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자산 50억 원
오늘 오랜만에 첫째 아이 종아리를 때렸다.
요즘은 둘째도 제법 커서 첫째가 둘째를 곧잘 데리고 논다. 나와 아내는 오래는 아니지만 두 아이가 놀 때 딴짓을 하기도 한다. 오늘 오후, 나는 내 방에 아내는 둘째 방에 잠시 누워있었다. 그때 벨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보니 아이들이 집 밖에 우리 집 벨을 누르고 있는 게 아닌가. 아이들이 문 열고 나갔다가 문이 닫혀서 못 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왜 나갔어."
"밖에서 누가 똑똑 거리는 거 같아서 나갔어."
"너 그렇게 똑똑 거린다고 나가면 돼? 내가 엄마 아빠 없이는 절대 혼자 문 열고 나가지 말라 그랬지?"
무서웠다. 만약에 그렇게 혼자 나가서 길을 잃어버리면. 아니면 꼭 집이 아니더라도 어딘가에서 누군가를 따라간다면. 정신병일 수도 있지만 그런 생각이 마구마구 드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생각만으로도 견디기 힘든 고통이 함께 밀려왔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나. 그냥 넘어가면 안 될 거 같고, 그렇다고 때리는 건 절대 안 되는데. 결국 체벌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첫째 아이 종아리를 때렸다.
"절대 엄마 아빠 없이는 나가지 마! 누가 열어달라고 해도 절대 열지 마! 나중에 좀 더 커서 이제는 스스로 열어도 된다고 할 때까지는 절대 문 열지 마! 알겠어?"
앞서 '오랜만에 때렸다'라고 말했듯이 아이를 때린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우리 첫째는 아기 때부터 다른 아기들보다 과격한 성향을 갖고 태어났다. 자주 물건을 집어던지곤 했다. 아이가 던진 보조배터리가 아내의 이마로 향해서 이마가 찢어지기도 했다. 식당에서 아기가 던진 포크가 옆 테이블 위로 날아간 적도 있다. 둘째가 태어난 이후에는 둘째를 꼬집고 때리고 밀어 넘어뜨렸다. 그뿐만 아니라 본인이 다칠 수도 있는 위험한 행동들을 곧잘 했다.
다른 건 몰라도 누군가가 다치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때리기 전에 타일렀다. 그다음 훈육을 했다. 벽을 보게 했다. 그게 안 돼서 소리를 질렀다. 마지막은 결국 체벌이었다.
이유는 무서워서였다. 아이가 하는 행동들이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고, 이기적 이게도 내 아이가 다칠까 봐, 크게 아플까 봐 무서웠다. 그런 일은 무조건 막고 싶었는데 아이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아이가 날 싫어하게 되더라도, 날 미워하게 되더라도 절대 아이가 위험한 행동은 못 하게 막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훈육과 체벌을 하고 나서는 스스로를 많이 자책했다.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 뭐가 잘못된 건지. 내가 잘 한 건지. 이게 정말 아이에게 도움이 되는 건지. 하지만 정말 무서운 건 그 이후에 벌어진 일이었다.
처음이 어려웠지 한 번 하고 나니 아이에게 소리 지르고 체벌을 하는 일이 점점 잦아졌다. 무엇보다 그 기준이 점점 낮아졌다. 예전에는 그냥 타일르고 넘어갈 일이었는데 언젠가부터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훈육을 하는 건지, 화를 푸는 건지 분간이 안 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고 싶었지만 점점 나의 훈육에 감정이 실리기 시작했다.
어느 날, 컴퓨터로 작업을 하고 있는데 아이가 와서 컴퓨터를 껐다. 그 순간 폭발해버렸다. 아이에게 소리를 질렀다. 소리를 지르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나 지금 미친놈 같다.' 정말 미친놈 같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살면서 그렇게 소리를 질러 본 적이 없었다. 공교롭게도 그 대상이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딸이었다.
"왜 그렇게 소리 질렀어? 그렇게까지 할 일이었어? 작업한 게 많이 날아갔어?"
다음날 아내가 나에게 물었다. 아이가 컴퓨터를 끈 건 밤 열한 시였고, 그때 이미 짜증이 오를 때도 올라있었다. 몇 시간부터 자라고 해도 안 자고, 컴퓨터를 만지지 말고 방에서 나가라고 수십 번도 더 이야기하다가 결국 발생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역시, 그렇게 소리 지를 건 아니었다.
"그냥 내가 힘들었어."
그 말 밖에 할 수가 없었다. 아내는 내 말을 듣고 잠시 아무 말도 없다가 이내 답했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뭐."
그랬다. 내가 힘들어서 아이에게 화를 낸 것이다. 그뿐이다. 힘든 이유는 지금 생각이 나지 않지만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회사 일. 불면증. 변비. 부부 싸움. 너무나도 힘든 육아 등등. 그 모든 거에서 온 스트레스를 난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는 형태로 풀어버린 것이다. 그런 순간이 그때 한 번이 아니다. 가끔, 어쩌면 종종, 아주 어쩌면 자주 그랬을 것이다. 알게 모르게 짜증을 섞어 아이를 대했다.
그런 내 모습을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훈육을 해야 하는 순간이었고 '화 해는 척' 해서라도 똑바로 말을 해줘야 올바른 교육이라고 믿었다. 갈수록 '화내는 척'하는 경우가 많아지자 내가 화내는 척을 하는 건지 정말 화를 내는 건지 스스로도 분간할 수 없는 순간들이 생겼고, 나중에는 받아들이기 싫지만 쓸데없이 화를 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없는 게 아이에게 더 좋은 게 아닐까? 내가 아이를 더 망치고 있는 게 아닐까?"
비단 아이에게 짜증을 내는 것뿐만 아니라 나의 예민한 모습 같은 걸 나 때문에 아이들이 물려받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초등학교 저학년 애들을 데려다가 '돈이 많고 바빠서 같이 있을 시간이 없는 부모와 같이 있을 시간은 많은데 돈이 없는 부모 중 어느 부모가 좋은지' 물어봤다. 그중 한 아이가 돈 많고 바쁜 부모가 좋다고 말했다.
"돈이 없으면 같이 있어도 저한테 해줄 수 있는 게 없잖아요."
아이의 대답을 듣고 아이와 아이의 부모에 대한 걱정이 처음 들었다. 아이의 말에 부모가 상처를 받지 않을까. 고작해야 열 살도 안 된 아이가 자신이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잘 알지도 모를 텐데,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서 그런 말을 했다고 비난을 받지 않을까. 그 아이보다는 그걸 방송으로 내보낸 제작진에 대한 분노가 일었다.
아이의 대답만 보면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저 아이는 분명 똑똑할 거라는 생각을 했다. 누가 감히 이 아이의 말이 틀렸다고 할 수 있겠는가.
정말 진지하게, 아빠로서의 나 자신에 너무나 실망해서, 내가 이 집에 있으면 오히려 아이들에게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얼마가 있으면 이혼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해봤다. 아이들은 아빠 없이 자라는 대신 그 공백을 완벽하게 메꿀 수 있는 돈이 얼마일까를 생각해 본 것이다.
"아내한테 50억 줄 수 있을 때 이혼하려고요. 50억 아내한테 다 주고, 지금 살고 있는 집이랑 재산 다 주고 애 둘 다 맡길 거예요. 나는 정해진 시간만 아이들 만나고 나 없이 경제적으로라도 풍족하고 부족함 없이 살 수 있게 해 줄 자신 있으면 이혼하려고요."
아내와 처제, 동서와 함께 늦게까지 있었던 술자리에서 내 이혼의 조건과 그 이유를 간략하게 설명해 줬다. 아내는 너무 많이 들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50억+집이면 본인도 오케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핸드폰만 보고 있었다. 처제가 내 말을 다 듣더니 웃으면서 말했다.
"50억이면... 이혼 안 하겠다는 말 같은데요?"
"아빠가 때린 건 너무 미안해. 그런데 엄마 아빠 없이 집 밖에 나가는 건 절대로 하면 안 돼. 그러다가 너한테 무슨 일 있으면 어떡해. 아빠는 그럼 어떡해. 아까는 아빠가 너무 무서워서 너를 때렸고, 그건 내가 잘 못 한 거지만, 앞으로 절대 혼자 나가지 마. 알겠지?"
아이 종아리를 때리고 나서 오랫동안 안아주고 보듬어주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상처받았을 아이의 마음을 애써 달래주면서 아무 일도 없었는데 그렇게 혼낼 일이었나, 내 반응이 과한 건가 내내 고민했고 지금도 그 일련의 과정에 머리가 아프다.
아이에 대한 내 사랑의 방식이 틀린 걸까. 어떻게 하면 나를 오랫동안 갉아먹은 불안과 예민함이 어떠한 형태로든 아이에게 전염되지 않으면서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어렵다. 잘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