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즈음에
사업을 하는 분이었다. 초반엔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아 자주 어울렸는데, 몇 번 실망 후엔 연락하지 않는다. 만나던 당시에 가끔 술을 마실 때면 그분이 자주 하는 말이 있었다. "내 꺼가 있어야지." 제목과 달리 발음을 꼭 그리 했다.
당시에도 서른 중반이었으니 무슨 말인지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하나 자신감이 있었기에 크게 고민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너무 몸에 와닿기도 하고, 내 것을 정해야 할 마지막 시기라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급해졌다.
"내 것이 있어야지"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내가 먹고살 수 있는 나의 주 무기라고 말이다. 삼십 대의 나는 꽤나 할 줄 아는 게 많았었고. 지금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도 남들이 쉽게 하기는 힘든 일이라, 그것이 나의 무기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인생 걱정이 어찌 쉽게 떨쳐내지겠는가. 언제 나보다 더 뛰어난 사람들이 생길지 모르고, 언제 AI가 내 일을 빼앗아 갈지 모르는 세상에 안주해서야 되겠는가. 게다가 내 꿈은 무려 80살까지 일하고 사는 건데.
마흔을 지나는 나이가 되어, 중요한 뭔가가 빠졌다는 생각에 더 조바심이 생겼다. "내가 먹고살 수 있는"이라는 것이 사회적으로 생각해 보면 내가 가진 기능적인 것 외에 하나가 더 필요하다. 바로 그 기능을 가치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다. 아무리 좋은 기능이 있어야 뭐 하나. 그걸 가치교환해야 먹고 살길이 아닌가.
나는 내가 가진 기능적 능력을 당당하게 가치로 교환해 달라는 표현을 쉽게 하지 못한다. 그저 알아서 잘 챙겨 주겠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한다. 주변에 답답하게 생각하는 이들도 많은데, 어쩌겠는가 그건 기능적으로 무엇을 잘하고 못하고 가 아니라 성격적인 부분이 포함된 것인데. 그나마 대안을 찾는 게 사람을 상대하지 않아도 가치교환의 약속을 미리 정해둘 수 있는 무언가를 하자는 것이었다. 온라인에서 디지털 정보를 판매한다던가 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물론 잘 되고 있다면 이런 글을 안 썼겠지.
주변을 보면 가진 기술적 수준은 너무 형편없는데도 잘 벌어먹고 사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 이들을 비방할 생각은 없다. 어쨌건 자신이 가진 걸 교환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이니까. 돈이 최고인 줄 알고, 그것이 능력을 판단하는 절대적인 기준인 마냥 우쭐대는 인간만 아니라면 존경해야 할 사람이 아니겠는가. 배울 수 있는 능력이라면 제발 좀 배우고 싶기도 하다.
자본주의 세상에 사회적으로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기술적으로 할 줄 아는 것과 돈을 버는 능력이 완전 별개이진 않을 것이다. 무엇 하나만 너무 좋은 것도 별로 좋지는 않은 것 같고. 좀 적당히 조화롭게 나만의 능력을 가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