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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개향 Sep 08. 2023

[쓰기의 바람 3] 나라는 제일 좋은 글감

당신의 온도는 몇 도인가요

달라진 온도를 가늠하면서 계절이 바뀌는 걸 알아차립니다. 냉장고에서 막 나온 차가운 맥주가 간절해지기 시작하면 공기 속에서 여름을 발견합니다. 매일 마시던 아이스 라떼 한 모금에 뱃속이 얼얼해지기 시작하면 가을을 발견하고, 목덜미에 스치는 찬바람에 목도리를 꺼내고 싶어지면 겨울을 발견하지요. 맨살에 닿는 바람의 온도가 기분 좋아지기 시작하면 비로소 봄이 온 걸 압니다.


‘온도’라는 단어를 좋아합니다. 그림책 활동가로 일하며 개인사업자 이름을 지을 때도 온도가 넣었습니다. ‘그림책37도’의 37도가 무슨 뜻이냐고 많이들 물어오더라고요. 사람의 평균 체온은 36.5도지요. 찬바람 숭숭 드는 집에 앉은 것 같은 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며 0.5도라는 약간의 온기를 더해주고 싶습니다. 지금은 그림책과 더불어 그들의 글쓰기를 지켜보고 독려하며 온기를 더하고 싶고요.


당신의 온도는 몇 도인가요


글쓰기 수업 첫 모임에는 자기 소개글을 써오게 합니다. 평범한 자기 소개글은 재미가 없으니 소재를 하나 던집니다. 어떤 소재를 던질까를 늘 고민해요. 평소 잘 생각해보지는 않지만 얼마든 다양한 갈림길이 나올 수 있는 단어. 지갑을 소재로 삼은 적도, 전생이 소재가 된 적도 있었습니다. 아침 기온이 10도 이하로 떨어진 겨울날 시작한 수업에서는, ‘나의 온도’라는 소재로 자기소개를 해보자고 권했어요.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온도를 골라 써도 좋아요. 내가 지금 몇 도인지 생각해봐도 좋아요. 기분이 확 끓어오르는 온도나 차갑게 식어버리는 온도에 대해 떠올려 봐도 좋고요. 몸도, 마음도, 계절도, 사물도 모두 온도로 이뤄져 있답니다. 그걸 한번 가만히 만져보세요.


첫 만남의 긴장이 다 풀리지도 않았는데 추상적인 단어가 글감으로 툭 던져지자, 다들 움찔하는 게 메신저를 통해서도 다 느껴집니다.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나의 온도’를 떠올리기 위해 그들은 어떤 포즈를 취하고 있을까요. 이리 보고 저리 보고 손대어 보고 쓰다듬어도 보면서, 제 몸에 붙는 온도들을 길어 올려야 합니다.


한 주 후 서로 다른 일곱 온도들이 한 데 모였습니다. 낮 동안 달궈진 몸에 맥주를 들이붓는 듯 뜨겁고도 시원한 온도가 있고, ‘비린내 나는 정수’같이 미적지근한 온도가 있었습니다. 글을 쓰고 싶어 부글부글 끓는 온도가 있고, 열기로 펑 터져 방전된 몸이 그리워하는 미지근한 온도가 있었지요. 차가워지는 겨울 공기를 느끼며 발열 내의를 준비하는 따뜻한 온도가 있었고요. 그리고, 매일 밥을 짓는 121도의 온도가 있었습니다.


나라는 사람의 온도를 생각하다 “완벽한 밥이 되는 온도 121° ○○전기밥솥”이라는 광고 문구를 발견했다. 세 아이를 낳는 순간부터 나는 원하든 원치 않든 밥과는 뗄 수 없는 사람이 됐다.

(......) 그런데 밥을 짓는 온도를 가슴에 품고 있음에도 내 몸에서 추위를 제일 빨리 감각하는 손에서는 한기를 느낀다. 극명한 온도의 간극 앞에서 자주 멍해지곤 한다. 세 아이가 뿜어내는 뜨거운 열기 안에서 미처 알아채지 못하게 조금씩 낮아진 나의 온도. - 순이, “121도” 中




뜨겁게 달아오른 속과 차갑게 식어버린 손을 모를 리가 있나요. 아이들을 돌보며 몸의 일부는 과활성화되어 뜨겁게 달아올라요. 발을 동동 구르고 잠을 줄이고 밥을 입 안으로 쑤셔 넣고 어린이집 하원 시간에 맞춰 뛰어다니니까요. 반대로 나를 돌보지 못하는 사이 몸의 다른 일부는 꽁꽁 얼어붙습니다. 좋아하던 음악을 듣거나 그림 앞에 서면 속절없이 녹아내릴까봐, 듣지도 보지도 않으며 점점 더 얼음 속에 갇혔지요.


속과 손 사이 균형이 맞으면 적당한 온도가 될 텐데. 얼음으로도 끌 수 없는 불과, 불로도 녹일 수 없는 얼음을 동시에 데리고 사는 게 엄마의 숙명일까요. 아니, 엄마들만 그런 건 아니었어요.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 사이에서 균형을 잃기란 얼마나 쉬운가요. 시간이 흐를수록 커지는 온도차를 견디기 어려워진 이들이 글을 쓰러 찾아옵니다. 불과 얼음을 잘 데리고 살고 싶어져서.


나만 입장할 수 있는 공원의 입구 


일곱 명의 온도에 살갗을 대었다 떼어보기를 반복하다 책 한 권을 꺼냈습니다. 『단어의 집』은 안희연 시인이 비문학적인 단어들을 주워 가꾼 문학적 꽃밭입니다. 목차를 훑어보면 밀코메다, 불리언, 페어리 서클, 버저 비터, 덧장 같은 생경한 단어들이 눈에 띄어요. 뭐든 다 아는 것만 같아 시큰둥해지는 일상에 노크 소리가 들려옵니다. 똑똑, 저어, 처음 뵙겠습니다. 밀코메다라고 합니다. 저는 페어리 서클이요.(설마 여러분은 모두 아는 단어인가요?)


낯선 단어를 알아가는 재미만 있는 건 아니에요. 규모, 네온, 끗 같이, 알지만 잘 생각해보지 않은 단어들에 작가만의 해석이 더해져 글이 ‘빵처럼 부풀어’ 오릅니다. 온도라는 단어를 두고 일곱 명이 다른 글을 써냈듯이, 어떤 단어가 어떤 씨앗이 되어 꽃으로 피워날지는 전적으로 작가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대학에서 문학도들을 가르치는 작가는 새 학기 첫 시간 자기소개를 대신하는 수업에서 ‘끓는 점, 녹는 점, 어는 점’의 세 단어를 주며 글을 쓰도록 합니다. 해석도 형식도 연상도 자유. 무한한 자유 앞에서 학생들은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요. 물의 어는점 0도, 끓는 점 100도 같은 과학적 사실과는 먼, 나만 입장할 수 있는 공원의 입구에 서야 합니다.


과학적 사실과는 어긋나더라도 ‘심리적 진실을 보여주고 있고 문학적으로 오류라고 할 수 없다’는 문장 앞에서, 121도를 자처하는 순이의 자기소개를 떠올렸습니다. 물리적 세계에서 121도의 몸은 죽음의 온도지요. 그러나 글의 세계에서만큼은 진실한 삶의 온도가 됩니다. 내 것도, 함께 글을 나눈 이들의 것도 될 수 없는 오직 순이의 온도. 37도가 다른 사람의 의미가 될 수 없고, 되어도 그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질 것처럼 말입니다.


‘나’는 세계를 만나는 유일한 통로이고 세계를 저장하는 유일한 창고입니다. 감각하고 경험하고 통합하고 해석한 것만이 세계의 전부가 되지요. 하나의 단어가 ‘내 몸’을 통과했을 때 어떤 무늬를 남기느냐를 자세히 보고 옮겨 그리는 행위가 바로 글쓰기입니다. 나를 통과한 것들만 무늬가 되고 글감이 됩니다.


그러니 멀리서, 모르는 데에서 글감을 구하지 마세요. 다른 사람이 겪은 온도나 누구에게 들어서 아는 온도가 아니라, 내가 겪어서 아는 온도를 먼저 써보세요. 어릴 적 겨드랑이에 끼우던 수은 체온계를 기억해 봐요. 깊숙한 기억들에 체온계를 찔러 넣어 보세요. 밥솥의 121도와 정수의 20도, 맥주의 5도와 겨울바람의 영하 10도 사이 당신의 온도가 있을까요. 어쩌면 명왕성의 -248도나 태양 표면의 5800도 바깥일 수도 있겠지요.


체온계가 반응하는, 그래서 가슴이 움찔하는 기억을 찾는 데는 시간이 듭니다. 그래도 쉬이 지치거나 다그치지 마세요. 마침내 수은 막대가 움직이면 물어보세요. 무슨 일이 있었니? 언제 어디였니? 어떤 기분이 들었니? 온 몸이 뜨거웠니, 차가웠니? 아픈 날 이마를 짚어주던 엄마처럼 살가운 목소리로요. ‘나’라는 가장 좋은 글감이 여기 있다는 걸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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