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도에 화분을 하나 선물 받았다. 회사에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취업 멘토 프로그램을 했는데 내 멘티였던 학생에게 받은 화분이었다. 사무실 책상에서 키울 수 있게 만들어져서 잘은 모르지만 키우기가 어렵지 않은 식물이었을 것이다.
특별히 한 건 없었다. 매주 월요일 아침 출근하자 마자 물을 듬뿍 줬다. 사무실에 햇살이 들어오는 곳을 찾아 일광욕을 시켜주기도 했다. 그게 다였다.
그렇게 한 해, 두 해 지났다. 그 식물은 죽지 않고 계속 자랐다. 처음 선물 받았을 때 화분 위로 '까꿍'하고 겨우 나올 정도의 크기였는데 줄기가 화분 옆으로 주렁주렁 늘어질 만큼 자라났다.
몇 해 동안 꾸준히 식물을 키우다 보니 회사에서 개인적으로 화분을 키우는 사람들과 친해지기 시작했다. 그들과 함께 화분을 갖고 회사 앞에 있는 꽃집에 가서 분갈이도 해주고, 영양제도 사서 꽂아주고 했다.
그렇게 알게 된 나의 '화분 메이트'들이 장기간 자리를 비울 때 그들의 식물을 나에게 맡겼다. 이직을 하는 사람도, 주재원을 가는 사람도, 육아휴직을 떠나는 사람도 나에게 잘 부탁한다며 화분을 맡기게 됐다. 하나둘씩 화분을 받다 보니 어느덧 내 책상은 식물로 가득 찼다.
그때도, 지금도 그 식물들이 종류가 뭔지는 하나도 모른다. 일주일에 한 번씩 물을 주고 햇살을 쬐여줬다. 너무 자라난 식물을 꽃집에 가져가서 가지치기를 한 적이 있었다. 그 화분은 육아휴직을 가는 사람이 나에게 맡기고 간 화분이었는데, 육아휴직 복직 후 내가 두 개의 화분을 주자 정말 대단하다며 나에게 연신 고맙다고 그랬다.
당시 팀장은 내가 탕비실에 화분들을 가져가서 물을 주는 걸 볼 때마다 항상 이런 말을 했다.
"진짜 대단해. 나는 키우기만 하면 죽던데."
정말 항상이었으니, 최소 수십 번은 들었다.
2017년. 내가 육아휴직에 들어가면서 화분들과 이별을 고해야 했다. 육아휴직 전 마지막 출근을 한 주말에 아내와 아이를 데리고 짐을 챙기러 사무실에 갔었다. 가져갈 건 챙기고 버릴 건 버리면서 화분들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친한 팀 동료의 자리에 모두 갖다 놨다. 그에게 문자로 '내 아기들 자리에 두고 가니 잘 좀 부탁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5-6년을 함께 한 화분들이었는데 특별히 정이 들거나 가져가서 계속 키우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당시에는 그저 회사와 관련된 모든 건 내 인생에서 지우고 싶었던 시기라 더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로부터 몇 달 뒤 화분을 맡겼던 동료에게서 잘 지내냐는 연락이 왔다. 이런저런 근황 토크를 하다가 내가 '우리 아기들' 잘 지내냐고 물었다.
"미안해요. 사실 걔들 대리님 육아휴직 들어가시고 한 달 도 안돼서 다 죽었어요. 3주 정도 물 주는 걸 깜빡했더니 다 죽었어요."
"아, 그래요? 어쩔 수 없죠 뭐. 괜찮아요."
정말 괜찮았다. 특별히 슬프거나 아쉽거나 그 동료를 비난하는 마음이 들지도 않았다. 다만, 그가 3주 만에 죽인 그 화분들이 내가 몇 년 동안 키웠던 거라고 생각하니 '내가 식물을 키우는데 뭐가 있긴 있었나?'라는 생각이 아주 잠시 들었다. 내가 별게 있는 게 아니라 그 동료가 관심이 없었을 뿐이었겠지만.
그로부터 4년이 지났는데 아주 가끔 그 화분들이 문득 떠오르는 날들이 있다. 지금 돌아보면 회사를 다니는 몇 안 되는 낙이었던 것 같다. 내가 화분들을 돌보고 있었지만 많이 의지했다. 그들에게 물 주는 날을 기다렸다. 화분이 가득 차게 물을 준 뒤 화분에 손을 대고 있으면 물이 아래로 내려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차가워진 화분을 손으로 느끼며 그 속에서 흙 한 알 한 알 사이를 적셔가는 물을 머리 속으로 그려보면 일주일 만에 드디어 물 맛을 보며 갈증이 해소되는 식물의 기분이 저절로 상상됐다. 그러면 괜히 내 갈증마저 해소되고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감정이 바로 '위로'였다는 걸 이제는 깨달았다.
지금은 회사가 공유 좌석제를 시행해서 회사에 '고정좌석'이 사라졌다. 매일 새로운 자리를 찾아야하니 식물을 키우기가 쉽지 않다. 집에서 키워보고 싶은데 아직은 애들이 너무 어리고 강아지와 고양이도 있어서 섣불리 화분을 들이기가 망설여진다. 가까운 미래에, 마음의 준비가 됐을 때, 다시 한번 식물을 길러보고 싶다. 그때는 식물에 대한 공부도 하고, 내가 키우는 식물들에 이름도 지어주고, 더 많은 애정을 갖고 키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