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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를정한일 Apr 29. 2021

'입주산후도우미' 적금

취직하고 나서 적금을 드는 게 취미였다. 최근 몇 년 간 초저금리, 전례 없는 부동산 가격 급등, 주식시장 호황, 비트코인 대박 등 예금 적금에만 의존하다간 인생 답 없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시드머니가 없는 사람에게 적금만 한 게 없다고 믿는 편이다. 실제로 결혼할 때 적금으로 모아둔 돈이 큰 도움이 됐다. 높은 수익을 노리고 하는 모든 투자는 그만큼 원금을 손실할 위험도 크다. 적금은 무조건 돈이 모이며 이자수익은 낮지만 어느 상황에서도 원금이 손실될 우려가 없다. 적금에 들어간 돈을 다른 곳에 투자했을 경우에 얻을 수 있는 기대수익률이 적금의 기회비용이라고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수익률이 높은 투자는 그만큼 리스크도 크고 돈이 묶이는 손실 구간에 급전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손실을 실현시킬 수밖에 없다. 엄청 오래 살진 않았지만 우리 인생은 크고 작게 급전이 필요한 경우가 꽤 비일비재하다.


나는 결혼하는 지인들이 자녀 계획이 있다고 하면 육아 적금이라는 걸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정확히 말하면 '입주*'산후도우미 적금이다. 입주산후도우미란 출산 후 약 3개월(또는 100일) 동안 집에서 같이 살면서 신생아를 돌봐주시는 분이다. 업체 및 도우미마다 다르겠지만 보통 일요일 오후에 출근해서 금요일 오후 퇴근해서 이틀 쉬고 일요일에 다시 출근하는 시스템이다. 도우미가 5일 내내 집에서 머물기 때문에 비용이 싸지 않다. 아니 많이 비싸다. 많이 많이 비싸다. 그래서 적금으로 준비하라는 것이다.


(*) 입주하는 게 포인트다.

 

우리 부부는 둘째가 태어나서 입주산후도우미를 이용했다. 비쌌지만 그리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지금에야 첫째가 유독 예민하고 잠도 없고 키우기 힘든 아이라는 걸 알지만 처음 첫째가 태어났을 때는 그런지도 모르고 다들 그렇게 힘들겠지 하며 고생을 많이 했다. 고생을 너무 해서 그런지 우리 부부는 자주 그때 첫째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다는 말을 한다. 우리가 너무 힘들고 불행하다는 생각에 아이에게 사랑을 주지 못했다. 하루하루 버티기 급급했다.

 

둘째 때 입주산후도우미를 이용하면서 신세계가 있다는 걸 알았다. 살면서 처음으로 '돈을 쓴다는 건 이렇게나 좋은 거였구나. 돈의 맛이란 이렇게나 행복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돈이란 맛있는 걸 먹고 갖고 싶은 물건을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누군가의 시간을 사서 내 시간을 확보할 때' 가장 큰 가치가 있다는 걸 느꼈다. 산후 100일, 어찌 보면 가장 힘들다고 할 수 있는 그 기간동안 나 대신 남이 애를 봐준다는 건 정말 Fantastic 하다.

 

내 몸이 편하고 아이에게 모든 신경을 집중해야 할 시간을 조금이나마 나를 위해 사용할 수 있다는 것도 더할 나위 없이 최고지만 좋은 점이 한 가지 더 있다. 입주산후도우미들은 신생아 케어에 있어서 최고의 전문가다. (아무리 그런 전문가들도 우리 첫째는 다루기 힘들었을 거라고 거의 장담하지만) 그분들은 입주하는 동안 아이 생활 패턴을 기가 막히게 잡아주신다. 신생아를 키운다는 건 사실 시간에 맞춰 잘 먹이고 잘 재우는 게 거의 9할 이상인데 그분들은 정해진 시간에 밥을 먹고 잠을 자는 패턴을 만들어주신다. 그렇게 패턴이 만들어지면 산후도우미가 집에 가시는 주말 동안 수월하게 애를 볼 수 있다. 애 보기가 수월해지면 몸이 편해지고 몸이 편해지면 아이에게 더 많은 사랑을 줄 수 있게 된다. 인성은 체력에서 나온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다. 실제로 둘째에 대한 사랑이 샘솟을 때면 같은 기간 육아에 찌들어 첫째 딸에게 주지 못했던 사랑이 더 아쉽게 느껴졌다.  

 

물론 지금까지 이 말을 해준 지인 중에 실제 적금을 드는 사람은 없을 거라 생각한다. 오히려 열에 아홉은 한 집에서 그렇게 같이 지내면 불편하지 않냐고 묻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애를 대신 봐주면 그런 불편함은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말하지만 크게 공감하지 못한다. 이해한다. 나도 첫째 육아를 하기 전에는 똑같이 반응하곤 했다. 아니 나는 심지어 입주도우미는 절대 안 돼!! 외치던 사람이었다. 애 키우는 게 얼마나 힘든지, 그건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다.


이 글을 읽는 분께서는 훗날 아이를 낳을 생각이 있으시다면 육아 적금을 만들기 '완전' 추천한다. 인생의 3대 운을 한번 써서 순한 아이가 태어나 막상 입주산후도우미를 쓰지 않아도 된다면 적금으로 모은 돈으로 고생한 자신과 배우자에게 좋은 선물을 하거나 본인을 키워주신 부모님*께 선물을 해도 좋을 것 같다. 어쨌든 속는 셈 치고 '입주산후도우미 적금', 당장 들길 제발 바란다.

 

(*) 갓 태어난 아이를 보면 '한동안' 부모님에 대한 효심이 극대화되는 기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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