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를정한일 Jan 20. 2022

육아의 궁극적인 목적은 (      )의 독립이다

빈칸을 채우시오

유치원 가기 싫다고 울어대는 아이를 얼래고 달래 아내와 함께 등원시키고 집에 돌아왔다. 부산 출장 비행기 시간을 맞추려면 빨리 나가야 했지만 버스 안에서 울고 있던 딸의 모습이 생각나 본의 아니게 아침부터 아내와 스몰 파이트(small fight) 했다.


"결혼하기 전에 애 낳으면 둘 중에 하나 집에 있는 거 동의했잖아. 나는 어렸을 때 엄마가 집에 없는 게 너무 싫어서 우리 아이들에게는 집에 누군가가 있게 해주고 싶었다고 결혼 전에 분명히 말했고 너도 애가 생기면 엄마가 집에 있는 게 좋다고 동의했잖아. 네가 첫 애 낳자마자 한 달도 안 돼서 복직하는 거 보고 너무 당황스러웠고 뭐라 하려고 하다가 말았어. '그래, 합의는 했지만 언제부터 집에 있을지, 누가 있을지는 정확히 합의하지 않았지.' 생각하고 말았어."


예전부터 꾹꾹 누르고 있던 억하심정까지 튀어나왔다. 나에게 결혼이란 '자녀를 낳아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 위한 것'이었다. 어려서부터 가족에게 받은 사랑과 그들과 함께한 시간이 너무 좋았기에 크면 내 아이들에게 똑같은 행복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 내가 꿈꾸는 가정을 함께 꾸리고 싶어 하는 배우자를 만나길 기다렸다. 연애를 하면 항상 나의 자녀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자녀를 3명 이상 낳을 것.

- 자녀가 생기면 엄마 아빠 둘 중에 한 명은 집에 있을 것.  


요즘 같은 시대에 애를 둘 도 아니고 셋이나, 거기에다가 맞벌이도 안 한다고?라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많지만 생각보다 내 자녀관에 동의하는 사람들은 많았다. 아내도 그랬다. 결혼 전에는.


"예전에는 그랬어. 지금은 아니야. 돈은 누가 벌어." 아내가 말했다.


"애초에 돈 대신 그걸 동의하는 사람을 배우자로 찾았다고. 당연히 누구 한 명이 집에 있으니까 그만큼 돈은 못 버는 거고, 그걸 감내하기로 네가 합의한 거 아니야. 이제 와서 이런 말 하면 넌 날 속인 거지."


"그러면 내 인생은? 내 일은?"


"그래서 내가 집에 있겠다잖아. 네가 얼마나 네 일에 애착이 많은지, 네가 일에서 얼마나 행복감을 느끼는지, 네가 얼마나 돈을 벌고 싶어 하는지 내가 잘 아니까 넌 일하고 내가 집에서 애 보겠다고. 근데 넌 그것도 싫다며. 나도 나가서 일하고 돈 벌어오라며. 그래서 내가 회사 안 관두고 단축 근무하겠다고. 오전 근무만 하고 오후에는 집에서 애 보겠다고. 근데 넌 또 그것도 싫다며. 왜 다 너 마음대로 하려고 하냐고."


시계를 봤다. 당장 안 나가면 비행기를 놓칠 것 같았다. 아내 얼굴도 보지 않고 마지막 한 마디를 뱉으며 집에서 나왔다.


"암튼 애들 초등학교 갈 때 네가 집에 있을 생각 없으면 내가 있을 거니까 그렇게 알아. 애 초등학교 들어갈 때는 부모가 집에 있겠다는 건 네가 네 입으로 말한 거였어."


작년 말, 작지만 작지 않은 해프닝이 하나 있었다. 아내와 두 딸이 함께 있었다.


"아가, 넌 언제쯤 엄마 말을 들을래?"


두 돌이 안 된 둘째 딸이 아내의 말을 너무 듣지 않자 아내가 혼잣말을 했다. 다섯 살 첫째 딸이 아내의 혼잣말에 웃으며 말했다.


"엄마, 얘는 백 살 되면 엄마 말 잘 들을 거래."


아내는 아무 생각 없이 웃으며 답했다.


"그러면 안되는데? 아기 백 살 되면 엄마는 할머니 돼서 하늘나라 가 있을 텐데?"


첫째 딸의 표정이 굳었다. 정색을 하더니 이내 울먹거렸다.


"엄마는 내 엄만데 왜 할머니가 되고 하늘나라에 가?"


울먹거리는 첫째의 모습에 아내는 당황했다.


"아니야. 엄마 할머니도 안되고 하늘나라도 안가. 엄마는 계속 우리 딸이랑 같이 있을 거야."


그 말을 듣고 첫째는 조용히 자기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았다. 몇 분이 지나도 방에서 안 나오자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아내가 첫째 방에 들어갔다. 딸이 우는 소리를 막기 위해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끅끅 거리며 울고 있었다. 아내가 달려가 딸을 안아주자 딸은 울부짖으며 말했다.


"엄마 할머니 되지 마. 하늘나라도 가지 마."


그로부터 딸은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을 흘렸다. 가만히 창밖을 보고 있다가 눈물을 흘렸고, 자다가 새벽에 일어나서 오열했다.


그즈음 딸이 한 번도 하지 않은 등원 거부를 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엄마, 아빠와 극도로 떨어지기 싫어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가 집에 있어도 시야에서 사라지면 울면서 찾아다녔고 강아지 산책을 가려고 해도 울면서 말렸다. 아내와 자러 들어간 날에는 아빠가 보고 싶다며 한 시간을 울었고, 나와 자러 들어간 날에는 엄마가 보고 싶다고 울부짖으며 방에서 뛰쳐나갔다.


아내는 딸의 행동을 모든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겪는 과정으로 받아들였다. 나는 아내의 말에 동의는 하지만 이 시기에 아이의 불안을 좀 더 섬세하게 덜어주지 않으면 불안의 씨앗이 트라우마로 남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애 유치원을 집에서 걸어 다닐 수 있는 곳으로 옮기자고 했다. 다만 지금 딸이 다니는 유치원은 방과 후 수업이 있어 다섯 시까지 유치원에 있는 반면 집에서 가까운 유치원은 오후 두시면 하원을 해야 한다. 아내는 두시에 애가 하원하면 자기가 일을 할 수 없다고 그랬다. 맞는 말이다. 현실적으로 두시에 하원하면 어떻게 일을 하겠는가.  


양가 부모님에게 용돈을 많이 드리고서라도 일주일에 2박 3일 우리 집에 머물면서 하원만 부탁하자고 제안했다. 3일은 부모님들 도움을 받고 하루는 아내가 하원하고 하루는 내가 재택 하면서 애를 같이 보겠다고 했다. 아내는 거부했다. 이런저런 이유를 들었지만 구체적인 이유를 반박할 생각은 없었다. 그냥 싫었던 거다. 아내가 싫다고 하니 굳이 밀어 부칠 생각은 없었다.


내가 단축근무를 하겠다고 했다. 회사에 단축근무 제도가 있어서 자녀 1명당 1년 동안 단축근무를 할 수가 있다. 1일 8시간 근무 시간을 최소 3시간에서 7시간 사이로 설정할 수 있다. 나는 하루에 3시간, 아침 아홉 시부터 12시까지 근무하고 오후에 딸 하원부터 육아까지 내가 하겠다고 했다. 회사 눈치가 보여 쓰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이미 두 번이나 육아휴직을 한 내가 단축근무를 하는데 눈치를 볼 이유는 없었다. 수입은 줄어들겠지만 딸의 정서적 안정이라는 더 소중한 목적을 위해서는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아내는 또다시 거절했다. 정확한 이유는 듣지 못했다. 어차피 이유가 중요하진 않다. 그냥 그렇게 하기 싫은 거고 이유는 갖다 붙이면 그만이다.


작년 말, 우리 부모님이 집에 놀러 오신 날 이런 배경 설명과 함께 내가 단축근무를 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엄마 아빠는 나보고 딸의 행동에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했다. 점점 내 품에서 아이를 놓아줘야 하는데 그렇게 심각하게만 반응하면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고 걱정하셨다. 엄마 아빠의 말에도 동의하고 내가 과하게 반응한다는 것도 동의한다. 하지만 나로서는 지금 우리 딸이 엄마 아빠와 함께 있고 싶어 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데 굳이 안 할 이유가 없다. 만약 아내가 일에 집중하고 싶다면 기꺼이 내가 그 역할을 맡고 싶다. 안 그래도 하루하루 커가는 우리 딸의 모습이 아쉬워 더 크기 전에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은 생각이 가득하기도 했다.


오은영 박사가 그랬다. 육아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녀들의 독립이다. 아이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살 수 있도록 아이가 독립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다.


오은영 박사 말씀받고 더블로 가보자면. 육아의 궁극적인 목적은 나의 독립이다. 아이가 크는 모습에서 그동안 몰랐던 진정한 '나'를 발견하게 된다. 자녀가 성장과 시행착오를 보면서 과거 내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본다. 아이의 성공을 응원하고 실패를 위로해 주면서 그동안 잊고 지냈던 나의 성공들과 위로받지 못한 상처와 다시 맞닥뜨리게 된다. 딸을 향한 사랑의 행동과 말에 나 스스로가 치유되고 위로받아 내 안에 미처 크지 못한 크고 작은 소년들이 비로소 어른으로 성장해 간다. 딸들을 독립시킬 때 나도 우리 엄마 아빠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한 온전한 어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단축근무를 하면서 함께 있어주고 싶어 하는 아이는 우리 딸인 동시에 30여 년 전 학교 끝나고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가야 했던 어린 나인 거 같다. 딸이 나와 함께 있으면서 행복해하는 얼굴을 보면 그 시절 엄마랑 더 오래 있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슬펐던 나를 놓아줄 수 있지 않을까. 



출처 : 네이버 블로그 맘쏙, https://blog.naver.com/momssog/222279340562



매거진의 이전글 '입주산후도우미' 적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