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물었다. 수능을 볼 것도 아니고, 취업 준비를 할 것도 아니기에 갑자기 영어공부를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외국계 회사에 이직한다거나 해외 주재원을 노린다거나 등등.
"그냥."
A의 대답에 나와 다른 동창 B는 동시에 서로의 얼굴을 쳐다본 후 아무 말도 없이 밥을 먹었다. A도 입에 한 숟갈 밥을 먹고 씹다가 (지 혼자) 변명했다.
"그래 알아 새끼들아. 나도 내가 영어공부 안 할 거라는 거."
동창 B는 유명한 헬스 유튜버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 구독자수가 10만이 넘었고 소속사 같은 것도 있으니 확실한 유튜버가 맞다.
어느 날 어떤 운동을 할까 한창 고민만 하던 중, 신박한 운동기구를 발견했다. B에게 운동기구 사이트를 보내주면서 물었다.
"야. 이거 어떠냐. 이거 운동 좀 되겠냐?"
"몰라..."
"네가 모르면 어떻게 해. 무슨 운동을 해야 하는지 알려줘."
"그냥 아무거나 해... 하는 게 중요하지... 뭘 하는 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야. 나한테 왜 이래. 이렇게 남 이야기하는 것처럼 말할 수 있어? 날 포기하지 말아 줘."
"너... 남 맞잖아... 난 널 포기한 지 오래야... 그냥 아무 운동이나 해... 하는 게 중요해..."
나이 들수록 동기부여가 힘들어진다. 어렸을 때는 뭔가 마음을 먹으면 최소한의 목표를 달성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시작하기도 힘들다.
이유는 명확하다. 인생에 신경 쓸 일들이 많아졌다. 예전에는 나만 잘하면 됐는데 이제는 나만 잘해서는 안된다. 내가 뭘 하고 싶으면 아내와 애들의 희생이 기본적으로 바탕에 깔린다. 금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면 오히려 깔끔하다. 하지만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일이면 아내는 독박 육아를 해야 하고, 아이들은 아빠와 놀고 싶은 시간을 포기해야 한다.
가정과 아이들이 우선이라는 원칙으로 가족들에게 집중하려고 하지만 막상 그게 되지 않는다.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는 온통 내가 하고 싶은 일 생각 투성이다. 그게 운동이든 공부든 일이든 글쓰기든. 그러나 아이들이 잠들고 막상 나만의 시간이 생기면 그냥 퍼질러 쉬고 싶어 진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렇게 나를 짜내어 무언가를 해야 하는가 하면서 말이다. 결국 가족과 개인적인 목표 모두 다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생활을 지금 수년째 이어오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들이 대단히 어렵다거나 나만의 시간이 많이 필요한 일도 아니다. 가령 글쓰기나 (웹툰을 그리기 위한) 그림 연습을 예로 들자면 하루에 삼십 분 정도면 충분하다. 물론 매일같이 성과를 낼 수 없겠지만 하루 30분이 꾸준히 쌓이면 언젠가는 무언가가 될 수 있다. 막상 30분의 여유가 생길 때, 글쓰기에 투자하고 싶어지지 않아 진다. 그냥 쉬어서 핸드폰 보다가 자고 싶어 진다.
명확한 목적. 또는 목표.
그런 것들이 없기 때문이다.
동기의 부재는 회사 안팎에서 모두 적용된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회사에서 실제로 '주인의식'을 운운하는 선배들이 꽤 있었다. 언젠가부터 '주인의식'이라는 단어는 꼰대를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단어가 되어 거의 금기어가 된 지 오래다.
그와는 별개로 주인의식이 과연 무엇인지 한 번 고민을 해본 적이 있었다. 주인의식이란 무엇인가. 쉽게 말하면 내가 주인이라는 생각으로 무슨 일을 하거나, 무언가를 대하라는 뜻이다. 내 것처럼 아끼고 깊게 고민하고 책임감을 가지라는 의미가 모두 담겨있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주인인 것들을 소중히 대하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가장 대표적으로 우리 몸. 다른 건 몰라도 우리 몸은 우리가 주인인 가장 확실하고 대표적인 물체(?)이다. 우리는 우리의 몸을 아끼고 깊게 고민하고 책임감을 갖고 대하는가? 매일 운동하고 몸에 좋은 것만 먹고 숙면을 취하고 어두운 곳에서 핸드폰은 일절 보지 않고 술도 한 모금도 안 마시면서 몸을 관리하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은? 방은? 차는? 핸드폰은? 모두 우리가 주인인데 그것들을 '주인의식'을 갖고 소중하게 대하고 살고 있는가? 물론 그런 사람들도 적지 않겠지만 많은 사람들은 주인이기 때문에 더 막대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게 주인의 특권이다. 편하게 자기 마음대로 대할 수 있는 권한.
나는 한 번도 회사에서는 물론 인생을 통틀어 '주인의식'을 갖고 살아본 적이 없다. 심지어 몇 년 전 창업을 했고 코로나로 인해 한 달에 100만 원의 손실이 발생할 때도 마치 남일처럼 대응했다. 어쩔 수 없지 뭐. 일단 월급으로 때우지 뭐. 코로나라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긴 하였지만 그때 난 깨달았다.
'난 내 사업을 해도 '주인의식'이 없는 사람이겠구나. 함부로 사업하면 안 되겠구나.'
요즘 내가 하고자 하는 1순위. 글을 쓰고, 그 글들을 책으로 엮는 것도 어찌 보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좋은 글을 쓰고 좋은 책을 내고자 한다면 한도 끝도 없이 어려워지겠지만 난 내가 쓸 수 있는 글을 쓰고, 내가 만들 수 있는 책을 만들고자 하기 때문에 한도 끝도 없이 어려워질 일이 없다. 그저 쓰면 되고, 그저 그 글들을 책으로 엮으면 된다.
근데 하지 않는다. 머릿속에 글감이 없는 것도 아닌데 글을 쓰지 않는다. 새로운 글을 쓰지 않더라도 이미 써 놓은 글이 충분하여 책으로 엮을 수 있는데 그 작업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두 가지를 각자의 핑계로 삼는다. 마음속에 새로운 글에 대한 압박이 생길 때는 '이미 써 놓은 글 많으니까 일단 책으로 엮는 작업을 시작해야지'라는 핑계를 대고, 이제는 정말 책을 만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압박이 생길 때는 '일단 새로운 글을 더 써야지. 글감이 없는 것도 아니잖아?' 핑계를 댄다. 다른 사람도 아니라 바로 나 스스로에게 요리조리 핑계를 대는 것이다.
동기 부여가 안 되는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바로 성과가 없다는 것. 정확히 말하면 내가 원하는, 내 삶을 바꿔놓을 정도의 드라마틱한 성과가 없다는 것.
무언가를 꾸준히 하기 위해서는 의욕 관리가 필수다. 성과는 의욕 관리를 위한 외부적인 요인이다. 즉 성과는 내가 스스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직간접적인 인정이 필요하다. 하지만 불행히도 대부분의 보통의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가 쉽지 않다. 다른 사람들의 인정이 기반이 되어야만 생기는 수익과 그로 인한 인생의 변화도 당연히 요원하다.
그래서 의욕 관리를 하기 위해 작은 목표를 세우라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알아주지 않지만 나 스스로 작은 성공들을 이뤄내면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을 다 잡는 것이다. 큰 목표는 오히려 좌절하게 만들지만 작은 목표는 '그래도 해냈다'라는 정신적 힘을 얻는 것이다.
정말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불행히도 나는 그렇게 생각이 잘 안 된다. 나 혼자 작은 목표를 세워놓고 '오늘 난 해냈어! 내일도 해내야지!'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적당히 똑똑해서 '티끌 모아 티끌이지 괜히 고생하지 말고 쉬자'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쓰고 있는 이유는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는 생각과 '이거라도 하지 않으면 내일 후회하겠지'라는 생각 때문이다. 나는 작은 성공보다는 오히려 자책 또는 후회에 대한 두려움이 더 확실한 동기 부여가 되는 스타일이다. 다만 두려움에 쫓겨 내가 하고자 하는 바를 이뤄내기가 더 어려워지고 있다. 두려움 자체가 엄청난 정신적인 스트레스이며 가끔 감정 조절에 실패하면 괜히 주위 사람들에게 짜증을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성과가 필요하다. 내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성과. 그게 바로 돈이면 좋겠지만, 일단 돈을 벌 수 있는 수준으로 나의 콘텐츠들의 수준을 업그레이드해야겠다. 그때까지는 어쩔 수 없이 두려움과 절박함 같은 감정을 활용해야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