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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ie Nov 14. 2024

Московские окна

모스크바의 창문들

Moscow Windows

Moscow Windows / Proletarskoe tango

이 노래를 한국에 돌아와서야 알게 되었다.

러시아인이라면 대부분 알고 있고, 심지어

푸틴이 이 멜로디를 피아노로 직접 친 적도

있으며, 올해 북에 방문한 푸틴 축하공연에

이 곡도 들어갈 만큼 러시아 '국민가요'랄까.


노래는 그냥 듣기에도 좋으니 감상하시고,

오늘은 작곡가와 우리 학교 작곡과에 대한

여담을 늘어놓을까 한다.


작곡가는 Тихон Хреннников(Khrennikov)

이 역시 물론 러시아를 떠난 뒤에 알게 됐다.


흐롄니코프는 나에게 꽤나 가까운 이름이다.

왜냐하면 나의 작곡 교수님이 그의 '수제자'

였기 때문이고, 흐롄니코프 손자도 어릴 때

우리 교수님에게 배웠으며, 같은 시기 같은

음악원 작곡과였다 보니 페친이기도 했달까.


보통, 교수님이 같으면 가족 느낌이 되는데

얘는 우리 교수님께 어릴 때 이미 다 배워서

대학은 다른 젊은 교수님께 갔지만, 어릴 때

가족 같이 지낸 분은 우리 교수님이라서인지

이 교수님 제자라면 좀 더 친근한 게 있었다.


자기랑 마주치면 아는 체 꼭 하라고 했는데

좀 수줍어서..ㅎㅎ 몇 번 인사하다 나중에는

멀리서 보이면 그냥 못본 척 우회했던 기억.

애는 착했다. 느낌상 약간 귀공자 같은 타입.

그도 그럴 것이 흐롄니코프는 일종의 뭐랄까

친구 말에 의하면 '마피아'. 아, 물론 음악계.

한마디로 음악계 금수저 집안 손자님이셨지.


흐롄니코프는 스탈린상, 내 교수님은 레닌상,

그렇게 시대가 흐르다 푸틴으로 넘어온 건가.

당시 스탈린은 흐롄니코프를 러시아, 아니지,

소련 작곡가 연맹 의장으로 43년간 앉혔다.


나중에 BBC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작곡가들

(Shostakovich, Prokofiev)에 대한 비난의

연설글을 읽도록 정부에 강요받았다고 하며,

안 하면 그 때 어떻게 됐겠는가 한 적이 있다.

탈출이나 한다면 모를까, 숙청이 흔하던 시대.


Kissin plays Khrennikov

피아니스트 키신(Kissin)은 클래식 음악계의

대표 노란 레이블(Deutsche Grammophone)

음반에 흐롄니코프의 현대음악을 레코딩했다.


키신은 유대계 러시아인으로 국적이 3개이다.

그의 인터뷰를 훑어보면 희한하게도 소련의

앞잡이와도 같았던 흐롄니코프를 옹호한다.


왜냐하면 (키신의 말에 의하면) 그는 자신의

직위로 실제로는 많은 사람을 도왔다고 하며

키신도 많은 사랑을 받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흐롄니코프의 부인도 유대인이었다. 소련에서

유대인 차별이 심할 때나 작곡가 색출할 때도

"박해 속에서도 살해된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즉, 연맹들 중 목숨이 가장 잘 보존된 연맹은

작곡가 연맹이었다는 것. 사람들을 보호하려고

애썼다는 증언. 전체주의 정권 고위직몸담은

사람은 불가피하게 어떤 말을 하더라도, 그가

실제 하는 행동과 분리해서 봐야 제대로 알 수

있다며 키신은 아마 그에게 감사하는 것 같다.


흐롄니코프, 크롄니코프, 어떻게 적어도 애초에

한글로는 러시아어 발음을 적어낼 수 없음 참고.



정보력 없는 나에게 소식통 친구들이 있었다.

대학 1학년 말, 미국이나 독일로 떠날까 하다

남는 대신 전공 교수님을 바꾸기로 결정했다.

무식이 용감하다고 일을 저질렀지만, 그러한

무모함은 전에도 후에도 없던 역사였다는 건

나중에 알게 됐다. 뭘 이렇게 다 나중에 알지?


"Chudova가 그중 가장 잘 가르치지 않나?"


음악적으로 200% 신뢰하던 절친의 한마디에

그녀에게 전화를 걸던 긴장의 밤이 생생하다.

다행히 나를 기억하고 계셨던 그분은 "시험 때

들은 당신의 첼로 소나타가 내 맘에 들었어요.

내게 배우고 싶다면 제자로 받아줄게요."라고

하셨고 그렇게 전화 한 통으로 제자가 되었는데

이를 알게 된 한 유학생이 무척 유난을 떨었다.


- 너, 어떻게 추도바 클래스에 들어갔어???

 어떻게 들어간 거야? 거기 외국학생 없잖아.

- 아, 그래? 난 잘 몰라.

- 야, 무슨 말이야. 도대체 어떻게 바꿨어?

 일부러 줄 선거지? 교수님이 직접 받아줬어?

- 무슨 줄을 서? 알아듣게 말을 해 봐.

- 추도바가 흐롄니코프 수제자잖아!

- 흐롄니코프 이름만 아는데.. 아.. 차이콥스키

 콩쿨 주욱 총 디렉터였나. 거기 제자였구나..

- 너 진짜 몰라, 아님 모르는 척 하는 거야?

 흐롄니코프는 볼쇼이홀 큰 연주 있으면 대통령

 앉는 귀빈석 있잖아, 거기에 앉는데 그 옆에 딱

 한 명 더 앉았잖아, 추도바. 추도바만 옆에 둬.

- 몰랐다... 작곡 연주회에 하도 안 가서.....

- 흐롄니코프는 러시아 현대 작곡의 일인자이자

 일종의, 거의 마피아 수준이야. 그냥 대표라고.

T. Khrennikov and T. Chudova 흑백시절
흐롄니코프, 로스트로포비치, 코간, 푸틴, 우리 교수님(여), 전 문화부 장관이자 울 학교 전 총장님 등

동기는 나를 믿지 않았고(전공이 같아서인가)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말은 아무튼 사실이었다.

그녀가 날 받아줄 수 있었던 건, 본인이 이미

남 눈치 필요 없는 나이와 위치에 있었으므로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던 덕도 있었다. 나에겐

교수님을 바꾸지 못한다면 나라를 바꿔야 할

진중한 일이었으므로 큰 기도의 응답이었고.


얼마나 큰 일을 저질렀는지를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작곡과 시험날에

모든 교수와 학생들이 한 교실에 모여드는데

(작곡과는 인원이 악기전공보다 비교적 적다)

내 순서에만 몇몇 교수님들이 눈치를 살폈다.

내 옛 교수님과 현 교수님의 사이에서 난감한.


자길 배신하고 힘있는 교수님께 간다 오해한

옛 교수님은 1년 동안 내 인사를 받지 않았고,

내가 죄송해서 혼자 계속 인사를 드리자 2년

째부터는 존댓말로 인사를 받아주게 되셨다.


이것은 마치 한 쪽만 이혼을 요구하고 한 쪽은

거부하는데 결국 억지로 이혼해서 갈라진 후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 합석한 자리와 같았던 것.

'작곡과'라는 국가에서 최초로 이혼한 느낌마저.

저지른 후에야 깨달은 것은 어쩌면 다행이었다.

알았다면 나라를 옮겨야만 했을 테니까 말이다.


아 참, 흐롄니코프는 현대음악 작곡가였지만

1950년 말, 요양원에서 치료를 위해 쉬던 그를

'그리고리 알롁산드로프'라는 감독이 찾아와

자신의 영화에 들어갈 노래를 부탁해 만든 곡.


가수 버전은 한 번 들었으니 성악가 버전으로.

클래식 좀 알면 무조건 아는 Hvorostovsky.

Dmitri Hvorostovsky / Moscow Windows (Khrennikov) 노래를 기깔나게 잘 한다


다른 교수님이 언젠가 이런 이야기도 하셨다.


"흐롄니코프 93세 생신이 다가올 때, 우리학교

 작곡과 교수들이 다 엄청 고민을 했어요. 대체

 무슨 선물을 드려야 할 것인가. 다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가 누가 아이디어를 낸 거예요.

 다른 먼 도시에서 은퇴한 작곡과 교수님 중에

 올해 딱 100세가 된 분이 계시다니, 그분에게

 흐롄니코프 생신 축하 메시지를 부탁해 보자고,

 다들 무릎을 탁 쳤죠. 최고의 선물이 됐어요."




아래는 보너스(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참고로

댓글이 아주 재미있어서 댓글을 즐겁게 보았다.

그리고 아무튼 내 입장에서는 이 피아노 실력이

ㅋㅋㅋㅋㅋㅋ 아기를 보는 것 같다 ㅋㅋㅋㅋㅋ

지구의 온 인류가 안전하고 평화롭기를 바라며.

한손짜리를 양손으로 하는 센스를 보니 응용력 있는 편. 푸틴 보고 피아노가 떨어서 음정이 흔들렸다고 한다.

응, 나는 번역에 소질이 없으니까 복붙 가사

At the moment darken night the sky,

At the moment windows were light...

The place is home of my friends,

I had stayed and looking there...

There are living favourite my friends...

I can dream about others things,

When I walk in garden under trees.

Glowing windows of the build

Look at me and on the street,

It’s fantastic pictures in my life.

As before, I’ll stand about your home,

I will thing about past a love.

When I see the windows light,

I remember my the youth

It were better years in my life.

I live look on windows every night,

I want wish for friends a good luck...

Light from windows many years-

It’s for me a joyfulness.

It make me happy many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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