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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를정한일 Mar 13. 2022

감정에 관하여 - 간사, 나약, 입체

2006년 1월. 강원도 철원 3사단 백골부대 신병교육대.


2중대장 왈.


"육군을 땅개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들이 육군을 땅개라고 부르더라도 여러분들이 육군이 된 이상!!* 여러분들은 육군을 땅개라고 부르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를 깎아내리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알겠습니꽈아!?"


"백! 꼴!"


(*) 신병교육대 중대장, 소대장들은 문장 중간중간에 엑센트를 강하게 준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다.




어릴 때는 '사람이 참 간사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이럴 때는 이러고, 저럴 때는 저러는 사람의 모습을 그렇게 표현했다. 


언젠가부터 그 표현을 쓰지 않기 시작했다. 회사원이 되고 나서였다. 대신 '사람이 참 나약하다'라는 표현을 썼다. 표현은 달랐지만 같은 의미였다.


왜 '간사하다'에서 '나약하다'로 바뀌었을까.


회사를 다니다 보니 나 자신이 간사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당연한 권리인 휴가를 가면서 어쭙잖은 변명을 댄다거나, 절대 하지 않겠다던 눈치 야근을 한다거나, 무엇보다 웃기지도 않은 상사 앞에서 웃고 있는다거나. 깊은 회의감에 밤잠을 설치는 것도 하루 이틀이었을 뿐, 결국엔 그런 나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즈음 나는 '사람이 간사해서'가 아니라 '사람은 나약해서'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사람이 간사하다'. 


이 얼마나 오만하고 건방진 말인가. 이 말의 이면에는 본인은 간사하지 않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본인도 그 '간사한 인간'의 한 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 이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사용한다면 변태다. 스스로가 간사한 인간임을 즐기는 사람은 변태일 테니까. 


'난 간사한 인간이 아닌데 왜 (예전이라면) 간사하다고 생각하는 짓을 하는가.'


나약하니까. 


내가 평생 지킬 줄 알았던 가치관을, 삶의 원칙을 지킬 힘이 없으니까. 예전에는 몰랐지만 세상은 내가 알던 세상보다 크고 대단하고 무자비할 수 있으니까. 난 운이 좋아서, 내 가치관을 비교적 오랫동안 지키며 살 수 있었을 뿐.


난 간사한 게 아니라 나약한 거야. 만약 내가 힘이었었다면 간사하지 않았을 거야. 내가 힘이 없는 건 내 잘못이 아니잖아!!


그러다가 '나약하다' 마저도 바뀌는 날이 왔다. '나약하다'는 말도 이해는 되지만 굳이 좋은 말은 아니니까.


돈이 많으면, 잘 생기면, 친구가 많으면 마냥 행복할 것 같지만.

돈이 없으면, 못 생기면, 친구가 없으면 마냥 불행할 것 같지만.


왜 그렇지 않을까.


우리의 삶은 너무나 입체적이니까.


우리 인생은 너무나 각양각색이고, 우리의 삶을 둘러싼 배경은 너무나 다양해서.

이러면 이렇다, 저러면 저렇다고 절대 판단할 수 없으니까.


나는 간사하지만 간사하지 않고,

나는 나약하지만 나약하지 않고,

그럴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난 입체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이렇게 난 어른이 됐고, 나를 더 사랑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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