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를정한일 Mar 25. 2021

첫째만큼 둘째를 사랑할 수 있을까

(*) 이 글에는 제 감정을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표준 맞춤법을 파괴할 수밖에 없었던 부분이 있습니다.


둘째가 생긴 순간부터 지금까지 내 뇌리에서 항상 맴도는 질문 하나. 첫째만큼 둘째를 사랑할 수 있을까.

 

예전에, 내가 첫째를 갖기도 전, 지인이 비슷한 말을 했다. "나는 둘째를 첫째만큼 사랑할 자신이 없어서 둘째는 안 갖기로 했어." 지인의 말에 반박을 하진 않았지만 이해할 순 없었다. '아니 저게 말이나 되는 소린가?' 그랬던 내가 지금 똑같은 말을 하루에 수도 없이 하고 있다. (이래서 사람은 항상 겸손할 줄 알아야 한다.)

 

이 생각은 재밌게도 첫째를 볼 때도, 둘째를 볼 때도 똑같이 떠오른다. 첫째를 볼 때는 첫째가 너무너무 너무너무너무너문멈나ㅣ;엄ㄹㄴ야ㅣㅓ 사랑스러워서, 내 인생에 다시는 이런 큰 사랑을 누군가에게서 느낄 수 있을까 싶어서 그런 생각이 들고 둘째를 볼 때는 그 질문이 확신이 되면서 그런 생각이 든다. 

 

따지고 보면 이런 감정이 처음은 아니다. 나와 우리 와이프 사이에서 첫 애가 태어나기 전에 나에겐 혼외 아들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내가 마음으로 낳은) 우리 고양이, 꼬미다. 캬캬캬. 

 

첫 애가 태어나서 거의 1년이 지날 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우리 꼬미를 사랑했던 만큼 우리 딸을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아닌 게 아니라 꼬미는 나에게 정말로 아들 같은 존재였으니까. 실제로 이에 대해서는 글을 쓰기도 했다. 그 글에는 '꼬미에 대한 사랑과 딸에 대한 사랑은 서로 다르며 어느 사랑이 더 크다고 할 수 없다.'라고 적었다.

 

하지만 저 문구는 머지않아 우리 꼬미도 이해 못 할 개소리였음이 판명된다. 어찌 감히 우리 딸에 대한 사랑을 꼬미에 비할까. 꼬미를 사랑하지 않는 게 당연히 아니다. 꼬미에 대한 사랑은, 우리 딸에 대한 사랑에 비할 바가 못 될 뿐. 

 

한 번은 내 품에 안겨 자는 둘째의 모습을 보면서 혼잣말을 했다. "내가 첫째만큼 얘를 사랑할 수 있을까." 옆에서 그 말을 들은 와이프가 말했다. "당연하지. 첫째보다 더 사랑할 수도 있을걸?" 그 말을 가만히 곱씹었다. 내가 둘째를 첫째만큼 사랑하면 우리 첫째가 서운해하지 않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렸다.

 

"그러고(=둘째를 첫째보다 더 사랑하고) 싶지 않은데?" 와이프는 그럼 뭐 어쩌라는 거냐는 표정을 짓고 가버렸다. 와이프의 뒷모습에 외치고 싶었지만 차마 그렇지 못한 말을 입안에서만 웅얼거렸다.

 

"가면 어떡해... 네가 맘마 먹일 차례잖아..." 

 

매거진의 이전글 내 인생과 딸 사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