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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를정한일 Feb 21. 2021

우리 아빠 자랑

우리 아빠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사랑과 존경은 서로 다른 감정이다. 아빠를 사랑하는 이유는 하나다. 우리 아빠기 때문이다. 아빠를 존경하는 이유는 많다. 그중에서 가장 큰 두 가지 이유가 있다.

 

공대 출신인 아빠의 첫 직장은 경상도 소재 조선사였다. 그 회사에서 3년을 일했는데 엄마의 전언에 의하면 아빠는 상사와 싸우고 회사를 때려치웠다고 한다. 아들로서 어쩜 이렇게 회사에서 하고 다니는 짓도 아빠를 똑 빼닮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두 번째 직장은 서울에 있는 건설사였다. 아빠는 공대 전공자지만 영어 능력자 셨다. 해외 현장을 돌아다니시면서 계약서 검토하는 일을 도맡아 하셨다. 나중에는 영어 실력과 계약서 작성/검토 능력을 인정받아 법무팀 팀장까지 맡으셨다. 회사에서 나름 전문 분야라고 할 수 있는 법무 업무를, 그것도 팀장을 맡았다는 건 법대 출신도 하기 힘든 일이다.

 

아빠는 대기업에서 정년을 채우셨다. 그것도 서울 본사에서. 그것도 일반 사무직으로. 우리나라 사기업 생태를 아는 사람이라면 "와 진짜 대단하시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대단하다는 단어도 그 어마어마함을 표현하기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중간중간에 위기는 많았다. 타의에 의해 회사를 옮기기도 했고, 쉰이 넘은 나이에 가기 싫은 해외 장기 파견으로 오랜 기간 가족과 떨어져 홀로 고생한 시간도 많았다. 그 모든 힘든 시기를 버티고 견뎌 60 초반의 나이까지 대기업에서 월급을 따박따박 받아내셨다. 한 번은 저녁 식사 중에 아빠한테 정말 대단한다고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이제 사장 말고는 회사에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 없어. 하하하."

 

쑥스러운 듯, 자랑스러운 듯 호탕하게 웃는 얼굴이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그 오랜 기간 회사를 다닌 아빠의 모습을 생각하면 한편으론 마음이 찡하면서도 아빠를 향한 존경심이 마구마구 솟아난다. 아빠 마지막 출근 날 "아빠 고생했어. 사랑해. (아빠 사진 땋)" 플래카드 들고 아빠 회사 로비로 찾아가지 않은 게 두고두고 한이다.

 

하지만 아빠가 대기업에서 정년을 채운 걸 존경하게 된 건 내가 회사 생활을 몇 년 하고 나서 이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피부로 느끼고 난 이후, 그러니까 20대 후반이다. 내가 아빠를 존경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어릴 때 아빠는 무섭고 어려운 존재였다. 잦은 해외 출장으로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았고 한국에 있을 때도 밤늦게 들어올 때가 많았다. 같이 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적기도 했지만 아빠는 나와 누나를 혼내기도 많이 혼냈다. 특히 종종 이해할 수 없는 포인트에서 정색하고 화를 냈는데, 나와 누나는 아빠의 그 정색을 제일 싫어했다(물론 이것도 내가 잘 물려받았다...). 나이가 들면서 아빠를 무서워하는 건 차차 줄어들었지만 마음 깊이 자리한 아빠를 어려워하는 마음은 고등학교 때까지 이어졌다. 

 

고등학교 2학년 어느 토요일 오후였다. 낮잠을 자고 있는데 누가 내 볼에다 뽀뽀를 하는 느낌에 눈을 떠보니 내 방에서 나가는 아빠의 모습이 보였다. 그즈음이었다. 아빠에 대한 무서움이 없어지고 마냥 편하고 친구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때가.

 

훗날 엄마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할아버지는 아빠를 엄청 엄하게 키우셨다고 한다. 그래서 아빠는 어른이 돼서 결혼을 하고 누나와 내가 태어난 이후에도 할아버지를 어려워했다. 할아버지는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갑작스레 돌아가셨다. 아빠한테 물어본 적은 없지만 아빠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더 이상 당신의 아빠와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다는 사실이 너무 슬펐던 게 아니었을까. 아빠는 누나와 나에게 할아버지처럼 어려운 아빠가 되고 싶지 않아서 스스로 변하기 위해 엄청 노력했다고 한다.

 

우리 아빠는 정말로 대단한 사람이다. 사람이 얼마나 자신의 부모를 닮을 수밖에 없는지, 보고 자란 대로 행동할 수밖에 없는지 알고 나니, 특히 어릴 때 싫어하던 아빠의 행동을 나도 모르게 따라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 아빠를 존경 안 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 사람이 변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거늘, 쉰을 앞두고 당신의 성격을 노력으로 바꿨다는 게 가장 존경스럽다. 내가 우리 딸에게 "우리 아빠 원래 그래."라는 말만큼은 절대 듣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 것도 아빠가 변한 모습을 보고 한 다짐이다.


나는 아빠를 세종대왕이랑 이순신 장군보다 더 존경한다. 


PS. 나이가 들수록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빠가 내 볼에다 뽀뽀한 게 꿈이었는지 현실이었는지 내가 만들어낸 상상이었는지 분간이 안된다. 아빠한테 물어볼까 하다가 '굳이?' 하고 말았다. 그냥 그날 아빠가 나한테 뽀뽀를 했다고 믿고 살란다. 그 뽀뽀는 비슷한 시기에 했던 내 인생 첫 키스의 감촉보다 더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내 인생 베스트 뽀뽀는 2018년 2월, 우리 딸이 처음으로 내 볼에다가 해준 뽀뽀다. 내 인생 그런 짜릿한 뽀뽀는 그전에도,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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