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은 갈라파고스의 저주를 비껴갈 수 있을까?
갈라파고스 신드롬
갈라파고스는 남미 에콰도르의 화산섬이다. 대륙에서 1000km나 떨어져 있는 덕에 독특한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다. 다윈의 저서 종의 기원에 등장해 유명세를 얻은 섬이기도 하다. 휴양지를 추천하려는 것은 아니고.. 갈라파고스라는 경제현상을 알아보고자 한다.
갈라파고스 섬 (사진 = pixabay)이 구역 짱짱맨은 나야!
고립된 환경에서 진화한 갈라파고스 섬의 고유종들은 외부종이 유입되자 대거 멸종하거나 멸종위기에 처했다. 보장된 생존 환경에 익숙해진 탓에 급작스러운 변화를 대응할 힘이 부족했던 것이다. 시장도 마찬가지다. 어떤 기술이나 제품, 서비스가 특정 지역에만 특화돼 발전하다 보면 점점 국제표준과 멀어지기 마련이다. 이처럼 아무리 뛰어난 제품이라 하더라도 특수한 환경만 지나치게 고집하다가 주류시장에서 외면받는 현상을 갈라파고스에 빗대 말한다.
사례: 한국과 일본의 경차 규정
우리나라의 경차 규정은 전방 3.6m, 전폭 1.6m, 전고 2.0m, 배기량 1,000cc 미만으로 다른 국가들에 비해 빡빡한 편이다. 국산 경차가 해외 시장에서 인기가 저조한 이유다. 그래도 옆 나라 일본에 비하면 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일본은 전장 3.4m, 전폭 1.48m, 엔진 배기량 660cc라는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경차 규정을 가지고 있다. 당연히 울며 겨자 먹기로 규정을 맞춰 생산한 일본 경차는 섬나라 밖에서 거의 팔리지 않는다.
2020 혼다 N-One. 배기량이 658cc에 불과하다. (사진 = 네이버 자동차)한때 소니가 잘 나갔지..
이거 아는 분..? (사진 = pixabay)소니는 과거 독자 규격으로 만들어낸 CD와 플로피디스크를 세계표준으로 정착시킨 경험이 있다. 성공 경험이 너무 달콤했던 것일까. 이후로도 독자 규격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으나, 결과는 처참했다. MD(일명 워크맨)나 메모리스틱이 대표적인 사례다(얼마 못가 MD는 MP3로, 메모리스틱은 SD카드로 완전히 대체됐다). 다른 기업들의 표준규격보다 성능은 조금 높았지만, 오직 자사 제품만 호환되는 폐쇄성과 규모의 경제에 따른 가격경쟁력 약화로 글로벌 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런데 애플은?
소니의 사례는 애플과 대조적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혹시 충전기 좀 빌려주실 수 있나요?’ ‘아... 저 아이폰이라...’ 같은 대화를 쉽게 들을 수 있었다. 라이트닝 8핀 이전에 사용하던 30핀 충전기 역시 독자 규격이었다. 이 외에도 mini DisplayPort와 mini-DVI 영상출력단자, AAC와 MOV 파일 확장자 등 애플은 상당히 많은 독자 규격을 고집해왔다. 애플은 아주 근본적인 해결책으로 갈라파고스의 저주를 피해 갔다. 기술과 엔터테인먼트, 디자인으로 지구촌 유저의 절반을 애플의 것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그래도 이어폰 잭 없앤 건 심했다)
애플 M1칩 (이미지 = 애플)애플은 모바일 디바이스와 소프트웨어서 인정할 만한 표준을 만들었다. 얼마 전에는 PC용 프로세서 M1칩을 개발해 독자적인 칩셋 규격을 선보였다. CPU와 GPU, 메모리 등을 모두 다른 회사의 것을 사용해 조립하던 기존 PC와 달리 M1은 단 하나의 칩에 모든 반도체 기능이 집약돼있다.
높아진 폐쇄성
인텔 CPU를 사용하던 기존 맥 제품들은 메모리나 저장장치도 분리돼있어 사용자 편의에 맞춰 부품을 변경할 수 있었다. 반면, M1칩은 선택의 여지없이 애플이 제공하는 옵션을 골라야 한다. SD카드로 저장용량을 늘릴 수 없는 아이폰처럼 말이다. 당연히 가격도 올라간다. 일반 PC에서 8G와 16G 메모리의 가격 차이는 4만원 이하인 반면, M1칩을 사용한 맥북 메모리를 8G에서 16G로 변경하는 데에는 약 22만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이외에도 맥북에 타사 SSD 및 윈도우 설치 등을 제한하고 있다. 애플이 M1칩을 통해 컴퓨터 시장에서도 완전히 독립적인 생태계를 구축했지만, 이러한 폐쇄성이 기존 시장을 위협하는 혁신 동력으로 작용할지, 갈라파고스화의 시발점이 될지는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제발 하나로 통일해줘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