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순간까지 고민하다가 결국 냉장고에서 막걸리를 꺼냈다. 고민은 취침시간만 늦춘다고 했던가!! 건강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고 살 빼는 것도 중요하고 빨리 자서 내일 육아를 위해 컨디션 조절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봄비 소리가 들리는 막걸리 한 잔 안 하는 건, 그건 행복이 아니다. 요즘 체중 조절을 하는 사람의 마지막 양심상 안주 없이 막걸리만 먹기로 했다.
사실 막걸리를 사 온 건 밤 열한 시가 다 되서였다. 그때도 역시 막걸리를 사러 갈까 말까 고민하던 중이었는데 아내가 잠시 나갔다고 온다고 해서 대뜸 "막걸리 사와!!" 그랬다.
"마트에 막걸리가 안 남았더라. 세 병 남아있었는데 세 병 다 사 오려다가 그냥 두 병만 사 왔어. 근데 자기야... 비가 오는데 하나도 안 추워!!"
추수 시기에 까마귀들을 위해서 감나무에 감을 몇 개 남겨두는 심정이었을까.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내서 그런지 시골소녀의 정이 아직 남아있다.
안 그래도 요즘 아내와 봄의 기운이 너무 좋다는 말을 시도 때도 없이 하던 중이었다. 아내는 연신 노천 포장마차를 가고 싶다거나 한강이나 공원에 돗자리를 깔고 맥주를 먹고 싶다고 그랬다. 근데 막상 가라면 또 절대 가지 않는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기. 패딩과 코트와 반팔과 반바지가 공존하는 시기. 어제는 처음으로 집 앞에서 꽃이 핀 나무도 봤다. 고작 하루 만에 꽃이 눈에 띄게 늘었다.
매년 겨울이 다 가버렸다는 걸 깨달을 즈음이면 항상 하는 생각이 있다.
제발 한 번만 더 눈이 내렸으면...
겨울이 다 가기 전에 호떡이랑 붕어빵 좀 많이 먹을걸...
정녕 이대로 겨울이 다 가버린 건가?
난 제대로 이별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난 아직 봄을 맞이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서른일곱 살에 맞이하는 첫 봄비. 찔끔찔끔 와서 아쉬울 뻔했는데 갈수록 빗소리가 시원시원해진다.
빗소리 안주에 십장생 막걸리.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