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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엄마

엄마를 놓아주다

사망신고서

by Essie

오늘 나는 엄마를 이 땅으로부터 놓아주었다.

대한민국은 사망일로부터 한 달 이내에 사망신고를 하도록 되어 있다. 물론 나도 이번에 알게 된 내용이다. 최대한 엄마를 늦게 보내고 싶어 미리 가족에게 부탁을 하였고, 주말, 일요일은 공기관이 쉬므로 오늘이 법적 마지막 신고일이었다. 예정대로라면 내가 부모님 댁으로 내려가 그 지역에서 신고를 했겠으나, 어제부터 심적으로 특히 무력하여 양해를 구하자 아버지께서 오늘 올라와 주셨다. 아버지를 돕고자 하는 책임감과 동시에, 나에게는 엄마의 사망신고가 일종의 의식과도 같았으므로 절대 맡기기만 할 수 없기도 했다. 아버지께 나란히 비닐로 보호된 두 장의 증명사진을 건넸다. 엄마의 마지막 여권사진은 내가 가장 귀엽게 여기는 사진 중 하나였다. 아버지는 사진을 받고 한참을 보셨다. 문 닫기 30분 전의 구청에는 찾아온 사람이 셋 뿐이었는데 그마저 일을 마치고 나가자 텅 비었다. 사망진단서와 사망신고서 그리고 나의 신분증을 내밀었다. 원래 아버지가 다 적으시고 아버지 신분증을 내려하였으나 신분증을 잊으셔서 내가 새로 썼다. 기념으로 아버지의 신고서를 내가 따로 챙기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남은 가족이 함께 신고 수속을 밟는 것은 정서적으로 혼자보다 낫다. 엄마의 사망 원인을 보며 씻을 수 없는 책임의 무게를 느꼈고, 나는 공공기관에서 접수하는 사람답지 않게 오른팔을 앞에 기대고 고개를 나의 팔에 떨군 채 수속을 기다렸다. 좌측 뒤편에 서계시던 아버지가 직원에게 질문하셨다. 재산조회 신청 여부였다. 알지만, 해야 하는 것은 알지만 오늘 그런 얘기는 안 했으면 했다. 직원은, 관계가 '딸'인 곳에 체크하도록 권하는 형광펜을 그은 재산조회 신청서를 나에게 내밀었고 나는 상체를 일으켜 글자를 적기 시작했다. 글자가 점점 잘 안 써졌다. 나는 엄마의 재산이 얼마 남았는지 이미 알고 있다. 엄마는 그동안 많이 쓰는 것처럼 보였지만 가족의 위기 또는 미래를 위해 힘써 모으고 계셨다. 거기에다 자신이 암에 걸려 수령한 보험금을 거의 쓰지 않고 남겨 자녀에게 주려 했다. 우리 엄마는 떠나기 일주일 전까지도 나에게 사 주고 싶은 오르간을 검색하고 있었고, 열흘 전까지도 복수로 찬 무거운 배를 잡고서 딸에게 먹일 간식 떡을 사 왔다가, 딸이 너무 달다고 뭐라 하자, 연신 미안하다 반복하는 분이셨다. 우리 엄마는 무얼 그렇게 잘못했을까. 무엇을 그리 잘못해서 그런 삶을 살았을까. 아니, 엄마는 잘못한 것이 없었다. 엄마가 잘못한 것이라면 나를 믿은 것, 날 너무 위한 것, 그리고 가족과 집안 식구들 그리고 이웃을 위해 살았던 그것밖에 없었다. 재산조회를 기다리며 더는 참을 수 없었다. 엄마가 돈을 쓰기만 한 것으로 오해하고 누군가에게 어머니 사후 흉 보듯 하는 것을 들었던 나로서는 그 순간을 더욱 견디기 힘들었는지 모른다. 서류를 건네고 다시 우측으로 팔과 고개를 떨군 채 엎드렸는데 결국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내려왔다. 곧 직원이 서류를 보여주며 설명을 시작했고, 그 설명이 끝날 때까지 나는 눈물을 멈출 수 없어 입을 굳게 다물고 고개만 끄덕였다. 직원이 도중에 몇 번이나 나를 우려하듯 쳐다보았다. 서류를 받아 들고 몸을 돌이켜 건물을 나가는 동안 짧게 마주친 다른 직원의 시선에서 걱정과 놀람이 느껴졌다. 화장실에 들어가자 누구라도 고개를 돌려 다시 한번 볼 것 같은 시뻘건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흐르고 있었다. 화장실에서 나오자 아버지가 나를 안아주셨다. 나는 아버지의 등을 토닥였다. 위로받는 것은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왜인지 나는 그 순간에도 아버지를 위로해 드려야 했다. 엄마가 간 뒤로 끊임없이 폭식을 해왔던 나라도, 오늘만큼은 아무 음식도 먹고 싶지 않았으나 여기까지 오신 아버지를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차에 타서 아무렇지 않게 청국장집 주소 아시냐고 물었는데 아버지가 답이 없었다. 그리고 곧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사망신고는 같이 해야 하는 것이다. 짧게 봐도, 길게 봐도, 배우자를 봐도, 자녀를 봐도, 정신적으로 건 정서적으로 건 그러하다.


이제 나에게는,

나를 대가 없이 사랑할 존재

내가 자유롭게 사랑할 존재

나와 어디든지 여행할 존재

내가 언제든지 전화할 존재

나와 밤새도록 대화할 존재

나와 영혼으로 소통할 존재

나와 얼마든지 포옹할 존재

나의 볼에 키스해 주는 존재

내가 볼에 키스해 주는 존재

내 손등에 키스해 주는 존재

내가 손등에 키스해 줄 존재

가장 사랑하는 존재가 없다.

♡Essie&Ruth♡

이제부터는 진짜 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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