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를정한일 Feb 19. 2022

콧구멍을 쑤신다

코로나 검사 말고

부산 출장에서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여느 때와 같이 김포공항에서 집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타러 갔다. 기다랗게 서 있는 택시 줄을 따라 맨 앞에 있는 택시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앞에서 네 번째 택시를 지나고 있는데 맨 앞 택시 기사님이 택시에서 내리면서 날 맞이해줬다.


"안녕하세요!!"


정장을 말끔하게 입은 백발의 어르신이셨다. 나에게 거의 90도로 인사를 하면서 내 캐리어를 받아주시려고 했다.


"그냥 뒷자리에 넣을게요."

"아! 그렇시겠어요? 그럼 그렇게 하세요!"


출발한 지 얼마 안 돼서 기사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들으려고 한 건 아니지만 들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번 주에 만날 거냐고? 아니 그 영감이 계속 놀자고 콧구멍을 쑤시잖아. 그래서 내가 쉬는 날 일요일에 보자고 했지. 응. 응. 그래. 일요일에 만나."


짧고 굵은, 그리고 강렬한 통화였다. 기사님의 표현에 나도 모르게 풉 하고 웃어버렸다. 영감이 놀자고 콧구멍을 쑤신다니.


'콧구멍을 쑤시면 간질간질해서 재채기가 나오지. 놀 마음이 없었는데 친구가 콧구멍 간질간질거리듯이 마음을 들쑤셨다는 뜻인가?' 


속으로 콧구멍을 쑤신다는 말을 곱씹으며 그때까지 대충 봤던 기사님을 자세히 관찰했다. 햇살을 받아 투명한 은빛을 내는 듯한 백발. 잘 다려진 정갈한 정장. 힘 있는 목소리. 거기에 놀자고 콧구멍을 쑤시는 친구까지. 나이가 30살 정도 더 많아 보이는 기사님이 나와 내 주위의 젊은이들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발산하고 있었다. 잘 모르겠지만 가정과 친구들에게 사랑받는, 거기다 재미도 있는 할아버지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으로 '콧구멍을 쑤시다'를 검색해봤다. 콧구멍을 쑤신다는 표현이 있는지 궁금했다. 검색 결과에는 코로나 검사한다고 콧구멍 쑤시는 이야기밖에 없었다. 어학사전으로 찾아보니 콧구멍과 관련된 속담이 여러 개 있었는데 정확히 기사님이 말하는 그런 뜻의 속담은 없었다. 남을 부추긴다는 '바람을 넣다'라는 관용구를 '콧구멍을 쑤신다고 표현하신 것 같다.  



콧구멍으로 바람을 쑤시듯이 넣을 수 있으니 콧구멍을 쑤신다는 말도 틀린 건 아니다


기사님은 택시를 타기 전부터 내릴 때까지 마치 일병 말호봉이나 상병 일호봉 정도의 군인이 가지고 있을 기합과 힘 있는 목소리로 깍듯하게 날 대해줬다. 


"여기서 좌회전해주세요, "

"예!"

"저 앞에서 세워주세요."

"예!"

"카드 꽂아주셔야 돼요."

"예!"

"감사합니다. 들어가세요."

"예! 감사합니다!"


짧은 동행이었지만 기사님 덕분에 출장 피로까지 잊었다. 백발 할아버지에게서 에너지를 얻어서 집에 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식물을 키우는 재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