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검사 말고
부산 출장에서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여느 때와 같이 김포공항에서 집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타러 갔다. 기다랗게 서 있는 택시 줄을 따라 맨 앞에 있는 택시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앞에서 네 번째 택시를 지나고 있는데 맨 앞 택시 기사님이 택시에서 내리면서 날 맞이해줬다.
"안녕하세요!!"
정장을 말끔하게 입은 백발의 어르신이셨다. 나에게 거의 90도로 인사를 하면서 내 캐리어를 받아주시려고 했다.
"그냥 뒷자리에 넣을게요."
"아! 그렇시겠어요? 그럼 그렇게 하세요!"
출발한 지 얼마 안 돼서 기사님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들으려고 한 건 아니지만 들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이번 주에 만날 거냐고? 아니 그 영감이 계속 놀자고 콧구멍을 쑤시잖아. 그래서 내가 쉬는 날 일요일에 보자고 했지. 응. 응. 그래. 일요일에 만나."
짧고 굵은, 그리고 강렬한 통화였다. 기사님의 표현에 나도 모르게 풉 하고 웃어버렸다. 영감이 놀자고 콧구멍을 쑤신다니.
'콧구멍을 쑤시면 간질간질해서 재채기가 나오지. 놀 마음이 없었는데 친구가 콧구멍 간질간질거리듯이 마음을 들쑤셨다는 뜻인가?'
속으로 콧구멍을 쑤신다는 말을 곱씹으며 그때까지 대충 봤던 기사님을 자세히 관찰했다. 햇살을 받아 투명한 은빛을 내는 듯한 백발. 잘 다려진 정갈한 정장. 힘 있는 목소리. 거기에 놀자고 콧구멍을 쑤시는 친구까지. 나이가 30살 정도 더 많아 보이는 기사님이 나와 내 주위의 젊은이들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발산하고 있었다. 잘 모르겠지만 가정과 친구들에게 사랑받는, 거기다 재미도 있는 할아버지일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핸드폰으로 '콧구멍을 쑤시다'를 검색해봤다. 콧구멍을 쑤신다는 표현이 있는지 궁금했다. 검색 결과에는 코로나 검사한다고 콧구멍 쑤시는 이야기밖에 없었다. 어학사전으로 찾아보니 콧구멍과 관련된 속담이 여러 개 있었는데 정확히 기사님이 말하는 그런 뜻의 속담은 없었다. 남을 부추긴다는 '바람을 넣다'라는 관용구를 '콧구멍을 쑤신다고 표현하신 것 같다.
기사님은 택시를 타기 전부터 내릴 때까지 마치 일병 말호봉이나 상병 일호봉 정도의 군인이 가지고 있을 기합과 힘 있는 목소리로 깍듯하게 날 대해줬다.
"여기서 좌회전해주세요, "
"예!"
"저 앞에서 세워주세요."
"예!"
"카드 꽂아주셔야 돼요."
"예!"
"감사합니다. 들어가세요."
"예! 감사합니다!"
짧은 동행이었지만 기사님 덕분에 출장 피로까지 잊었다. 백발 할아버지에게서 에너지를 얻어서 집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