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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를정한일 Feb 21. 2021

정관수술을 선언하다 (1차 정관 논쟁)

1. 


내 인생에서 가장 잘 한 행동 : 깊게 생각 안 하고 아기를 가진 것

내 인생에서 가장 못 한 행동 : 깊게 생각 안 하고 아기를 가진 것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돌아가고 싶은 순간 : 아기를 갖기 전

시간을 돌릴 수 있어도 돌아가지 않을 순간 : 아기를 갖기 전


2. 


딸을 사랑한다. 누구보다 사랑하고 딸을 위해서라면 대신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딸을 사랑하고 딸로 인해 얻은 행복이 육아로 인한 괴로움과 포기해야 하는 것들을 모두 보상해 주진 못 한다. 내 인생은 여전히 내 인생이니까. 

 

그래서, 두 번은 하고 싶지 않아서, 

 

나는 정관수술을 선언했다.


3.  


아이를 갖는다는 건 축복이다. 딸이 없는 인생이 상상조차 안 될 만큼 삶의 낙, 의미, 살아갈 목표, 행복 등 인생의 모든 부분이 딸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딸로 인해 얻는 행복만큼 육아는 힘들다. 정말 힘들다. 진짜 힘들다. 가끔은 불행하고 어쩌다 내 인생이 여기까지 흘러왔나 싶을 때가 있을 정도로 힘들다.

 

딸이 태어나고 한동안은 우리나라 교육에 분노했다. 기억도 안 나고 왜 공부했는지도 모르는 교육내용 다 때려치우고 육아 관련 교육 좀 해주지. 육아 관련 정보가 턱없이 부족하고 그 무지에 대한 책임은 초보 부모가 짊어지기엔 너무 버겁다. 이 책임을 부모가 온전히 부담하는 게 맞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 왜 학교도 사회도 심지어 내 부모님조차 육아가 이렇게 힘든 건지 말해주지 않았는지 분노했다.


사실 왜 안 가르쳐주는지 알 것도 같다.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 모를뿐더러, 미리 가르쳐주면 아무도 애를 안 낳을지도 모른다.


4.

 

처음이라 그런지(둘째부터는 엄청 수월하다는 말이 있는데 그 말 확인하러 또는 믿고 둘째를 낳을 순 없다) 육아의 모든 부분이 힘들지만 특히 힘든 게 뭐냐고 묻는다면 세 가지를 꼽는다. 

 

하나는 수면 부족이다. 

 

육아하면서 ‘애 키워보니까 왜 우울증에 걸리는지 알겠다’는 생각을 안 해 본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밥 잘 안 먹는 애 따라다니면서 밥 먹이는 것도, 이유 없이 부리는 생떼 참는 것도, 기저귀 한 번 갈라면 전투를 치러야 하는 것도 다 힘들지만 그중에 제일은 역시 아이가 잠을 잘 안 자는 거다. 애가 안 자면 나도 못 잔다. 수면 부족은 우울증을 낳는다.

 

우리 딸은 와이프를 닮아 잠이 없고 나를 닮아 예민하다(와이프는 딸을 임신했을 때 평균 다섯 시간도 안 잤으며 나는 시침 소리에도 잠 못 든다). 거의 돌이 될 때까지 반드시 한두 시간씩 안아서 재워야 했다. 그렇게 어렵게 재워도 새벽에 한 시간에 한 번씩 깼다. 그때마다 일어나서 안아줘야만 다시 잠들었다. 


최악인 건 그냥 안 자는 게 아니다. 말 그대로 대성통곡을 한다. 와이프와 나는 순번을 정해 돌아가면서 애를 데리고 자려고 하지만 애의 대성통곡은 집안 구석구석을 들쑤신다. 결국 우리 부부는 둘 다 잠을 제대로 못 잔다. 둘 다 수면 부족으로 영혼은 말라가고 신경은 곤두선 채로 살아간 지 2년이 다 돼간다. 

 

방법이 없다. 시간이 지나며 나아지길 바랄 수밖에...


5. 

 

육아의 또 다른 힘든 점은 '나'를 버려야 한다는 거다.

 

우리 세대는 세상에서 '내'가 제일 중요하다고 배웠다. 교육, 언론, 티브이, 사회 곳곳에서 우리는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다고, 우리는 존재 자체로 소중하고 존중받아야 한다고, 우리 스스로를 사랑하라고 배웠다. 그렇게 해야지만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고 성공하진 못하더라도 행복할 수 있는 줄 알고 살았다.

 

비록 커가면서 사회에 부딪히고 현실에 좌절하면서 ‘과연 나는 특별한 존재인가’하는 의문과 함께 일정 부분 사회와 타협하며 '지켜야 하는 나'와 '포기하는 나' 사이의 조정이 이뤄지지만, 그런 것들은 육아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애가 태어나면 '나'는 사라진다.

 

애를 키우다 보면 ‘왜 우울증에 걸리겠는지 알겠다'와 비슷하게 자주 드는 생각이 바로 '우리 부모님은 어떻게 우리를 키웠을까’ 다. 

 

우리 부모님들은 도대체 어떻게 우리를 키웠을까? 그때는 지금보다 육아에 대한 정보도 없었을 것이고 의학기술이니 육아 도구니 모든 면에서 후진적이었을 텐데. 어떻게 그런 환경에서 하나도 아니라 둘씩 셋씩 낳아서 키우셨을까.

 

부모님 세대는 결혼해서 애를 낳고 남자는 돈을 벌어오고 엄마는 애를 키우는 게 당연한 세상이었다. 그게 인생의 행복인 줄 알고 살았다. 그걸로 모든 어려움을 버티고 이겨냈다. 사실은 그거만큼 불행한 게 없다. 그 이면에는 부모님들은 온전히 스스로를 사랑할 줄 몰랐다는 사실이 있다. 부모님들은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지 못하는 걸 불행인지 모르고 살았다. 그래서 당신들의 자녀뿐만 아니라 자녀의 자녀를 봐주는 거까지 행복인 줄 알고 살아간다.

 

우리는 다르다. 스스로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줄 아는 걸로 치면 인류 역사상 최강이다. 강한 자아는 육아에 있어서는 불행으로 작용한다. 당장 하고 싶은 일 투성인데 육아에 시간을 뺏기는 것을 참지 못한다. 애를 보면서도 마음은 딴 데 가있다. 그게 뭐 그렇게 대단한 것들이 아니다. 좋아하는 드라마를 못 보고 하고 싶은 운동을 못할 뿐인데, 마치 내 삶 자체가 사라진 듯한 심정이다. 애를 낳으면 그것이 당연한데, 애를 낳고 기른다는 게 곧 포기를 의미하는데 그게 익숙하지가 않다. 그나마 시간이 지나면 점차 포기에 익숙해지고 나보다 애와 가족이 먼저 가 되는 게 행복하지만 씁쓸하다. 내가 최고라며 보고 들으며 한껏 키워놓은 강한 자아가 육아라는 현실과 만나면 불행의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나'의 소중함과 딸에게 잘해줘야 한다는 감정 사이에서 오는 괴리감, 거기에 수면 부족까지 겹치고 마지막으로 (실제로 절대 그렇지 않지만) 와이프는 나만큼 고생 안 하는 것 같은 생각까지 들면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엄청난 히스테리와 짜증 같은 것들이 마음속에서 소용돌이치는 순간들도 있다. 나 스스로가 미친놈처럼 느껴질 정도로.


6. 

 

수면 부족과 육아로 인한 희생 같을 것들은 한순간에 사치로 만들어버리는 최강의 고난이 있으니, 그건 바로 딸이 아플 때다.

 

이건 뭐 대책이 없다. 아무리 성심성의껏 애를 보고 단 한 번도 애한테 짜증 안 내고 경제적으로 환경적으로 부족함 없이 애를 키워도 애는 아프면 다 소용이 없어져 버린다. 내가 아무리 성인군자처럼 살고 남한테 피해 안 주고 내가 가는 모든 식당과 카페 알바들을 사장님처럼 존중하고 기부를 몇 백만 원씩 하면서 살아도 그것들이 내 딸이 건강하고 무탈하게 크는 걸 보장해 주지 않는다.

 

자기 손톱에 긁혀 얼굴에 생기는 생채기, 걷다가 넘어져서 드는 멍들 같이 마음만 아프고 마는 것들은 그나마 괜찮다. 아토피, 독감, 그 외에 무수히 많은 질병들. 비단 질병뿐만 아니라 ‘우리 애한테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야’하고 넘어가기엔 너무나 무궁무진한 삶의 아픔들. 

 

새삼 엄마 아빠가 물려준 외모를 마음에 안 들어하던 마음이 사라지고 이렇게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별 탈 없이 키워주신 게 고맙고 대단하게 느껴지면서 우리 딸도 다른 건 다 필요 없으니까 제발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만 자라줬으면 하는 마음이 마음속에 가득 찬다*.


(*) 물론 딸이 아플 때만 생기는 마음이다. 딸이 조금 낫는다 싶으면 여지없이 까먹고 딸에게 짜증을 낸다...

 

7. 

 

요즘은 먼저 하나만 잘 키우자는 남자들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그만큼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아빠들이 늘어난다는 방증이다. 실제로 남성 육아휴직이 많은 나라일수록 더 이상 아이를 갖지 말자고 하는 남자들이 많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부모님 세대처럼 남자는 제공만 하고(?) 열심히 돈 벌어오면 장땡인 시대는 지나갔다. 

 

실제로 와이프가 지인들에게 "남편이 둘째 낳기 싫데요. 힘들데요."라고 하면 십중팔구 "남편이 육아 많이 도와주나 봐?"라는 답변이 돌아온다고 한다. 

 

나는 도와주지 않는다. 나는 와이프와 동등하게(가끔은 더 많이) 육아(가정일 포함) 한다고 자부한다. 다만 ‘엄마’만이 채워줄 수 있는 부분들이 분명 있고 그 부분이 결코 작지 않음도 인정한다.

 

'최소 셋, 양보해서 둘'을 외치는 우리 와이프는 “애 갖고 입덧하고 10개월 동안 고생하고 배 아파서 낳는 건 난데 왜 네가 싫다는 거야."라고 말한다. 백번 천 번 만 번 옳은 말씀이다. 와이프를 포함하여 임신의 과정을 겪는 모든 엄마들을 존경한다. 임신이랑 군대를 고르라고 하면 군대 두 번도 갔다 올 수 있다. 10개월 동안 내 안에 생명을 품고 잘 먹지도 못하고 잘 자지도 못하고 노심초사하는 삶이란... 상상조차 하기 싫다.

 

그래도 싫다. 임신은 와이프가 하는 게 맞지만 육아는 와이프만 하는 게 아니니까.


8.

 

나 또한 결혼 전에는 ‘낳을 거면 셋 이상 아니면 아예 안 낳는다’를 노래하는 사람이었다. 애초에 결혼도 애를 갖기 위함이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런 나에게 우리 누나의 반응은 항상 같았다. “하나 낳아보고 말해.” 그렇다. 실제로 하나 낳아보니까 마음이 바뀌었다. 

 

작년 추석, 처가와 우리 집에서 차례로 정관수술을 선언했다. 육아로 인한 고충, 그로 인해 생기는 부부간의 갈등, 나이가 들수록 커지는 미래에 대한 불안 등을 고려했을 때 애를 하나 더 갖는 건 너무 ‘무책임하고 미친 짓’처럼 느껴졌다. 

 

자녀를 갖는 것 자체가 축복이지만 끝까지 축복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애가 돌 이전일 때 가장 힘든데, 그 고난을 다시 한번 겪을 자신이 없다. 


9. 

 

정관수술을 선언할 당시에는 당장에라도 묶을 마음이었지만 와이프의 강한 반대로 유보 중이다. 부부 사이의 문제인 만큼 내 마음대로만 할 순 없다. 하나만 낳아서 잘 기르라던 우리 부모님도 막상 내가 정관수술을 한다고 해서 그런지 아니면 와이프가 너무 강하게 반대해서 그런지 섣불리 묶지 말고 잘 생각해 보라며 태도를 바꾸셨다.

 

요즘은 와이프는 틈만 나면 둘째 타령이고 나는 틈만 나면 하나만 타령이다. 둘 사이에서는 절대 합의점이 이뤄지지 않을 것 같다. 정관 수술하기 전까지는 집에서 술도 만취할 때까지 안 마실 작정이다.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한다.

 

그래도 흐지부지될 일은 아니기에 결론은 내려야 한다. 와이프에게 내가 먼저 제안했다.

 

"우리 둘 사이에서는 합의가 안되니까 우리 딸이 조금 더 커서 말할 때 되면 그때 딸한테 물어보자. 딸이 동생 갖고 싶다면 갖고 싫다면 갖지 말자. 우리 세 가족 중 두 명이 원하는 거니까 너도 나도 깔끔하게 받아들이자."

 

와이프는 끝까지 내 제안에 대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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