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너는 요새 무슨 낙으로 사니?"
삼십 즈음.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이 참 많이 하던 말이다.
하는 일, 사는 곳, 갖고 있는 재산 등이 다 다름에도 불구하고 똑같이 했던 그 말.
요새 삶의 낙이 뭐니. 또는, 뭐 재미있는 일 없냐?
서른이라는 나이는 인생에 더 이상 새로운 게 없다고 느끼기 시작하고,
인생의 재미가 더 이상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쟁취해야 하는 것임을 깨닫는 나이였던 것 같다.
2.
'어떻게 인생을 살 것인가'
삼말사초.
요새 내가 자주 사용하는 표현인다. 삼십대 후반 사십대 초반을 의미한다.
삼말사초의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이든,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자식이 있든 없든, 재산이 얼마든간에
비슷한 생각을 하는게 있다면 '어떻게 인생을 살 것인가'인 것 같다.
3.
칼 같이 구분할 순 없지만 서른 즈음에는 지금 어떻게 하면 더 재미있게 살 수 있을지에 관심이 더 많다면
마흔 즈음에는 이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지 하는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다.
마흔 이라는 나이가 더 이상 내가 어리지 않음을 느끼고, 미래의 불안함보다 그것의 유한함이 어렴풋이 느끼는 나이가 아닌가 싶다. 달리 말하면 나의 젊음과 건강, 생명력의 유한함을 느끼는 나이라고 할까.
공자는 마흔을 어떠한 유혹에도 넘어가지 않는 나이라는 의미로 불혹이라고 불렀다. 그 이면에는 마흔이라는 나이에 가장 많은 유혹에 노출되는 나이라는 것이 전제되는 것이 아닐까. 인생에 있어 가장 많은 것들을 고려해야 하는 나이, 청년기를 지나 노년을 앞두고 가장 중요한 기점이 되는 나이가 마흔이지 않을까.
4.
그 자체로 빛 났던 젊음과 앞으로 점점 더 무거워져만 갈 세월의 무게 사이에서 나는 오늘도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할까 고민한다.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0.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인생을 살 것인가. 순서를 바꿨을 뿐인데, 다른 질문 같이 느껴진다.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면 '난 인생에 대해 잘 알고 있어! 어떻게 하면 더 잘 살 수 있는 방법도 알고 있고, 난 그렇게 살거야!' 하는느낌이 들고, 어떻게 인생을 살 것인가 하면 '휴..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지..?'하는 막막함이 묻어있는 느낌이랄까.
어떻게 하면 인생을 잘 살 수 있을까. 고민하면 할수록 정작 잘 사는게 무엇인지 점점 더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