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분야 전공 후, 연구원 입사했는데 연구 분야가 제 전공이 아니었던지라 문서 업무를 주로 맡게 되었습니다. 사업계획서, 리서치, 통계 보고서, 수요조사 보고서에 설문지 설계에… 온갖 문서 작업은 다 했던 것 같습니다. 뭣도 모르고 무작정 썼죠. 그렇게 퇴사하고는 사업을 할 때에도, 다시 대학원을 다니면서도 문서 작성이 제 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했습니다. 행정병 출신에, 학부 시절 보고서 작성에 나름 재미를 느꼈던 이유인지. 딱히 싫지는 않았네요. 결국 20년이 지나고 나니 문서작성이 본업이 되어 버리기도 했고요.
경제분야 전공하고 문서작업 하는 분들에 비하면 퀄리티는 다소 부족합니다. 그분들은 리서치 보고서가 기본인 분들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저는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부분이 강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신규 기술에 대한 이해도 빨랐던지라 초안 작성에는 특화되었다고 할 수 있겠죠. 분야를 막론하고 한마디 거드는 건 누구나 잘합니다. 악의적이게 표현하자면 본인 위신 세우기라도 하려 쓸데없는 말을 뱉는 사람도 있고요. 종이에 적힌 게 뭐든 검은색이 조금만 있으면 그걸 비판하는 건 쉽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청산유수라도 백지에 적어내는 건 다들 어려워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먹고 삽니다.
문서 작성에 관한 블로그를 운영하는데, 가급적이면 예시를 많이 올려주려다 보니 작성이 쉽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이랑 똑같이 개념이나 설명 위주로 포스팅 개수 늘리는 건 성격상 안 맞았고요. 문서 작성이 전혀 안 되는 분이 계획서를 작성하고 싶을 때 단어 만이라도 고쳐서 사용할 수 있게 끔 하고 싶었으니까요. 그러니 GPT가 등장한 이후론 포스팅하기가 아주 편해졌습니다. GPT가 그럴싸한 예시를 만드는 데 탁월하지 않습니까. 특히 배경이나 필요성, 기대효과와 같이 스토링 텔링이 필요한 부분에선 탁월합니다. 근데 또 마침 사람들이 그걸 어려워하지 않겠습니까.
현업에서는 좀 안타까운 부분이. 조수가 필요가 없습니다. 더 극단적이게 설명하면, 석사 3명이 서포트하는 것보다 GPT를 이용하는 게 월등히 뛰어납니다. 그들에게도 삽질의 기회가 주어져야 실력이 향상되는 건데. 앞으로는 모종삽조차 주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문서 작성에서 있어서만 그렇지는 않을 거라 생각해요. GPT를 제외하고도 다른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는 AI 플랫폼들이 있을 테니까요. 어쨌건 제가 하는 부분에서는 그 정도 역할을 합니다. 저보다 더 능숙한 분이라면 그보다 훨씬 뛰어날 거라 생각해요.
다행인 건, 원래 못하던 사람이 GPT를 잘 쓴다고 저보다 잘해지지는 않습니다. 일단 질문 자체를 못하니까요. LLM(Large Language Model)은 질문에 사용되는 단어와 맥락이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사업계획서를 작성한다고 했을 때, 사업 배경, 목적, 의의, 필요성 등의 단어에 대한 개념을 명확하게 알고 있는 게 좋은 프롬프팅을 하는 것과 직결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의 문장 내에도 강조하고 싶은 부분과 의도, 목적이 각각의 단어에 숨어있으니까요.
특정 업무를 나누어 진행하던 과거보다 AI를 조수로 활용하고 업무를 분배하는 방식이 앞으로 더 가속화될 것 같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인력을 갈아 넣는 방식의 수익창출만 가능하니까요. 인플레이션이 더 심화되는 경제 상황에 그런 방식의 업무 방식을 도입하지 않고서는 살아남기 힘들어 보입니다. 부디 부작용 없이 패러다임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으면 좋겠네요.
기술이 더 발달할수록 배워야 하는 게 더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로봇이 인간의 작업능력을 초월하는 특이점이 오지 않은 아직까지는요. 그래도 그런 학습이 예전과 같이 지루하지는 않네요. 눈에 바로바로 보여서 그런가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