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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ssie Dec 28. 2024

어쩜 둘이서

그렇게 잘 맞아요?

이런 표현 안 좋아하는데 떠오르는 표현

'죽다 살아난' 기분이다.

10여 년 만일까. 이토록 신나게 앓은 건.


나는 감기 몸살이 노크할 때 문 잠그는 방법을

알고 있어 오랜 세월 한 번도 앓지는 않았는데

올 연말 방치된 몸과 상황에 올 것이 오게 됐다.

이럴 줄 알았으면 어떻게든 문 걸어 잠글 걸....


그 와중 새벽에 일어나 약초차를 더 끓여 담고

약속된 장소에 도착했다. 몇 년 만인데 여전히

북적이는 병원. 수술을 마친 벗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인 것 치고는 어색하지 않았다.


나는 이 사람에게 종종 '어떻게 은혜를 갚을까'

생각하곤 했고, 택배 보내려다 맵을 보니 연주

장소와 8분 거리이길래 러시아에서 사 왔던 꿀

한 병을 드디어 전했다. 신기하게도 마침 요새

꿀을 먹는다고 하니 늦었더래도 타이밍은 좋다.

기운도 시간도 없어 짧은 카드 한 장 못 썼지만.


병원도 연말에는 성수기인가 / 참 오랜만인 SMC 암병원

바로 가려다 벗의 인품이 그냥 안녕 잘 가~ 할 리

없어 카페 줄을 서게 되었다. 얼마나 북적이던지.

줄 서 있는 동안 정황을 나누다 안 되겠다 싶었다.


- 안 되겠다~

- 아, 가봐야 돼?시간이?

- 줄 기다리려면 안 될 것 같아요. 진료 하기 전에

 점심 드셔야 돼고. 저도 리허설 가야할 것 같아요.


서로 인사하고 등돌려 한 걸음 딛는 순간 "현성아!"

목소리에 뒤를 돌자 소년처럼 해맑게 웃는 얼굴로

"연말 잘 보내고 새해 복 많이 받아~"할 때 무어라

답을 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ㅋㅋㅋ


원래 아무리 작은 연주라 해도 연주 전 일정은 잡지

않는데 들르게 되었다 보니 내 마음이 분주했던 듯.

비록 꿀 한 병으로 내가 받았던 위로와 고마움을 다

갚을 수는 없겠지만, 은혜를 기억하며 갚아 가야지.


연주 하러 오지 못할듯 앓기 시작하자 상태를 빨리

호전시키기 위해 뒤늦게 노력해,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채로 도착. 아직 내 순서가 아닌 리허설 때

여기 앉아, 정신 차리고 마칠 수 있기를 기도했다.

높은 빌딩 속 따뜻하고 아담한 강당 / 리허설

'Greensleeves'를 연주할 때부터 진땀이 나고

나의 혼이 어디론가 다녀온 기분이었다. 정신줄

잡고자 노력하며 신의 은총으로 일정이 끝났다.


실장님이 몇 번이나 식사를 권하셨지만 안 갔다.

대부분의 연주자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그제서야

느지막히 대기실로 올라오다 마주친 지인과 서로

여러 마디 인사를 하는 와중 내 옆에, 아마도 나를

기다리시는 것 같아 친구를 보내고 몸을 돌리자,

회장님이 서 계셨다. 아까 잠시 대화하실 때 내가

아무렇지 않게(편히) 말해서였는지, 초면이지만

(하루에ㅋㅋ)두 번째 본 느낌이 아니었을까 싶다.


- 어쩜 그렇게 둘이서, 피아노를 OO 맞게 쳐요?

- 네? 아... ㅎㅎㅎ

- 어쩜, 피아노 한 대에서 둘이 그렇게 잘 맞을 수가 있어요?


내 상태가 말이 아니었기에 기억이 좀 흐릿하지만

회장님의 얼굴에 신남과 신기함이 있었던 것 같고

그나 내가 한 대답은 기억 나는데, 그걸로 볼 때

그분이 내게 매우 편한 존재로 인식된 게 분명하다.


첫인상부터. 요새는 뭐 연주만 나오면 적어도 한 명

보고 속으로 놀라네..ㅋㅋㅋ 인상이 유난히 좋아서.

개인적으로, 그분의 편한 옷차림도 한 몫 하긴 했다.


자기 분야에서 고점에 있는 인물들의 특징 중 하나.

돋보이려고, 인정받으려고, 자기를 알아달라고 막

애쓰지 않는다는 점. 어차피 자기 자리가 거기니까.

그래서 자연스럽다.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내가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그러했다고 여겨진다.

나는 그 자연스러움과 만날 때 편안함을 느끼는 것.


연주자들 중 내향형이 워낙 많고 그 중 심한 타입도

있다 보니, 말이라도 붙여주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쯤 되자, 내가 정말 내향형 인간이 맞나, 스스로

의구심 마저 들었다. 압도적 내향인이 맞기는 ...


다만 가끔, 만나자 마자 편한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어제 뵌 그 인상 좋고 사람 편안한 회장님 처럼)

남은 소수만 회장님과 식사했으나 난 집으로 귀가.

오는 내내 1 시간 40분 동안 신음.. 하며 운전했다.

그저께 마감 악보도 발송했으니 이제는 쉴 수 있다.


참, 그 와중에 재밌는 꿈도 있었는데, 25일 새벽 꿈.

스마트 스토어에서 내 악보가 하나 팔린 걸 보았다.

꿈에 말이다. 내 악보는 미국 사이트에서 잘 팔리고

한국 스토어에는 아직 조금만 올린 데에다, 일절의

홍보가 없기에 찾기 어려워 판매량이 매우 뜸하다.

꿈을 잊고 하루를 보내다 오후에 폰 알람을 받았다.

방금 누가 악보를 구매했다고..ㅋㅋ 꿈과 동일한..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나. 비록 내 생일은 아니지만.


사라졌던 편도 통증이 어제의 무리 후 재발하였고,

절대 중간에 깨지 않는 내가 한 시간 당 한 번 꼴로

깨어나며 앓다 잠들었으나, 오늘은 덜할 것 같다.

약 대신 스스로 약초차와 즙을 착즙해 마신다.

훨씬 유익하다. 무려, 일광욕이라도 하고 싶지만

오늘만큼은 신속한 회복을 위해서 널브러지기로.



나는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으나.. 사람들이 좋았다

하니 다행. 내 힘으로는 안 되겠어서 막바지에서야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했는데 확실히 도와주신 듯.

함께 음악을 함으로써 서로 즐거울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은 큰 복이다. 그 복을 누림에 감사 드린다.

이렇게 잘 맞아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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