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마지막 날, 마지막 날도 결국은 영화 촬영지를 중심으로 구경하게 되었다. 이렇게 홍콩 영화에 빠져 있는 티를 팍팍 낸다.
홍운빙청반점(Hung Wan cafe, 鴻運冰廳餅店)
프린스 에드워드(Prince Edward)역에서 조금 떨어진 홍운빙청반점(Hung Wan cafe, 鴻運冰廳餅店)은 주성치 영화 '행운일조룡' 주 배경이 되는 '행운다과점'의 무대가 되었던 장소이다. 영화는 보지 못했지만, 뭔가 현지식으로 식사를 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오게 된 가게이다. 예상은 정말로 딱 들어맞았으니, 영어 메뉴도 없어서 사전과 구글 번역을 총동원해 시킨 조식 메뉴는 이러했다.
햄을 얹은 마카로니 수프와 빵, 계란 프라이 2개, 그리고 밀크티가 단돈 HKD 44. 보디랭귀지 이용해 열심히 시킨 보람이 있었다. 얼핏 사진만 보면 이게 무슨 맛이야 할지도 모르지만, 밀크티는 정말 진하니 입에 착 감기는 맛이었고, 계란 프라이 2개는 뜨끈뜨끈하니 호로록 먹기 좋았으며, 무엇보다 마카로니 수프가 환상이었다. 어떻게 마카로니를 심플하게 끓인 게 이렇게 맛이 나던지. 빵도 달지도 않고 부들부들해서 순식간에 해치웠다.
몽콕 경찰서
후딱 배를 채우고, 겸사 겸사 보러 온 프린스 에드워드 역 B1번 출구 쪽에 위치한 몽콕 경찰서를 구경하러 나섰다. 몽콕 경찰서는 영화 "열혈남아"의 마지막 장면을 촬영한 곳이다. 다만 30분이라도 영웅이 되고 싶다며 소화(유덕화)를 뿌리치고 창파(장학우)가 배신자를 처단하러 와서는, 긴장한 듯 땅콩을 연신 까먹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순간 눈앞에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영화 찍을 당시에 비하면 되게 현대적으로 변했지만, 그 자취는 남아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옹핑 마을(昂坪, Ngong Ping Village)
옹핑 마을은 Tung Chung 역에서 케이블카인 옹핑360을 타거나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다. 케이블 카는 30여 분 남짓, 버스로는 1시간이 좀 넘게 걸린다. 고소공포증이 있지만, 빨리 가기 위해서 케이블카를 타기로 했다.
옹핑360은 10시부터 운영하는데, 오픈 시간에 맞춰 갔음에도 불구하고 30분 정도를 기다렸다. 중간에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케이블카가 멈춘 것도 일조했다. 그렇게 케이블카 타고 옹핑 마을에 도착하니 11시 경이 되었다.
오전 10시부터 운영을 시작하는데, 벌써부터 인파로 북적거린다.
점점 멀어지는 란타우 섬의 시내.
케이블카가 어떤 원리로 이렇게 대롱대롱 매달린 채로도 안전히 갈 수 있는 걸까.
저 멀리서 티안 탄 부처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유독 부처상 위만 구름 한 점 없이 밝게 비추고 있어서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옹핑 마을은 티안 탄 부처상으로 보고 돌아오기로 하고, 사람이 더 많아지기 전에 티안 탄 부처상으로 향했다.
티안 탄 부처상(빅부다)은 "무간도 3"에서 한침(증지위)과 심등(진도명)이 첫 거래를 트던 장소이다. 저 아래 내려다보이는 경치를 보며 문득 영화 장면을 잠시 떠올렸다. "무간도 3"은 "무간도 1"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약 한 달 전의 이야기와 "무간도 1"이 끝나고 또 약 한 달이 지난 후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진행되는데, 한침과 심등의 첫 만남은 과거 이야기이다. 그 둘의 만남을 지켜보는 진영인(양조위)이 어떤 생각을 품고 있었을까.
위엄이 느껴지는 어마 무시하게 큰 티안 탄 부처상.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이는 옹핑 마을과 포린 사원
모든 걸 인자하게 내려다보는 티안 탄 부처상
지혜의 길(心經簡林, Wisdom path)
원래 계획은 얼른 부처상만 보고 주성치의 고향인 타이오 마을을 갈까 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빠듯해 지혜의 길을 가보기로 했다. 지혜의 길은 티안 탄 부처상에서 도보로 10~1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가는 길이 숲이 우거지고 바람이 솔솔 불어와 기분을 안정시켜 주는 느낌이 들었다.
지혜의 길 초입. 한자로는 '심경간림(心經簡林)'으로 읽는다.
여행 기간 내내 인파가 나를 피해 다닌 건지, 내가 인파를 피해 다닌 건지, 길에는 사람 한 명 없었다.
지혜의 길(心經簡林, Wisdom path)에는 38개의 나무 기둥이 세워져 있으며, 이 기둥엔 유교, 불교, 도교를 믿는 이들에게 잘 알려진 기도문인 금강경이 새겨져 있다. 한자 공부 좀 더 할 걸 그랬다며 아쉬운 마음으로 기둥을 따라 천천히 한 바퀴를 돌아 보았다.
지혜의 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아예 지혜의 길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장소가 있었다.
지혜의 길 너머로 내려다 보이는 남중국해.
한 눈에 보이는 지혜의 길
본격적으로 하이킹을 할 수 있는 코스가 시원하게 뻗어져 있었지만,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
포린 사원
다시 포린 사원으로 돌아와서 사찰 내를 여기저기 기웃거리고는 절 안에 있는 vegetarian restaurant에서 turnip cake(순무 케이크)와 dumpling을 사 먹었는데, 맛이 너무 좋아서 나도 모르게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별것 없어 보이는 소박한 음식이었는데, 절밥이 맛있다는 말을 이럴 때 두고 쓰나 싶었다. 결국 fungus fried noodles도 주문했는데 연신 최고를 외치며 정신없이 흡입하고 말았다. 양도 엄청 푸짐한 데다가, 면을 어떻게 볶았는지 하나도 느끼하지가 않았음. 옆에 같이 나오는 각종 버섯과 야채도 아삭거리는 맛이 신선함이 가득했다.
시간이 어중간하게 남는 바람에 사원 내를 한참 어슬렁거리다가 못내 아쉬운 마음을 안고 시내로 돌아가는 케이블카에 몸을 실었다. 이 케이블카에서 재밌는 일이 있었는데, 맞은편에 앉은 중국인 가족으로 보이는 일행의 사진을 찍어주다가 말을 트게 되었다. 그것도 무려 "일본어"로 대화를 나눠서 진짜 재밌었다.
나보고 일본인이냐 길래 한국인이라고 분명 답을 했는데, 그중 한 사람이 일본어를 할 줄 아는지 일본어로 일본어를 할 수 있냐고 묻길래 조금 할 수 있다고 하니 짤막 짤막하게 말을 걸어왔다. 바람이 강하다는 둥, 손잡이를 꽉 잡고 있으니 무섭냐는 둥 시답잖은 얘깃거리였지만 정말 기억에 남는 시간이었다. 케이블카에서 내려서 헤어질 때도 끝까지 "사요나라~"하며 일본어로 인사하는 모습이 되게 귀여웠다. 그러면서도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중국인이랑 영어도, 중국어도, 하물며 한국어도 아니고 일본어로 대화를 해보다니, 언제 또 이런 일이 있을까.
Tung Chung역 부근에 있는 아웃렛에서 아이쇼핑만 잔뜩 하고는 공항으로 발을 돌렸다. 체크인을 하고 공항 내 크리스탈 제이드에서 탄탄면과 샤오롱바오, 레몬티를 시켰는데 이 3가지 메뉴는 또 먹어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맛있었다.
한국인 입맛에 딱인 탄탄면. 매콤하면서도 고소하다.
육즙이 가득한 샤오롱바오.
레몬은 반통을 썰어넣은 듯한 레몬티
이렇게 여유롭다면 여유로울 두 번째 홍콩 여행이 끝이 났다. 무리하면 더 볼 수도 있었겠지만 이번 여행은 정말 "휴식"이 목표였으니까, 목표는 150% 달성하고도 남았다.
특히 라마 섬이 또 오고 싶을 정도로 정말 좋았다. 여건만 허락하면 라마 섬에 며칠 묵으며 제대로 구경하고 싶다. 워낙 좋다는 말은 많았지만, 이렇게 고즈넉하고 여유로움이 가득한 자연 가득한 섬인 줄이야.
여행은 자고로 다음을 기약할 때가 제일 즐거우니까, 세 번째 여행은 일단 라마 섬 재방문을 일 순위 목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