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라는 ‘매체'는 참으로 신기하다는 생각을 한다.
자기 객관화를 할 수 있는 매체이며, 곧잘 잊어버리다가도 어떠한 꿈들은 평생 잊지 못할 만큼의 강렬함을 선사해주는.
꿈속에서의 훈과 나는 낡은 차에 앉아 어디론가 조용히 여행을 떠나고 있었다. 그것은 너무나 조용한 여행이기에, 낡은 자동차의 덜덜 거리는 소리,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소리 따위의 것들이 평소보다 조금은 크게 들리는 것이었다. 그 간극을 채우고 싶었던 걸까? 우리는 도로의 한 복판에 서있는 커다란 대형마트에 들러 들국화의 앨범을 샀다. 내가 사고 싶은 앨범을 사라고 했으면서. 내가 고른 앨범을 보고는 훈이 웃는다. 그리고는 고맙다고 말한다. 고맙기는요. 당신과 나의 음악 취향이 맞을 뿐.
전인권의 목소리처럼 지지직 거리는 노래를 들으며, 한없이 정적이고 공활한 곳으로 우리는 떠나고 있었다. 그것들이 조금은 지루해질 무렵에 창밖에는 낯선 풍경 하나가 등장했다. 그것은 바로 정치인의 홍보 포스터. (꿈속 세계에서도 선거는 치르는 모양인지.)
“여기 지역구는 야권 단일화가 됐더라고요.”
“그러냐?”
"..."
정치 이야기는 그다지 좋은 이야깃거리가 아니었다.
공활한 여행의 끝은 어느 구석진 골목의 해장국집이었다. 훈과 내가 단 둘이 식사를 하게 된 것은 무려 1년 만의 일이었다. 그 행위가 꿈속에서 일어난 것임은 잠시 잊어두기로 하자. 어차피 우리는 사실로 믿고 싶은 것들만 믿고 살곤 하니까. 그런 삶 속에서 나를 속이는 하나의 거짓말쯤은 아무것도 아니다. 더군다나, 아버지와 단둘이 식당에 가는, 남들에게는 지극히 사소하며 일상적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하는 것쯤은.
차에서 내려 식당으로 가는 길.
내리는 비에 젖은 어깨가 끈적였고, 훈은 눈앞의 식당 자랑을 했다. 전에 와본 적이 있는데, 정말 맛있는 해장국집이었다고. 어서 들어가고 싶지 않느냐고.
중학교 때의 일이다. 나는 그즈음의 일을 떠올리는 게 너무나도 싫다. 좋지 못한 일들의 연속이었던 그 시절을 조우한다는 것은 기분 나쁜 일이기 때문이다. 그때의 몇 안 되는 좋은 기억 중의 하나를 떠올려 보자면 훈과 매일 차를 탔던 기억이다. 훈이 선생님으로 있던 학원을 따라다니게 된 탓에 매일 안양과 서울 사이를 오가곤 했는데, 중간의 어느 길목을 지날 때면 시골 향기가 풍기는 구간이 꼭 있었다. 나는 여름이고 겨울이고 그 구간을 지날 때면 창문을 열었다.
“이 향기를 맡으면 어딘가 여행을 가고 있는 것 같아요"
훈은 나지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어쩌면 나는 훈의 웃음이 보고 싶어 창문을 열어젖혔는지도 모른다. 훈과 나는 웃음이 지나고 나서야 사적인 이야기들을 시작할 수 있었다. 나는 그 순간이 좋았다.
그때의 기억을 상기시켜주는 꿈속으로 되돌아가 보자. 길고 긴 여행 끝에 도착한. 온기 가득한 식당 속에는 눅눅해진 장판의 냄새와, 이전에 누가 피웠을지 모르는 칼칼한 담배 냄새가 번졌고, 우리는 젖은 몸을 그 속에 녹여냈다. 따뜻한 전기장판이 틀어진 침대와 이불 사이에서 눈을 뜬 것도 그즈음의 일이다.
친구들이 원룸 같다고 칭찬하던 내 방 밖의 집 속엔 훈이 없다.
그대는 또 무엇을 위해 차를 타고 홀로 떠나셨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