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과 함께 성장하는 금융
1942년 완전한 사회복지를 표방한 슬로건이다. 한때 많은 기업들이 추구했던 고용문화이기도 하다. 사용자 경험의 리텐션을 극대화하기 위한 노력이다. 과거 생산자와 공급자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탄생한 이 키워드는 최근 소비시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마케팅 전략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변화의 양상은 특히 금융권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은행들이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금융상품을 출시하거나, 학생들이 사용하는 카드에 우대사항을 제공하는 등 평생고객을 유치하기 위해 마케팅에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입하고 있다. 잠재고객 확보를 위한 금융사들의 치열한 경쟁이 계속하는 가운데, 미국의 한 스타트업이 전통 은행들을 제치고 소비자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2011년 미국 스탠포드 대학원생 세 명이 시작해 현재 48억달러(약 5조7천억원)의 기업 가치를 달성한 소파이(SoFi)가 그 주인공이다.
(Don’t bank, SoFi) 2016년 미국에서 가장 광고료가 비싼 것으로 유명한 미국 슈퍼볼 결승전에 등장한 광고 문구다. 소파이는 ‘은행도 사실 은행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등 기존 은행에 대한 부정적인 메시지를 홍보하며 전통 금융에 불편을 느끼던 소비자의 마음을 공략했다. 소파이는 지난 4월 미국 모바일 결제 기업 ‘갈릴레오’와 홍콩 주식거래 플랫폼 ‘에잇 시큐리티’를 인수하며 전통 은행을 완전히 대체하는 종합 핀테크 기업으로 성장했다.
소파이가 기존 은행 서비스와 대비되는 가장 큰 특징은 고객의 생애주기와 함께한다는 점이다. 본래 소파이는 스탠포드대 졸업생들이 재학생들에게 낮은 금리로 학자금을 빌려주는 개인 간 거래(P2P)플랫폼으로 시작했다. 회사 이름도 ‘사람과 사람을 잇는 사회적 금융’(Social Finance) 앞글자를 따왔다. 졸업생 40여명이 모은 금액을 재학생 100명에게 빌려주는 것으로 시작하여 하버드, MIT 등 주변 대학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소파이를 통해 학자금대출을 받은 고객들이 졸업하여 직업을 갖게 되자 주택담보대출, 개인신용대출을 차례로 시작했다. 소파이의 고객관리는 단순히 제공 서비스를 늘리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대출자가 취직을 하거나, 전문 자격증을 따게 되면 금리를 낮추고 상환기간을 늘려주는 등 미래가 창창한 청년고객의 생애주기를 공략해 영원한 고객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다. 고객의 성장이 소파이의 성장을 견인한 셈이다.
소파이는 기존 금융의 한정적 고객층을 확정적 고객으로 바꾸는 멋진 선례를 보여줬다. 소파이는 고학력, 고소득 청년을 대상으로 낮은 금리와 긴 상환기간, 높은 한도의 대출을 제공했다. 비록 대출자들의 재무상태(stock)가 충분하지 않을 지라도 성장 가능성이 높고 파산 위험이 적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상환을 받을 수 있다는 점(flow)에 주목한 전략이다.
소파이는 기존 금융권의 신용평가 모델을 답습하지 않고 자체적인 정보체계를 만들어 냈는데, 금융 데이터뿐만 아니라 학력과 직장 경력 등 비금융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분석해 대출 평가 지표로 활용한다. 예를 들어 재직 중 승진할 가능성이 높아졌거나, 더 좋은 직장으로 이직할 수 있는 자격증을 취득할 경우 이 요인들을 신용평가에 반영하는 것이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소파이의 성공은 금융시장의 주요 이슈였다. 우리나라도 카카오페이, 토스 등의 핀테크 기업들이 예상을 뛰어넘는 돌풍을 일으키며 메이저 금융의 벽을 비집고 들어왔다. 소파이의 사례를 보면 머지않아 온라인투자연계금융(P2P), 플랫폼 금융이 기존의 금융시장을 대체할 것임을 짐작케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핀테크의 제도적 토대가 마련됐다. 지난 8월 P2P금융을 제도권으로 편입하는 온라인투자연계금융업법(온투법)이 시행되면서 금융혁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학에서 무덤까지 사용자 경험을 지속할 한국의 소파이는 과연 누가 될 것인가.
###
by 올라플랜 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