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과정을 소중히
우울감이 극에 달했다.
이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힘들었다. 난 분명히 학교에 가서 사람들이랑도 잘 지내고 얘기하고 할 일도 하는데 우울함과는 거리가 멀거야.라고 계속 생각했다. 21살부터 26살까지 나는 무기력해져 갔고 의욕이 상실됐으며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자존감과 더불어 자신감도 땅끝까지 내려갔다.
그 과정 속에서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아서 1년이라는 휴학도 해보고 전과도 해보려고 했다. 그렇게 잠시 쉬어가면서 내가 놓쳤던 것을 하나씩 줍기 시작했다. 나의 취향을 쌓아 올리기 시작했으며 어느 정도 크고 작은 성취를 이루면서 나도 이젠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수준에 있구나 라는 안도감이 찾아왔다.
엄마는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칭찬을 많이 해주기 시작했다. 어떤 특정한 것에 대한 칭찬이라기보다 너는 다방면에 뛰어난 애야, 학교에서 잘 버티고 있는 것도 잘하고 있는 거지, 라는 식으로 어느 정도 나의 자존감을 회복시켜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자신감이 없어지자 모든 칭찬들에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실제로 빈말이었는지 진심이었는진 모르겠지만 넌 이런 걸 잘하잖아 라고 말하는 동기의 말에 기분 나빠했다. 날 놀리는 건가? 싶어서. '잘한다'의 세상에 갇힌 나머지 소위 말하는 '잘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작업에 내 기준을 뺏겨버렸다. 이 사람들은 잘하는 사람들이니까 내 생각보다 더 맞을 거야. 이런 위험한 생각이 나를 지금 멈추게 했다.
그러다 보니까 내가 정말 관심 있는 걸 놓치고 어떻게 하면 그럴싸한 주장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 생각에 너무 깊이 빠져버렸다.
현실이 너무 내 뜻대로 안 되고 실망스럽자 잠을 계속 자기 시작한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일상을 잃어버렸다. 미팅 전날 밤새고 미팅 끝나고 이틀 정도를 앓아누웠다.
벼락치기식 미팅이 싫어서 오늘 교수랑 만나서 짧게라도 얘기하려고 했는데 교수가 일찍 학교를 떠나버렸다.
당장 해야 하는 일도 많지만 이 무기력감과 우울감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서 기록을 남겨야겠다. 오늘의 나의 기분은 어땠는지 오늘 나는 누구와 어떤 대화를 했고 무얼 배웠고 어떤 일을 하면서 행복했는지.
학교에 대한 애정이 하나도 없고 얼른 탈출하고 싶은 마음뿐이지만 마냥 싫어하기보다 내가 일상을 기록하다 보면서 내가 발견하지 못했던 따뜻함을 느끼면 좋겠다. (그러지 않고 꾸준히 싫어하게 돼도 상관은 없다)
이 기록의 끝은 12월에 있을 나의 졸업도 아니고 취업도 아니고 그냥 내가 언젠가 이 터널에서 벗어나면 그걸 끝이라고 생각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