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위한 글 (3)
벌써 50일도 더 지난 지난해 말, 시도 때도 없이 글을 썼다. 아내가 어떻게 그렇게 글을 빨리 쓰냐고 물었다.
"머릿속에서 다 쓴 걸 그냥 옮기기만 하니까."
나는 머릿속에서 글이 완성되기 전까지 글로 옮기 쓰지 않는다. 100% 완벽하지 아니더라도 80% 이상 정리되야지만 옮겨 쓰기 시작한다. 나머지 20%는 실제로 써가면서 완성시킨다(이러한 글쓰기 방식이 내 글쓰기가 다음 단계로 성장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이 될 때도 없지만 어쩔 수 없다).
다른 사람들에겐 컴퓨터 앞에서 망설임 없이 타이핑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글을 빨리 쓰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그 글들이 머리 안에서 짧으면 며칠, 길면 몇 주 동안 숙성된 시간을 감안하면 절대 글을 빨리 쓴다고 할 수 없다.
나는 한 번에 하나의 글만 쓰지 아니다. 내 머릿속에는 적어도 3개에서 4개의 글감이 글이 되기 위해 다듬어지고 있다. 가끔은 그 글감들이 합쳐지기도 하고 쪼개지기도 하고 어느 것들은 그냥 사라져 버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머릿속에서 충분히 숙성되지 않은 글감은 억지로 꺼내려고 하지 않는다. 메모도 하지 않는다. 잊히는 글감은 어차피 세상에 나올 운명이 아니었을 뿐. 쓰여질 글은 어떻게든 쓰여지는 법이다. 무엇보다 한 번 글로 쓰여진 글감은 '마법'이 사라지므로 함부로 글로 만들어내지 말라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을 '결과론적으로' 믿는 편이다.
결국 머릿속에서 글감들이 정리되는 기간이 길어지면 글쓰기 공백이 온다(글감 자체가 없을 때는 없다. 글감은 항상 넘치고 넘친다). 예전에는 글쓰기 공백이 생길 때 아무 글이라도 써보자는 마음으로 일단 컴퓨터 앞에 앉아서 글을 써보려고 한 적도 있었다. 결과가 좋지 못했다. 대부분의 경우 글을 쓰다 말았으며, 꾸역꾸역 쓰더라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괜히 안 되는 거 억지로 해보려다가 자괴감만 느끼기를 수 차례 반복하고 나서야 억지로라도 글을 쓰려는 노력을 관두기로 했다.
정리되지 않은 글감을 억지로 꺼내려하진 않지만 머릿속 생각들이 빨리 정리되게 하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 바로 스스로를 '쫄리게' 만드는 것이다. 좀 있어 보이게 말하자면 스스로 배수의 진을 치는 셈이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작년 연말이다. 며칠 사이에 내가 많은 글들을 쓸 수 있었던 이유는 한 해가 가기 전에, 한 살 더 먹기 전에 뭐라도 해야 한다는 조바심 때문이었다. 머릿속에서 맴돌던 생각들이 '올해도 이제 끝'이라는 위기감에 빠따라도 맞은 듯이 자기들이 알아서 좌우 종렬 질서를 찾아갔고, 나는 그 질서가 흐트러지기 전에 컴퓨터에 옮겨 쓰기만 하면 됐다.
돌이켜보면 처음 글쓰기를 시작한 것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만 20살, 군대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으며, '나도 이런 소설을 쓰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로부터 10년 넘게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만 하다 실제로 글을 쓰기 시작한 건 만 32살이었다. 퇴사를 준비하기 위한 육아휴직을 무작정 시작하고,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회사엔 돌아갈 수 없다는 절박함이 글을 시작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였다.
절박하거나 쫓겨야지만 글을 쓰는 스타일이라. 마감이 있는 직업을 가져야 하나.
(*) 웬만하면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억지로 쓰려고 하지 않지만 아예 그런 경우가 없는 건 아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현타처럼 오는 날이라거나, 너무 강한 글감이 불현듯 머리 안에 꽉 차서 그 글감을 억지로 뱉어내지 않으면 온통 그 글감 생각밖에 안 날 때, 그 글감을 머리에서 지워버리기 위해서 억지로 글을 쓰곤 한다. 이 글이 바로 그 강한 글감을 억지로 머리에서 끄집어내기 위해 쓴 글이다. 며칠 동안 이 글감이 머릿속에 계속 맴돌아 다른 글감이 다듬어질 공간마저 모두 잡아먹었다.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건 너무나도 어렵다는 점과 억지로 쓴 글은 마음에 들기 어렵다는 점, 특히 결론을 맺기가 상당히 힘들다는 점을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