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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leblue Sep 26. 2017

글줍 #3

당신의 궤적




겨울이다.
눈밭에 난 선배들의 발자국을 따라
걸음을 옮긴다.
발밑으로 전해지는 한기寒氣가
복되고 서늘하다.

한 발짝 또 한 발짝
짐작으로 알던 것을 몸으로 읽히며
누군가의 보폭을 쉽게 판정하지 않는 법을 배운다.
그 자리에 다른 짐작을 앉힌다.

길 위에 ‘방향’을 만든 것은
당신의 무게.
혹은 이 걸음과 다른 걸음 사이에 놓인
고민의 시차時差

가끔 그 고민이 궁금해
당신이 쓴 말과 쓰지 않은 말,
쓸 수 없던 말들을 가늠해본다.
무릎 꿇어 그 자국에 손을 대본다.
몇 명이 지나갔는지 모를
겹겹이 발자국에 눈이 시리다.

한 발짝 또 한 발짝
겨우 깊어져가는 겨울.

길에서 과분한 소식을 들은 데다
발도 시려서, 방정맞게 좀 움직여볼까 하다
능청은 잠시 고요에게 맡겨두기로 하고
허공에 입김을 내뱉으며 맑게 웃는다.

그런 뒤 조금 더 딴청을 피우려다가
문든 나와 같은 시대에 같은 자리서,
글을 쓰고 있는 이들을 떠올려본다.

주머니서 ‘동료’라는 말을 꺼내 한참 들여다본다.
그러곤 목례하듯,
그 이름에 입 맞추려
고개 숙인다.


김애란/이상문학상 수상 소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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