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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곶 Mar 01. 2020

'사주 광신도' 탈출기

중요한 건 내 마음이 향하는 곳이었다

"오늘이야" "가자"


처음으로 사주를 봤던 날이었다. 그날은 유달리 미래가 막막했다. 같이 스터디를 하는 언니와 함께 학교 앞 사주가게로 들어갔다. 한 시간에 삼만원. 그 당시 3일 식비였다.


언니도, 나도 역술인 앞에 앉아 물었던 첫 질문은 같았다. 과연 우리가 언제 성공할 것인가. 역술인은 우리의 답답한 속을 단번에 뚫어주었다. 우리의 손에 명확한 '성공 날짜'를 쥐어주었던 것이다. 미심쩍은 표정을 짓던 우린 실로 그럴듯하고도 듣기 좋은 소리로 가득한 사주풀이에 단단히 빠져들었다. 나는 그날 이후로 기분좋은 카운트다운을 세며 열심히 미래를 준비했다.


하지만 역술가의 말과 달리, 내게 '성공의 날'은 찾아오지 않았다. 부푼 기대를 품고 있던 난 이전보다 더 큰 좌절감에 빠졌다. 그리고는 다른 사주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용한 사주집은 따로 있을 거란 희망이 샘솟았다. 심지어 한번의 좌절을 겪고난 후에는 듣기 싫은 이야기를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이른바 '답정너'처럼 원하는 답을 해주는 사주집을 찾아다니기 시작한 것이다.


더이상 내게 사주가 맞고 틀리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듣고 싶은 미래를 그려주기만을 기대했다. 그러던 중 어느날 한 친구가 데려간 유명 사주가게는 이름모를 카페 위층에 은밀하게 숨겨져 있었다. 한시간에 5만원이라는 고가의 입장료는 나를 더욱 신뢰하게 만들었다.


가게 내부에는 유명 방송에 출연한 역술인의 사진이 여러장 붙어있었다. 그는 나와 친구의 기본 정보를 토대로, 한 시간 동안 일장연설을 쏟아냈다. 나의 상황을 말하지 않았는데도, 당시 내 고민에 딱 맞는 말을 해주었다. 역시 비싼 곳은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는 성공할 달을 알려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올해는 틀림없이 잘 될 거라고 했다. 역술인의 모든 말이 귀에 쏙쏙 박히던 그때였다.


그순간 종이 위에 적힌 나의 생년월일이 보였다. 태어난 달이 잘못 적혀 있었다. 생년월일이 틀렸다는 말에 역술인은 미안하다며 새로운 인생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들떴던 마음이 한순간에 식어버렸다. 어느 인생 이야기를 들어도 내 얘기라고 믿게 될 것 같았다.


나는 더이상 사주가 내 인생의 정답을 알려주지 않을 거란 걸 알게 됐다. 하지만 그날부로 난 더이상 흔들리거나 불안해하지 않게 됐다. 내 마음이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지를 알게 됐기 때문이다. 내가 듣고 싶어했던 정답들이 바로 내가 가야할 길이었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그래도 5만원은 좀 아깝지 않냐?" 친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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