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딸이 태어났을 때 내심 '나는 부성애가 없는 사람인가?' 걱정했다. 병원에서 갓 태어난 딸을 보고 특별한 감흥이 없었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까. 그리고 본격적인 육아가 시작되고 나서는 딸이 사랑스럽고 이쁘기보다 힘들다는 생각뿐이었다.
언젠가 아이를 재우고 아내와 술 한잔하며 아내에게 나는 부성애가 없는 사람이 아닌가 생각이 들 때가 있다는 말을 했더니 아내가 격하게 공감하며 사실 자기도 그런 걱정을 했다고 한다. 아내도 본인이 모성애가 없는 사람인가 심각하게 걱정을 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날 딸보다는 우리의 인생이 여전히 더 중요한 거 같다며 딸을 얼마나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나중에 애를 위해 우리 인생을 포기하지 말자는 다짐을 안줏거리로 새벽까지 술잔을 기울였다.
애를 갖기 전에도, 애를 갖은 후에도 항상 생각했다. 절대 애를 위해 나를 마냥 희생하지 않겠다고. 딸을 위해 목숨도 바칠 수 있지만 인생을 바치진 않겠다고. 그런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고. 그럼에도 막상 딸에 향한 내 마음이 뜨뜻미지근하자 걱정이 됐다.
잘해주는 딸 없는 인생은 상상조차 안된다. 항상 보고 싶고 항상 사랑스럽다. 것도 없는데 건강하게 자라준다는 게 기특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다행히도 '우린 부성애와 모성애가 있을까' 하는 걱정이 무색하리만큼 나와 아내는 딸을 사랑하게 됐지만 불행히도(?) 우리의 인생을 마냥 희생하지 말자는 다짐도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 애를 키우는 건 만만한 게 아니었다. 특별히 잘해주려고 하지 말고 기본만, 남들 하는 만큼만 하려 하지만 그마저도 나를 버리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딸이 있어 행복하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 내가 밀려나는 느낌에 종종 공허해진다. 아무것도 하는 것 없이 애만 보다가 젊음을 보낼까 봐 자주 조급해진다. 그런 느낌이 심한 날이면 인생이 다소 불행해진다.
그러나 내가 선택한 인생이고 되돌릴 수도 없기에, 무엇보다 우리 딸이 너무나도 사랑스럽기에 이내 그런 잡념은 훌훌 털어버리고 조금 더 많이 딸과 눈을 마주치고 조금 더 자주 맛있는 걸 먹고자 한다. 딸을 건강하게 키우고 할 수 있는 한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함께 하는 것, 그리고 아이가 부모에게서 온전히 사랑을 받고 있다고 느끼게 해주는 게 가장 크고 중요한 일임을 잊지 않기 위해 애써 노력한다.
우리 부부는 우리의 인생도 살면서 딸에게 부족함 없는 사랑을 줄 수 있는 방법을 항상 고민한다. 당장 답을 찾을 필요는 없다. 우리는 앞으로 오랜 시간을 딸과 함께 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