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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ie Jan 10. 2024

F가 우는데

T가 사라졌다

프라이버시를 지켜주는 의미에서 누구인지는 밝히지 않겠다. ㅎㅎ 물론 F는 me.


나는 대개,

조용히 소리 없이 우는 편인데

혼자 있어도 소리는 없이 운다.


소리를 낸 적이 몇 번 있었겠지만

그런 날은 드물다.


그날은 엄마에게 다녀온 날이다.

우리 엄마는 사랑을 한 글자로

"희생"이라 정의하는 분이다.


자신의 어머니가 그렇게 희생하셨고

우리 엄마가 희생하며 살던 어느 날

암 판정을 받고 조용한 투병이 시작되었다.


닥터 거슨은 암을 두 마디로 정의했다.

"독소의 과잉, 그리고 영양의 결핍"


사랑에 한계는 없을지언정

사람에게는 한계가 있다.


아무리 엄마에게 이야기해보아도

가 보면 엄마는 자꾸만 희생을 자처했다.


새로 등록한 교회에서 집마다 돌아가며

구역예배를 드리는데 부모님 순서가 되면

엄마는 그 건강한 사람들을 챙기느라

자신은 먹지 못하는 떡을 찌고 청소를 하고

한 끼 겨우 먹은 날 그렇게 애를 쓰고 있었다.


"엄마, 엄마가 지금 남을 섬길 때가 아니야.

그건 낫고 나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지금 오늘 즙도 다 못 마시고, 겨우 한 끼 먹고,

자신을 못 챙기고 나도 엄마를 다 못 챙기는데,

 사람들은 엄마 건강에 사실 큰 관심이 없어.

진짜 관심이 있다면 지금 와서 엄마를 도왔겠지.

마 건강은 엄마가 챙겨야 돼. 남들은 몰라.

잠시 중단을 하든지, 아니면 엄마가 양해를 구하고

제가 요즈음 몸이 더 안 좋아져 힘이 드니

저희 집 방문은 당분간 빼주시면 안 될까요? 하면

누가 안 된다고 하겠어. 아무도 엄마 욕 안 해.

만일 그런다 상종할 필요가 없겠지.

그런데 그런 사람들도 아니잖아."


아무리 말해도 엄마는 듣기만 할 뿐,

가 보면 여전히 같은 생활이 이어지고 있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


자신을 챙기는 방법, 몸을 사리는 방법,

나를 위하는 방법을 어쩌면 모르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운전하는 내내 많은 생각을 하며 돌아왔다.

가녀린 엄마가 진물이 나는 피부로 고생하면서

손님 맞을 준비를 하던 모습에 마음이 너무 아파

엄마는 어떠냐는 질문에 나도 모르게 그만,

이야기 도중 울게 되었다.


울 때 소리를 내지 않는 나라도

눈물을 쏟으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울음의 톤이 섞여 나왔다.


"그래서 엄마한테 내가 그랬어.

엄마, 엄마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설령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만 있대도,

엄마는 소중해. 우리한테 소중하다고.

엄마의 가치는 그대로라고. 내가 그랬어."


한참 눈물을 쏟다가 옆을 보았는데

아무도 없었다.


내 이야기를 듣던 T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져 버렸다.


뭐였지? 순간 이동인가.

덕분에 빨리 눈물을 그칠 수 있었다.


얼마 뒤 다시 그 장면이 떠올라 웃겨서

엄마에게  그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옆을 봤는데..."

"... 없어졌어?"

"ㅋㅋㅋㅋㅋ 어떻게 알았어?ㅋㅋㅋㅋ"


나와 엄마는 약속한 듯 웃기 시작했다.

즐거워서 웃은 것은 아니지만 왜인지

우리 F들에게 그 장면은 웃프기도 했다.


"내가 울면서 흥분해서 도망갔어"라고

농담반 진담반 이야기 했다.


"T도 마음이 아팠을 거야."


"아, 그야 그랬겠지.. 근데 도망갔어"


보통은 어깨를 토닥인다거나

옆에 있어 준다거나

무엇이든 한 마디 거든다거나

이런 것이 자연스러운 나에게

이 사건(?)은 코믹하기까지 했다.


나중에 그날의 이야기가 나왔을 때,

당사자가 나에게 한 대답은

진심 너무 웃겨서 나를 빵 터지게 했다.


"나는 말이 다 끝난 줄 알았어."


내 말이 끝난 것은 사실이었다.


"나도 그런 얘기 들으면 마음이 아파"


이야기를 들었으니 할 일을 하러 간 것이라고..


이 작은 일 덕분에 T와 F의 반응이

얼마나 다른지 다시금 깨달았고

T들을 오해 없이 존중할 수 있는

무한티켓을 한 장 더 얻게 되었다.


p.s.

공감은 물론 F에게 더 잘 되면서도,

막상 동경하거나 이상적으로 느끼는

유형들은 공교롭게도 혹은 당연히도

mbti에 T가 들어간다. 아마도 내가

T처럼 잘 못하기 때문이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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