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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라비 Jan 05. 2023

지방출신이 말하는 서울 집값 이야기

서울 집값이 비싼 건 어제 오늘.. 내일 모레 글피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참 비싸다 싶은 거지. 내가 서울 생활을 접고 경남 거제까지 내려간 건 순전히 돈 때문이었다. 이 글을 읽는 몇몇은 아직도 거제도가 배를 타야 들어갈 수 있는 섬인 줄 아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거제도는 마치 지네 같은 도시라고, 다리가 많다고. (도시 맞다. 인구 25만이다) 통영과 거제를 잇는 신/구거제대교, 부산과 거제 사이엔 무려 해저터널 구간도 있는 거가대교도 있다. 여하튼 다시 돌아가서 돈.. 돈 때문이라고 표현했지만 정확히는 집이었다. 그중에서도 아파트. 나는 서울에 있는 아파트에 살고 싶었다. 아니 지금도 살고 싶다. 다들 알다시피 6년 전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가 5억쯤 했었다. 물론 큰돈이지만 노력하면 닿을 법했다. ‘그래 5-6년 열심히 장사하면 5억짜리 집은 살 수 있겠다' 그렇게 인고의 7년이 흘렀다. 나는 또래에 비해 꽤 많은 돈을 모았지만, 진짜 똑똑하고 여유 있는 또래들은 내가 사고 싶다고 생각만 하던 걸 실제로 행동에 옮길 수 있었다. 7년 전 그날 말이다. 그들과 나의 자산 격차는 내 소상공인 생활 전체를 부정하고 싶을 만큼 벌어져 있었고 내 수중엔 얼마간의 현금과 몇 해 전 거제에서 매수해서 반토막이 나버린 내 명의 아파트가 남았다. 이 미워할 수도 사랑할 수도 없는 도시 거제에 관해서는 다시 풀어낼 기회가 있겠지.


미움 시기 질투 빡침을 정성스레 모아 말한 것 같지만 사실 2016-17년 이 황금같은 타이밍에 아파트를 샀던 내 주변 친구들의 아파트 매수 계기는 대체로 하나로 모아진다. 결혼. 서른 전후 결혼한 친구들이 많았고 그때 본인과 배우자의 자금, 대출을 통해 집을 산 것이다. 그들이 진도준도 아니고 자기들 아파트 가격이 이렇게나 오르리라 예상했겠는가. 진도준이었으면 비트코인을 샀겠지. 물론 나는 망하지 않았다. 장사는 그럭저럭 잘됐고 적지 않은 현금 자산을 저축했다. 재테크로는 큰 재미를 못 봤지만 큰 손해를 본 적도 없다. 그러나 이건 평균에 관한 이야기다. 누구도 꿈이 평균인 사람은 없으니까. 최근 분위기가 바뀌어 하락장이 어쩌구 금리가 저쩌구 하지만 경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니 넘어가자.


나는 상도동에 오래 살았다. 몇 년에 걸쳐 내가 살던 원룸 뒤편으로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큰 마트도 하나 생겼다. 누군가의 부와 꿈이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도 학생 신분을 지나 집도 절도 없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취준생으로 잘 자랐다. 아파트 완공 후론 나도 곧잘 아파트 상가 마트에서 장을 보곤 했다. 햄 계란 참치 따위가 담긴, 누가 봐도 자취생 3종 세트 장바구니를 들고 계산대 앞에 설 때면 묘한 감정을 느꼈다. 나도 계산을 마치고 내 앞의 어르신과 내 뒤의 중학생과 함께 저 빼곡한 아파트 숲으로 들어설 수 있을 것만 같은 환상에 젖었으니까. 집어 드는 물건도, 알뜰히 포인트를 적립하는 모습도 나 같아서 잠시 착각을 했던 모양이다.


한 가지 더. 이십 대 중반을 함께 보낸 친구가 있었다. 살면서 가장 마음을 많이 주었던 친군데, 애 둘 낳고 잘 사는 사람 소환해서 갬성팔이를 하려는 건 아니고 그 친구가 살던 집 때문이다. 그녀가 살던 곳은 강동구에 위치한 아파트였다. 무슨 과천 경마장도 아니고 말도 많고 말도 많은 그 DC주공아파트. 이십 대인 걸 감안하더라도 참 순진했다. 몇 년을 만났고 몇 백 번을 데려다주는 동안 한 번도 이 친구가 나보다 형편이 낫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심지어 낡은 외관과 평범한 인테리어를 보며 ‘사람 사는 거 다 비슷하구나’ 안도도 했던 것 같다. 물론 그때도 비싼 곳은 훨씬 비쌌고 그 지역이 지금만큼 주목받던 시절도 아니었지만 가난한 자취생인 내가 가슴을 쓸어내릴 가격은 전혀 아니었는데 말이다.


나는 대구에서 나고 자랐고 스무 살 이후 서울과 지방을 옮겨 다니며 살았다. 그리고 넉 달 전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내게 집과 동네라는 키워드는 늘 애증의 대상이다. 고향을 떠난 후론 어느 한 곳에 진득이 마음의 뿌리를 내려 본 적이 없어서 그럴 것이다. 돌아왔다는 표현도 어울리지 않겠지. 서울은 그때나 지금이나 내게 그림자 한 뼘 내어준 적 없는 곳이니까. 얼마 전 인왕산에 다녀왔다. 인왕산은 남산타워, 63빌딩, 롯데타워 전망대에 몇 만원씩 지불하지 않아도 훨씬 멋진 서울뷰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이 거대하고 아름다운 도시를 내려다보며 이런저런 상념에 잠긴다. 결코 내 능력으론 풀어낼 수 없는 숙제 같아서, 다들 적당히 타협하고 자위하고 사는 거지 하며 내려놓았었는데, 기어코 이 냉정하고 저 혼자 잘난 도시를 또다시 기웃거리고 있다. 넋두리고 우중충한 열등감의 고백이지만 어쩌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살겠다는 공허한 다짐, 자기암시 같은 거, 그런 게 필요한 시기다. 나는 서울에서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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