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적이고 고지식하고 순수한
- Time to say goodbye라는 곡 알아?
- ..
- Andrea boceli랑 Sarah Brightman이 부른 Time to say goodbye.
- 길에서 지나가다 들어봤어.
- 내가 9시간 가까이 비행기 타고 오면서, 계속, 정말 쉬지 않고 내내 그 한 곡만 반복해서 돌려 들었거든.
- ...
그 친구는 꼭, 나에게 어떤 노래를 아냐고 묻고,
자기가 듣는다고 말했고, 너도 들어보라 말했다.
가끔은, '내가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라고 했다.
나는 그 애가 들어보라는 노래를 듣지 않았고
꼭 보라는 드라마는 일부러 1편도 보지 않았다.
어떤 곡은 결국 듣게 됐지만 듣지 않고 보지 않은
것이 더 많았고 그 중 한 곡이 바로 이 곡이었다.
나는 다 알고 있었다.
그 애의 가족은 이 나라를 떠나고자 준비중이었고
그 전에 언젠가, 내가 없던 우리집에 전화했을 때
나의 룸메에게 "나 그냥 1년 꿇을까?"라고 했다던
넋두리도, 말하지는 않았지만 전부 알고 있었고,
4년을 먼저 들어간 대학교에서 1년 꿇을 이유가
없다는 사실도 그 이상으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굳이 그 애가 그 노래를 듣거나 내게 권하지 않아도
나는 헤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니, 친한 친구가
때가 되어 떠나는데 슬퍼할 명목은 애초에 없었다.
그래서 듣지 않았다.
그러다 얼마 전, 매우 신뢰하는 언니로부터 연락이
왔다. 언니 남편이 내게 후배를 소개해 주려 했다.
나는 소개팅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적으면서 좀 미안한데.. (왜 미안한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성으로 누굴 사귀지도 소개팅도 안 했고
젊을(?) 때부터 나이들 때까지 줄곧 주변 사람들은
나에게 쉬이 소개팅을 제안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당연히 누가 있을 것이라 생각해서였고, 그 다음엔
아무나 만나지 않는 것 같아서 조심스러워 그랬고,
이제는 아마 말하기도 민망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여전히 가끔 온 제안들을 조용히 넘겼다.
이쯤되면 혹시 독신주의자인지 물어봄이 당연했다.
오죽하면 여자 좋아하냐는 질문까지 받기도 했으니.
그런데 이번에는 타이밍이 많이 미묘했다. 게다가
제안하는 사람이 나에게 다른 차원으로 특별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아직은 서로를 깊이 모르지만,
그래서 며칠 뒤 통화를 하게 되었다.
내가 거절하자 언니가 한 번 만나보라며 권했다.
물론 원래의 나는 몇 번을 권해도 거절하곤 했으나
이 언니라서 조금은 역시 애매한 무언가가 있었다.
나이가 많다고 했다. 하지만 미혼에, 능력자시라고.
어떤 회사 직급인지 여러 번 들었는데,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조차 묻지 않은 것을 보니 역시 난 나답다.
교포라고 했다. 가족은 다 미국에 사는데 혼자 여기
산다는 말을 들어도 아무 생각은 들지 않았다. 마침
영어 이름이 옛 친구와 같았다. 그 애도 시민권자고.
나는 미국 시민권에 감흥이 없다. 어릴 때는 미국을
좋아했지만 마음이 돌아선 것은 이미 10대부터였다.
능력과 재력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도 좀 무덤덤했다.
그토록 나를 좋아해 주었던 친구는 미성년일 때부터
오로지 자기 능력으로 외제차를 살 수도 있었지만
그것에 설렌 적은 없었다. 좋은 차는 편안할 뿐이다.
나는 좋은 차를 좋아하고 내가 좋아하는 차를 구매할
능력이 비록 없지만, 돈을 잘 못 버는 만큼, 비례하게
돈에 관심도 적은 본능적 성향을 지닌 안타까운 人.
좋은 피아노를 좋아할 뿐.
마침 그 친구는 좋은 악기도 소유중이다. 누군가에겐
집 한 채 값일 수 있겠다. 집 안에 엘베가 있는 자택.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에도 그저 그런가 보다 했다.
"상당히, 능력이, 정말 좋은 사람이야~" 언니로부터
예상할 수 있는 이야기를 들으며 왜인지 좀 슬펐다.
나를 생각해 준 것에 진심으로 고마우면서도 역시 난
그랬다. 어릴 때도,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난 그랬다.
이유를 어떻게 한 줄로 정할 수 있겠냐만은, 통화 뒤
잠시 쉬려는데 그 애가 생각났다. 보고싶다는 감정은
오래 전 사라졌을 텐데, 아마, 그 뒤로 너무 일찍부터
몸 사리고 지내온 날들 뒤 외면했던 현실과 맞딱뜨린
그것 같았다. 작별을 고해야 하는. 나의 오랜 10대와.
감정의 변화 없이 무덤덤했지만 문득 궁금해진 걸까.
모르는 인물에 대한 호기심처럼 검색을 해 보았다.
그 이름을 검색한 건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듯 한데
별 생각 없이 검색한 것을 보니 세월이 많이 흘렀다.
어울리지 않는 데스크에서 아나운서와 함께 인터뷰
하는 것을 보았다. 어릴 적, 전화 너머로 가장 많이
들었던 그 익숙한 목소리와, 이제는 어색해진 얼굴.
내가 만나고 싶었던 것은 그 시절의 나였을 것이다.
보수적이고 고지식하고 순수한 면에 강하게 끌렸다
라는 발언에 흠칫 했던 기억이 났다. 착각이라면 뭐
할 수 없지만 그 표현은 나를 적나라하게 표현하는
문장 같이 느껴져 놀랐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그런
여자와 결혼을 했고 곧 이혼을 했고 계속 방황했다.
아마 그 애는 사랑을 했겠지만, 나는 줄곧 방황하는
그 아이를 보게 된 것 같다. 보이지도 않는 멀리서.
이미 그 애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고, 보이는 곳에서
있고 싶지도 않았으므로 쥐죽은 듯이 지냄이 맞았다.
가끔 이름이나 얼굴이 보일 때면 조금 불공평하다는
생각도 스쳤지만 그것이 일반인과의 차이 아니던가.
유치원 때 '유명한 음악가'를 꿈꾸던 나는 이 친구를
만나고 나서부터 점점 '무명한 사람'이 되길 바랐고,
처음 만난 때부터 지금까지 그 애가 잘 되길 바랐다.
그 친구를 똑 닮은 성향의 여자사람친구가 생각났다.
그 아이를 닮아서가 아니라 그 아이들이 날 좋아했고
친밀했다. 누군가 그것을 '화학 작용'이라 일컬었다.
- 저희 집에는 남자가 두 명 있잖아요. 아버지와 동생
- 응
- 충분한데.. 여기에 또 한 명을 얹어야 하나.. 그래야
하나.. 그런 생각이 사실 요새...
- 그 생각은 참 좋은 것 같아.
- 네?
- 보통, 자기 짐을 덜기 위해 사람을 찾고 결혼하려
하는데..
- 아.. ㅎㅎㅎ 저는 이상주의자이지만, 이성관계나
결혼에 대해서만큼은 아주 현실적이예요.
아마, 환상을 한 번도 가져본 적 없는 것 같아요.
- 그래도~, 그렇지 않은 남자도, 드물지만 있어~
- 언니는 결혼하셨는데도 저보다 이상주의자시네요.
같이 웃었다. 더 깊은 이야기를 다 하지는 못했지만
그러기에 난 바쁘고, 더 긴급하며 간절한 일이 있다.
설령 만나본대도 지금 그럴 수 없음을 전달했지만
내 마음은 어쩌면 이리 한결같이 기대하지 않을까.
행복하려고 결혼했다던 친구는 이혼을 준비 중이고
자신과 달라서 결혼했다던 벗은 달라서 힘들다 하고
사람 볼 줄 몰라 결혼했다는 분들이 결혼을 권하는 건
어떤 마음에서일까. 내가 그나마 위협을 조금이라도
느낀다면 그것은 아마 '안전'에 관한 부분일 것이다.
무술을 좋아하지만 배운들 남자를 이길 자신은 없고,
험한 세상에서 안전히 지내온 건 나에게는 은혜다.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쓸 겨를도 없고 생각 없지만
이렇게 띄엄띄엄 적는 것 역시, 나다울 수도 있겠다.
남자 사귀어보지 않은 것이 치명적 약점일 수 있으나
친구임에도 그토록 좋아해 주었던 그 시절의 그 애가
당시 나에게는 '단 한 가지만 빼고'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갖춘 인물이었다는 게 더 치명적일 수 있다.
언젠가 나의 남동생은, 그저 한 가지 일화만 듣고도
"그 형 참 대단하다. 만일 내가 좋아하는 여자가 내게
그러면 난 두 번 다시 쳐다보지도 않을 것"이라 했다.
그 아이는 내가 본 중, 끈기가 가장 대단했던 친구다.
물론 결국 끝은 그렇게 됐으나 내가 먼저 쳐다보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것을 가졌대도 '그 한 가지'가
결여되었다면 난 그 관계를 버릴 수 있는 사람이다.
절대음감도, 날 좋아하던 마음도, 원망하던 마음도,
유명세도, 능력도, 좋은 집과 차 또한 대단한 인맥도
내게는 무용지물일 뿐임을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가끔, 아니 생각보다 종종,
예수 그리스도가 조금 더 빨리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멋모르고 하는 생각일 수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나에게 그보다 더 중요한 존재는 솔직히 절대 없으니.
당신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그 말은
나에게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만 사용할 수 있는 표현.
사람에게는 사용하지 않는다. 자신 없더라도 말이다.
자라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부분은 매우 깊이 알게 되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기준과 바라보는 관점에 아마도
'평범함'을 잃은 지 오래인 것 같다. 뒤늦게 깨달았다.
평범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말이다.
그래서 나는 결혼한 이들을 일단 존경하고 시작한다.
멋모르고 했든 알고 했든, 일단 대단하다고 여긴다.
즉슨, 나는 여전히 자신이 없고 간절히 원한 적 아마,
여태, 없다. 착각인지 회피인지 깊은 생각은 없으나
내 영과 혼이 가장 깊이 사모하고 그리워해 온 단 한
대상이 실은 누구였는지, 그것만은 나도 알고 있다.
- 남자를 아는 여자는 혼자 못 살지만 모르는 여자는 혼자 살 수 있어.
- 그게 무슨 뜻이야?
- 경험이 있는 여자는 혼자 못 살고 남자를 찾는다고.
- 아~ ...
한 치 앞을 모르는 인생, 내가 어떻게 될 지 모르고
계획 역시 없으나, 혼자 살건, 함께 살건, 결국에는
그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나는 위를 바라볼 것이다.
These all died in faith, not having received the promises, but having seen them afar off, and were persuaded of [them], and embraced [them], and confessed that they were strangers and pilgrims on the earth. For they that say such things declare plainly that they seek a country. And truly, if they had been mindful of that [country] from whence they came out, they might have had opportunity to have returned. But now they desire a better [country], that is, an heavenly: wherefore God is not ashamed to be called their God: for he hath prepared for them a city. - Hebrews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