런 책이라고 생각한다. 


p.174

소리 내어 읽어봄으로써 못난 글을 알아보는 방법은 지극히 단순한 원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언어는 말과 글이다. 생각과 감정을 소리로 표현하면 말 (입말)이 되고 문자로 표현하면 글 (글말)이 된다. 말과 글 중에는 말이 먼저다. 말로 해서 좋아야 잘 쓴 글이다. 글을 쓸 때는 이 원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 

(...)

글쓰기도 노래와 다르지 않다. 독자의 공감을 얻고 마음을 움직이는 글이 잘 쓴 글이다. 많은 지식과 멋진 어휘, 화려한 문장을 자랑한다고 해서 훌륭한 글이 되는 게 아니다. 독자가 편하게 읽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쓰는 것이 기본이다. 기본을 지키기만 하면 최소한 못나지 않은 글은 쓸 수 있다. 여기에 나름의 개성을 입혀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면 훌륭한 글이 된다. 그런 글은 저마다 다르게 훌륭하다. <토지>와 <자유론>과 <코스모스>가 바로 그렇다. 서로 다르지만 모두 훌륭한 글이다.


p.264

기술만으로는 훌륭한 글을 쓰지 못한다. 글 쓰는 방법을 아무리 열심히 공부해도 내면에 표현할 가치가 있는 생각과 감정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훌륭한 생각을 하고 사람다운 감정을 느끼면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그런 삶과 어울리는 글을 쓸 수 있게 된다. 논리 글쓰기를 잘하려면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떳떳하게 살아야 한다. 무엇이 내게 이로운지 생각하기에 앞서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지 고민해야 한다. 때로는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원칙에 따라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기술만으로 쓴 글은 누구의 마음에도 안착하지 못한 채 허공을 떠돌다 사라질 뿐이다. 


p.273

우리는 글쓰기와 관련하여 남달리 유리한 문화적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정보통신혁명이 불러온 문명의 변화를 쉽게 받아들이고 활용할 수 있었다. 정부를 수립한 1948년 경에는 절반 가까운 국민이 글을 읽고 쓸 수 있었다. 수천 년 왕조국가 시대와 40여 년 식민 지배, 3년에 걸쳐 300만 명 넘게 죽고 다친 내전의 비극을 연이어 겪은, 지구 행성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였지만 우리는 지구촌 다른 신생국가에는 없었던 문화 자본을 보유하고 있었다. 지식인을 관리로 등용한 고려 시대 이래의 국가 전통과 한글이라는 독자적 문화였다.

(...)

다시 말하지만 글을 읽고 쓸 수 있다는 것은 문명이 선사한 축복이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한껏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이 축복과 특권이 좌절감과 열등감의 원인이 된다면 그만큼 불행한 일도 없을 것이다. 우리는 시대의 축복을 받아들이고 특권을 즐겨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글쓰기 훈련이 덜 고되게 느껴진다. 이것이 내가 직업적 글쟁이로서 자주 쓰는 정신승리법이다. 


p.289

시간표를 만들고 나면 첫 번째 문항부터 논제와 제시문을 되풀이해서 천천히 읽는다. 충분히 이해했다는 느낌이 들면 논제와 제시문을 보면서 글의 구조를 설계하고 꼭 넣어야 할 핵심 단어를 메모한다. 같은 문항에 속한 복수의 논제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논제 전체를 보면서 논리를 세우고 핵심 단어를 메모해야 한다. 시험 시간의 최고 3분의 1에서 최대 절반까지 이 작업에 쓰는 게 좋다. 

충분한 시간을 들여 필요한 기초 작업을 마치면 메모한 단어를 연결해 문장을 쓰기 시작한다. 문장은 단문을 원칙으로 한다.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뜻의 흐름을 따라 단문을 연결해가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복문을 쓰면 주술 관계를 맞추면서 뜻을 분명하게 드러내기가 어렵다. 쓰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고쳐야 할 곳도 늘어난다. 문장의 멋을 부리려고 하는 것은 절대 금지다. 

한 문항에 속한 모든 논제에 다 대답하고 나서 다음 문항으로 넘어가기 전에 그 문항의 논제와 제시문을 다시 한 번 읽는다. 혹시 오류가 있는지 점검하고 필요한 내용 수정과 문장 교정을 한다. 같은 방식으로 나머지 문항도 준비한 시간 계획에 따라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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