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이 끝나기 전 브런치 10개 채우기, 하나
원래 꿈이라는 게 맥락이 없다. 밑도끝도 없이 시작된다. 나는 식당에 있다. 왜 배경이 식당인지 나도 모른다. 흑백요리사 때문인가. 사실 식당인지 학원인지 헷갈렸는데 결말에 단서가 있었다. 잠에서 깨기 직전 이 곳이 식당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무거운 가방도 짊어지고 있다. 낮에 본 일드 first love 남자 주인공이 큰 백팩을 매고 있어서 그게 반영이 된 걸까. 내 무의식은 넷플릭스 그 자체네. 식당 안에 사람이 많다. 단상으로 올라서는 계단. 거길 오르고 있는데 무언가 내 발을 확 움켜쥔다. 나는 순간 휘청하며 넘어질 뻔 하다가 가까스로 균형을 잡는다. 놀라서 돌아본다. 한 남자아이가 내 신발을 벗기려 하는 게 아닌가. 황당했지만 다시 계단을 오르는데 한 번 더 느껴지는 손길. 번쩍 화가 났고 나는 발로 아이를 강하게 밀었다. 아이가 뒤로 밀려난다. 넘어지진 않았다. 내 입장에서 최대한 분노를 억누른 대응이었다. 문제는 그 순간 테이블에 앉아 있는 어느 커다란 체격의 남성과 눈이 마주쳤다는 점이다. 그가 이 광경을 언제부터 지켜보았는지 모르겠다.
예상할 수 있듯 남자는 그 식당의 사장이고 일곱살쯤 되어보이는 남자아이는 그 사장의 아들이었다. 시시비비를 가려야 했다. 나는 큰소리로 외친다. “제가 계단을 오르는데 이 아이가 갑자기 제 발을 움켜잡는 바람에 다칠 뻔 했습니다. 그냥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한 번 더 아이의 손길을 느꼈고 저는 본능에 가까운 판단으로 아이를 발로 밀어냈습니다. 이 아이의 아버지인 사장님은 제가 아이를 발로 미는 것만 목격해서 저를 아동학대범으로 간주하시는 것 같네요. 그래서 저는 여기 계시는 모든 분들과 함께 씨씨티비를 확인하길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제 행동이 타당했는지 과잉대응이었는지 판단해주시면 저는 그 결과에 승복하도록 하겠습니다” 사람들이 웅성대며 씨씨티비 앞으로 몰려든다. 꿈 속이지만 내가 이 시점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생생하게 기억 난다. 나 말고도 이 공간에 있는 상당수의 사람들은 아이를 좋아하지 않을 거라 짐작했고 일종의 국민참여재판을 열어서 배심원들의 판단을 받아보는 것이 내게도 유리할 거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꿈은 거창하다.
사장이 10분쯤 컴퓨터와 씨름하다가 말한다. ‘씨씨티비를 확인하기 어렵겠다. 이걸 확인하려면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그게 너무 번거롭다. 오늘 안으로 해결하기 너무 어려운 문제다’ 나는 주장한다. ‘아니,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어떻게든 씨씨티비를 확인하고 싶다’ 손님 중 누군가 말한다. ‘혹시 다른 걸 바라는 거 아닙니까? 그냥 사과 받고 싶은 게 아닌 거 같은데’ 나는 다시 목청 높여 말한다. “뭐 제가 돈이라도 달라고 할까봐요? 제가 이딴 일로 금전 요구를 할만큼 모지리는 아닙니다. 저는 사실관계를 정확히 밝히고 불특정 다수에게 받는 오해 대신 사과를 받고 싶을 뿐입니다” 결국 씨씨티비를 확인하지 못했다. 나는 마냥 홀가분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상황이 일단락 되었다는 안도감을 안고 주섬주섬 짐을 싼다. 풀어낸 적도 없는 짐을 왜 싸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사실 나도 정말 씨씨티비를 확인했을 때 여론이 백퍼센트 내 편일 거라는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끝나는 게 나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막 밖으로 나서는데 주방에서 50대 후반쯤 되어보이는 이모님이 내게 다가와 반찬통 하나를 내민다. “이거 파김치인데 맛있어요 챙겨가요” 순순히 파김치를 건내받아 가방에 챙겨넣으며 잠에서 깼다.
낮잠을 자다가 꾼 꿈이다. 아침에 본 쇼츠. 비행기 안, 남자 어르신이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아기와 놀아주고 있다. 아이는 너무 재밌는지 연신 꺄르르 꺄르르 웃는다. 댓글을 보니 할아버지는 가족은 아니고 옆자리 승객인데 아이와 너무 잘 놀아주어서 그걸 가족이 찍어서 유튜브에 올린 모양이다. 댓글 반응은 8:2 정도로 나뉜다. 대부분 아이가 귀엽다. 저렇게 놀아주는 게 쉽지 않은데 할아버지가 좋은 분이다. 비행기에서 우는 애기도 많은데 웃는 모습을 보니 좋다. 나머지는 나와 같은 입장. 저렇게 웃는 것도 소음이다. 애랑 놀아주는 게 아니라 진정을 시켜야지. 웃 건 울 건 간에 내내 저러고 있으면 공사장 소음과 다름없다. 꿈 내용을 보아하니 이 쇼츠의 영향이다. 무의식이란 정말 신비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