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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ie Dec 25. 2024

사랑만 남는다

Love never fails

모두 러시아 모스크바 국립음악원 기숙사 시절에

친구들로부터 기숙사 안에서 받았던 선물들이다.

요시토가 매번 가져온 선물과 자기 CD, 감기약
하도 날 많이 챙겨줘서 친구들 한 번 초대했더니 준 새해카드
일본에 안 가서 선물이 없을 때 요시토가 주던 티와 라파엘로
마키오가 꾸준히 가져오던 별사탕과 단풍(?)빵 및 과자
암스테르담 다녀온 디나라의 풍차 및 러시아 초콜렛
유호가 일본에서 내 선물로 사 온 "羊" 인형 받자마자 인증샷
타미쨩이 선물해 준 예쁘고 고급진 손거울 및 쿠키
마쓰미상이 준, 남은 두부, 미소만 / 삿쨩이 준 젤리
사오리가 준 한국수출 과자 / 야쓰오가 준 양갱
Cora가 영국에서 사온 쿠키, TH이 뮌헨에서 가져온 고추장과 초콜렛
IM가 준 쿠키 / 직접 만들어 준 닭가슴살 샐러드
IM가 준 생일 스펀지밥 케익과 록시땅 / 목걸이
한국 룸메 J가 준 식물 / 호주에서 C가 보내온 오일과 꽃잎
러시아에서 귀한 "떡" / 직접 만들었다는 빼빼로 누가 줬지..
마키오가 준 라멘과 한국 친구들이 준 과자 초코 꽃
지나칠 수 없었다며 각각 세 명이 사다준 스펀지밥 시리즈
Il Patio에서 나에게 맛있는 저녁식사를 선물해 주었던 K


사람에 대한 마음의 온도가 하향하려 하던 날에

하나님은 생각지 못한 사람을 통해 노크를 했다.

한 번은 꼭 봐야 한다고 생각하게 한 겸손하고 고마운 인물

언젠가 조금 적은 적 있는데, 초기에 내가 무심하게

인사도 제대로 안 했음에도 겸손함과 배려심으로 날

부끄럽게 했던 사람이 이 인물이었다.


무엇보다 나도 잊었던 내 음악을 들어준다는 것이

이 날의 헝클어진 나에게 한편 위로가 되었을 지도.


참 오랜 만에 앓으면서도, 곧 있을 연주에 지장이

생기면 안 되니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모드인데,

피아노를 영 못 치며 불편한 마음으로 누웠더니

어젯밤에는 몇 년에 한 번 꾸는 악몽이 펼쳐졌다.

(연습이 전혀 안 되어 있는데 사람 앞에서 연주)


오늘 오전 9시 성탄 예배에도 의지로 다녀왔고

널브러지다 악보를 보내고 피아노는 10분 쳤다..


이미 저녁, 보내지 않으려던 성탄 축하 메시지를

결국 보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심지어 내게

도움을 주셨던 두 이웃에게는 이 선물까지 직접

만들어서 드리고 오는 자신을 다시금 발견하였다.

아기가 발라도 되는 천연 유기농 보습 오일 크림 by Essie

존경은 하지만, 고맙게 생각은 하지만, 일 년 내내

연락을 한 번도 안 하고 방치하듯 두었던 상대에게

메리크리스마스를 보내기에는 뭔가 애매했음에도

결국 보내자 한결 같은 태도로 답이 금방 돌아왔다.


현성아, 잘 지내고 있지? 요새 어떻게 지내?

나는 올 한 해 전공의 사태로 엄청 힘들게 보냈어.

당직 서고 환자 보느라.. 등의 메시지 뒤에 역시나

'생각해 주어 너무너무 고맙다'라고 해오는 상대를

보면서, 역시 이 사람은 내가 본받아야 할 사람이라

생각했다. 누구보다 유연한 성격. 늘 겸손한 자세.


그러다 특정 사진을 찾으려 들어간 페이스북에서

전혀 생각지 못한 사진들을 발견하며 조금 놀랐다.


전부 찍은 것도 아니었을 텐데, 생각보다 많았구나.

원래 일본 애들은 작은 선물을 더 즐겨하기도 하고.

그렇더라도 나는 한국에서 얘네 선물을 이렇게까지

챙겨오지 않았는데, 아프다면 자기 감기약 갖다주고

라파엘로 좋다니까 라파엘로 사다주고, 스펀지밥을

보는 친구들은 헝가리, 미국, 러시아, 한국 어딜 가도

내 선물을 사다주고.. 특히 일본 친구들은 가만 있던

나에게 다들 먼저 선물을 안겨 주었다. 왜였을까..?


그때는 아무 생각이 없고 그냥 고마워 했는데

돌아보니 신기하고 궁금하기도 하다. 왜일까.

(여자 반 남자 반이었다. 여자도 선물 많이 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애들은 나에게 진심이었는데 오히려 내가 나빴다.

 처음부터 헤어질 생각을 한 채 친구로 지냈었나..


며칠 전 타이밍이 이러했다.

사람들로부터 등을 돌리고 싶은 날에

사람들로부터 받은 사랑을 보게 되며

이렇게나 많은 사랑을 잊고 있었음을

다시 깨닫게 되었던 타이밍 말이다.


특히 한 명이 깊이 그리웠다.

그녀를 다시 볼 수 없다는 것 때문일까.

이 글에조차 적을 수 없지만 그럼에도

살아있으니 적을 수 없는 것이라 감사한

그녀가 며칠 동안 마음에 참으로 그립다.


인생이 무엇일까.

지나고 나면, 돌아보고 나면,

남는 것은 사랑뿐이다.


내가 준 사랑은 나에게 남아있지 않지만

받은 사랑이 이렇게 사진 속에 남아있듯

내가 주었던 사랑도 어딘가 남을 것이다.


사랑은, 포기하지 않는다.


신 다음으로 나에게 가장 큰 사랑을 주는 엄마

그녀의 옛 크리스마스 카드를 꺼내어 보며, 안녕.

파란 장화랑 이마 별 스티커가 사라졌지만 여전히 소중한 엄마의 카드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그런즉 이제 믿음, 소망, 사랑 이 셋은 항상 있으나 이것들 중의 가장 큰 것은 사랑이라. 1Corinthians 13: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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