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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립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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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곶 Apr 26. 2022

1인가장, 집밥에 도전하다

독립일기 01_밥

모습은 보잘것없지만 내 속을 든든하게 해준 첫 찌개


“힐링이 필요할 때 뭘 하세요?”

얼마 전 스쳐간 소개팅남이 내게 물었다. 뭔, 철학적인 질문을 다하나 싶었다. 잠시 생각에 잠긴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밥을 먹어요.”


요새 나의 힐링템은 ‘집밥’이다. 자취를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생겨난 나의 작고 규칙적인 루틴이다.


사회생활에 지쳐 집에 돌아올 때면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고 있기 부지기수다. 그러나 1인 가구에게 침묵은 종종 외로움을 증폭시키기만 한다.


그럴 때마다 생각나는 게 따끈따끈한 엄마의 집밥이었다. 지친 내게 엄마의 집밥 한상은 속과 마음을 채워주는 처방약이었다. 자취를 시작하고 집밥은 가끔 주말에만 먹을 수 있는 이벤트가 됐다. 그렇다고 해서 힘이 들 때마다 본가에 돌아가 엄마 밥을 먹을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아주 지쳤던 어느날, 내가 나에게 밥을 만들어주기 시작했다. 처음엔 라면처럼 만들기 쉬운 파스타 하나에도 ‘요리’라며 충분히 기뻐했다. 그러나 면 삶기-소스 넣기-볶기, 3단계로 이뤄진 파스타에는 든든함이 없었다. 아무리 맛있게 만들어도 속이 빈 강정마냥 속이 허했다. 볶음밥과 파스타, 파스타와 볶음밥. 지겨운 레퍼토리를 반복하던 무렵 직접 한식을 만들어보기로 했다.

내가 만든 닭가슴살 야채 볶음

한식은 참, 손이 많이 갔다. 본가에서는 국도 뚝딱, 반찬도 뚝딱이었는데 밥과 반찬, 국 하나하나가 요리였다는 걸 깨달았다.


최근 처음으로 찌개를 만들어봤다. 참치김치찌개. 그마저도 엄마가 담궈준 김치가 다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만든 요리 중에선 가장 절차가 복잡했다.


김치를 볶고, 설탕과 간장을 태워 불맛을 낸 다음에 양파를 넣어 자박자박해지면 그 위에 참치와 물을 부어 국물을 우려냈다. 언제 또 썩을지 몰라 두부와 버섯은 생략했다. 집에선 찌개 건더기가 이리도 소중한 것인지를 몰랐다.


보글보글 찌개가 끓어갈 즈음, 계란 하나를 톡 깨뜨려 후라이를 해주었다. 김치찌개와 계란은 최고의 조합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반숙으로 노릇하게 구워진 계란 위 노른자를 깨뜨려 국물 한스푼과 함께 비벼주면 짭쪼름함과 고소함이 섞이는 게 아주 환상적이다.


아까 남은 참치와 계란을 아끼는 접시 위에 올려두고, 찌개와 함께 밥과 국, 반찬을 완성했다.

나의 것과 비교도 되지 않는 엄마의 집밥

남들이 보면 아주 별거 아닌, 걸음마 수준의 밥상이었지만

이제 막 라면과 파스타를 뗀 1인 가장에게는 속을 단단히 채워주는 완전 식품이었다.


그렇게 든든한 식사를 마치고는 생각했다. 내가 힘들 때마다 밥을 찾는 이유는, 단계마다 정성이 들어가기 때문이 아닐까. 누군가 내게 정성스레 차려준 집밥을 먹는다는 건 애정과 관심을 받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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