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정 Apr 25. 2023

"아니끼로 모시겠습니다"

서정기자의 색낄있는 취재수첩 <1>  프롤로그

                          프롤로그



   이 글은 오랫동안 간직해온 취재수첩의 기록을 각색한 글이다. 굳이 설명을 하자면 기자 서정이 40여년 동안 언론계에 종사하면서 보고 듣고 배우고 경험한 내용을 기자적으로(기자의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각색하고 설명한 취재활동기다.


   기자(記者)는 기사(記事)를 쓰는 게 직업이고 기사를 써야 기자이지만, 취재를 하고서도 기사를 쓰지 않는 경우가 있으며 쓰고 싶어도 쓰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은 그런 경우가 많다. 똑똑하고 오기가 있는 기자는 뒷날 간접적으로 꼬집으며 얘기거리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은 기자의 정도가 아니다.


  여기까지 읽으신 독자는 어렴풋이 시정기자의 꼬장꼬장함과 줏대와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나오지 않을듯한 냉철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어쩌랴! 꺾일지언정 휘어지지 않는 기자정신, 칼보다 강한 펜의 근성을 자긍심으로 삼아 '한번 기자는 영원한 기자'라는 명예를 천금보다 값지게 여기는 프로페셔널인 것을....


  이 글을 읽어가는 곳곳에서 독자들은 전혀 낯선 사고방식과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사건사고의 전말 그리고 결코 납득할 수 없는 인간군상의 행태를 목도하게 될 것이다.


  필자는 바로 그러한 부분에서 역사와 문화와 전통이 어떻게 왜곡되고 변질되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밝히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또다른 왜곡과 변질을 재생산하게 되리라는 두려움을 안고서, 하고싶은 이야기, 해야 할 이야기를 정리하고자 한다. 독자의 깊은 해량을 기대한다.


                                                                                    < 2023년 4월에>





                    "아니끼로 모시겠습니다"

    

  "아니끼로 모시겠습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취임 후 처음으로 마련한 출입기자단과의 저녁식사 자리에서 신임장관이 나에게 다가와 건낸 첫마디였다. '아니끼'란 일본어로 돈독한 관계의 우리말 '형님'을 뜻하는 단어다. '야쿠자 세계(일본의 폭력집단)'에서 주로 사용하는 말이다.

  그런 비속어를 일국의 국무위원인 장관이 출입기자단 전체도 아닌 개인에게 표현할 수 있는 일인가. 괴이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것도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배석한 휘하 국장급 간부들과 일간 종합지 기자들이 보고있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라 모두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1980년대 후반 출범한 노태우 정부(1988.2~1993.2)의 국정 최대과제는 국민의 주거 안정책이었다. 그래서 추진한 게 '주택 200만호 건설'이다. 취임공약으로 내세운 야심찬 목표였으나 달성이 어렵다는 중론이 지배적이었다.

  군인정신으로 밀어붙이겠다는 정책을 수행하는데는 역시 군인정신이 투철한 군인출신이 필요했다. 당시 주택공사(지금의 LH공사)사장을 맡고있던 김아무개는 갓 전역한 3성장군 출신이었다. 그는 군특수부대 사령관직을 수행하던 똑똑한 군인이었고 노태우 대통령의 측근휘하였다.

  그런 그에게 있어 대통령에 대한 충성심이 어땠을까를 짐작하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 충성심이 산하기관 사장 취임 석달만에 장관으로 밭탁되는 밑거름이었으리라.     

 

  그가 주택공사 사장에 선임된 뒤 제일 신경을 집중한 것은 주택건설 현장을 찾아 부실공사를 단속하고 안전사고 예방을 당부하는 일이었다. 그러는 와중에 사고가 발생하고 말았다. 필자가 근무하는 신문에 '주택공사 부실공사 여전'이라는 제하의 3단짜리 기사가 보도됐던 것이다. 노발대발한 사장이 즉시 현장을 찾아 확인한 바, 신문에 날만큼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다.

  장관에 발탁될 것 같은 시기에 껄쩍지근한 신문기사가 괘씸하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신문사를 찾아가 담당자를 혼쭐내겠다며 설치는 사장을 참모들이 겨우 말렸다. '사실이 아닌 것도 일단 신문에 나면 사실로 인증된다. 그렇다고 이를 항의하면 사실성이 굳어질 뿐, 득이 없다'는 설득을 받아들여 분을 겨우 참았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무결점 신조에 흠집을 냈던 신문사와 신문기자를 잊지 못했다.     

                                       편집국을 찾은 노태우 대통령 후보자와 첫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1주일 쯤 후, 

건설부 출입기자단과의 오찬회동이 있었다. 당시 24개 언론사의 출입기자와 주택공사의 간부들이 참석한 자리여서 자못 떠들석한 분위기였는데 접대 당사자인 김사장이 주위를 둘러보며 갑자기 "여기 ××신문 출입기자가 누구요!"라고 언성을 높였다.

그는 바로 자기의 건너편에 앉아있는 필자를 알아보지 못하고 "이 따위로 기사를 쓰는 기자가 무슨 기자요!"라며 흥분을 주체하지 못했다.

  주위의 만류에도 횡포가 계속되자 참석했던 기자들이 점심도 먹지 못한채 언짢은 기분으로 모두 퇴장하고 말았다.


  사실 이 기사는 부동산팀장이었던 필자가 유럽의 건설시장을 취재하느라 부재 중에 게재되었던 내용이었다. 귀사해서 알아보니 초년기자가 쓴 기사였지만 사실에 입각한 기사였다. 이럴 경우 기자는 보다 더 큰 오류를 취재하기위해 소위 '칼을 갈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날 저녁 기사 마감시간이 다 되었는데 동료 문화부장이 어깨를 툭 치며 '주태공사 홍보부장이 자기 동기동창인데 회사 앞 다방에서 기다리니 자기 체면을 보아서 꼭 좀 만나주라'는 부탁을 했다.

  초판 신문을 들고 어슬렁거리며 다방에 가서 홍보실장을 마주해 앉았다. 그는 '윗사람을 잘 모시지 못해 일어난 불상사'라며 정중히 사과했다. 사과를 받아들여 알았다고 말한 뒤 일어서는데 품에서 흰 봉투를 꺼내 '사장님의 뜻'이라며 건네주었다. 그 봉투를 두말 없이 받아들자 홍보실장의 얼굴에 안도의 기색이 역력했다. 필자는 조용히 자리에 다시 앉아 실장의 눈을 뚫어지게 응시하며 봉투를 도로 건네주면서

 "사장님께 전해주십시오. 낮에 출입기자를 향해 행패를 부린 것은 용서할 수 있으나 사과하는 대신 이렇게 돈봉투로 제 인격을 무시하는 행동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꼭 전해 주십시오" 라고 말한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일이 있고나서 일주일 뒤의 장관 취임 기념회식자리에서 벌어진 사안이었다.

"아니끼요? 아니끼라고 하셨습니까? 좋습니다. 단 영원한 아니끼여야 합니다."라며 그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뒤 그와는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그날 밤에 있었던 '머리 조아렸던 사건'은 어느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았다. 일국의 국무위원과 출입기자 사이에 있었던, 있을 수 없는 해프닝은 끝까지 비밀에 붙여졌지만 이제 시효가 지났기에 '서정기자의 색깔있는 이야기' 첫 대목에 싣는다.




작가의 이전글 녹음방초 승화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