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이 끝나기 전 브런치 10개 채우기, 둘
영, 작년에 한 달간 제주도에서 게하 스텝으로 일하며 느낀 점 몇 가지
일, 은근 날씨 좋은 날이 별로 없다. 비가 오거나 흐리거나 바람이 미쳤거나 미세먼지가 심하거나. 여행자 입장에서 이 정도면 훌륭하다 싶은 날은 사흘 중 하루 정도다. 나만 그런가 했더니 사장님피셜 원래 제주가 그렇단다.
이, 뚜벅이로 지내는 건 쉽지 않다. 제주시는 버스가 많아서 그럭저럭 괜찮은데 서귀포 쪽은 배차 간격이 길고 일찍 차가 끊겨서 택시를 이용하는 날이 많다. 2-3박 여행 정도야 지낼 수 있겠지만 자차로 30분 거리를 1시간 넘게 걸려서 가는 일이 잦아지면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삼, 떠돌이 개들이 많다. 요즘 육지엔 유기견들이 별로 없는데 제주는 여행 와서 버리고 가는 쓰벌노무시키들이 많아서 그런가 길냥이보다 개들이 많은 느낌이다.
사, 남자들끼리도 잘 논다. 내가 있던 곳은 본격적인 파티 게하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만남에 대한 기대가 아예 없지 않을 터. 허나 게하는 대체로 남초이기 때문에 그들의 기대는 굉장히 높은 확률로 부정되곤 한다. 그럼 저녁 술자리는 동원훈련장이 되는데 처음엔 어색하고 아쉬움이 그득하지만 한라산 몇 잔 때려 넣고 군대 이야기 한 바퀴, 담타 한 두 번 갖고 나면 찐친이 되어있다.
오, 게하 운영의 특수성
게스트하우스와 여행객들을 상대로 하는 다른 숙박시설과의 가장 큰 차이는 게하라는 공간 자체가 느슨한 형태의 공동체라는 점이다. 게하에는 각기 독립된 문화와 규칙이 존재한다. 사소하게는 운영시간이나 시설 이용방법부터 구성원 간에 교류하는 방식까지 다양하다. 그 문화에 위배되는 말이나 행동들은 구성원들 사이에 위화감을 불러일으키고 심한 경우 공동체의 균열을 가져올 수 있다. 마감시간 이후 남자 게스트들이 여자 게스트 방으로 올라가서 술을 마시다 사장님에게 발각(?)된 일이 있었다. 무슨 고삐리 수학여행도 아닌데 이런 걸 제재하나 싶겠지만 게하에서는 그럴 수 없는 일이다. 그러니까 그럴 수 없다기보단 어떤 게하에서는 용납되지 않는다. 가끔 뉴스에서 접하곤 하는 불미스러운 사건들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호스트의 의지다. 여행지에서 만난 청춘남녀가 술 마시며 노는 건 먹고 자고 싸는 일만큼이나 자연의 이치에 가깝다. 그러나 위에 언급했듯이 게스트하우스라는 공간은 각자만의 문화와 룰을 갖고 있고 이 숙소에서 묵는다는 건 암묵적으로 그 방식에 동의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가 느끼기에 게스트하우스에서 만나는 게스트와 호스트의 위치는 정확히 동등하다. 보통의 시장논리라면 돈을 지불하는 사람, 그러니까 소비자가 대체로 더 우위에 서고 적극적으로 자기주장을 하지만 게스트하우스는 달리 보인다. 숙박이라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주와 비용을 지불하는 고객이 있지만 그 비용은 그 공간 이상이지 않으며 그 공간 역시 정확히 그 돈에 비례하는 정도의 서비스로 여겨진다. 이 대등한 관계가 마냥 긍정적일 수는 없다. 친근한 분위기, 자연스러운 교류가 있지만 서로 결이 맞지 않는 게스트와 호스트가 만나는 순간 일종의 기싸움이 일어난다. 특히나 게하에 처음 온 사람들, 일반적인 소비자 마인드의 게스트들은 이런 구도에 불편한 내색을 비치기도 한다. 충분히 납득이 가는 부분이다. 그래도 대체로 행복해하고 설레한다. 내 입장에서는 그런 들뜬 감정을 한 달 내내 나눠 갖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