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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gatha Jul 09. 2022

예술을 사랑한 러시아 여제, 오페라 대본을 쓰다

7월 9일(1762),  예카테리나 2세가 스스로 황제 자리에 오른 날

260년 전 오늘, 

1762년 7월 9일은 

러시아 표트르 3세의 황후였던 예카테리나(Yekaterina Velikaya, 1729-1796)가 남편 표트르 3세에 불만을 갖고 있던 귀족 세력을 통합해 쿠데타를 일으킨 날입니다. 스스로 러시아의 차르, 여제(女帝)의 자리에 오른 예카테리나의 나이는 서른 넷이었습니다. 


예카테리나 2세. 그녀의 본명은 소피 프리데리케 아우구스테(Sophie Friederike Auguste)입니다. 태어난 곳은 프로이센과 스웨덴의 접경지 부근, 그녀의 아버지는 성실하기만 한 가난한 귀족이었는데요. 반면, 어머니는 넉넉하지 않은 가정 형편 속에서도 프랑스 출신 가정교사를 들였을 만큼, 교육에 열성적이다고 합니다. 

덕분에 소피는 프랑스어 실력은 물론 교양과 예술적 소양을 갖춘 소녀로 성장할 수 있었죠.      


열네 살이 된 소피는 어느 날, 고향을 떠나 러시아로 가게 됩니다. 러시아의 엘리자베타 여제가 소피를 황태자의 짝으로 점찍었기 때문이었죠. 사실, 소피는 그녀의 배경으로만 본다면,  도저히 대국의 황후 자리를 꿈꿀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러시아 황실은 왕권의 안정을 위해, 영향력이 미미한 가문의 딸을 황태자비로 맞아들이기를 원했습니다. 또한 프로이센의 왕 프리드리히 2세 입장에서도 프로이센 출신의 여인이 러시아 황후가 된다면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소피의 러시아행은 순조롭게 이루어졌죠.      


러시아로 건너간 소피는 정교로 개종을 하고,  “예카테리나”라는 새로운 세례명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열여섯 살이 되던 해, 러시아의 황태자 카를 울리히와 결혼식을 올렸는데요.  1762년, 남편이 표트르 3세로 즉위하면서 러시아 황후가 되었지만, 이후 6개월 만인 260년 전 오늘, 러시아의 여제로 거듭납니다. 


예카테리나는 황태자비 시절부터 러시아 귀족들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고 해요. 총명하고 야심만만했으며, 풍부한 지식에 성격도 좋았습니다.  무엇보다도 러시아에 대한 애정이 뜨거웠죠. 러시아 정교로 개종했을 뿐 아니라 러시아어를 완벽하게 익혔고, 러시아 역사를 열심히 공부했고요. 유럽의 계몽 사상가들과 교류하면서 러시아를 어떻게 하면 더 좋은 나라로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는 황태자비의 인기는 황태자보다도 훨씬 더 높았었다고 하는데요. 결국 러시아는 표트르 3세 대신, 예카테리나 2세를 선택했던 것이죠.       


1762년 가을, 모스크바에서 성대한 대관식을 치른 예카테리나는 이후 35년 간 통치하며, 러시아를 군사적, 문화적 강국으로 이끌었습니다. 폴란드를 분할 통치했고, 크림 반도까지 영토를 확장했고요. 계몽사상에 입각해 출판과 예술 사업을 장려하고, 학교를 설립하는 등 문예 부흥을 이뤘는데요.      


예카테리나 2세의 예술 사랑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궁전(현재는 박물관)에 집결됐습니다. “에르미타주”라는 프랑스어로, 그 뜻은 “은둔처”라는 뜻이라는데, 예카테리나 여제는 겨울 궁전 동쪽으로 작은 궁전을 지어 “에르미타주”라는 이름을 붙였고.  그곳에 자신이 사들인 작품들을 모아놓기 시작했습니다.  


예카테리나 2세가 모은 미술품들로 시작된 에르미타주 궁전(박물관)


여제는 미술뿐 아니라, 예술의 다른 분야에도 관심이 높았습니다. 그중에서도 연극과 오페라 등의 극예술 장르를 몹시 좋아해서 희곡과 오페라 대본을 직접 쓰기도 했고요. 황실 차원에서 오페라 극장을 건립하기도 했는데요. 이것이 바로 러시아 볼쇼이 극장의 모태가 되었다고 하죠? 


예카테리나 2세가 쓴 리브레토, 즉 오페라 대본은 아홉 편이 전해지고 있는데요. 오페라 대본을 쓰는 일에 꽤나 진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이 쓴 대본이 플롯이 미약하고 극적 긴장감이 떨어진다며, 조언을 구하기도 했죠. 그러면서도 자신이 만들어 낸 인물만큼은 자연스럽고 진정성이 있는 편이라며 스스로의 작품에 애정과 자부심도 갖고 있음을 보여주었는데요.      


그렇게 열심히 쓴 대본을 실제 오페라 작품으로 탄생시키기 위해 여제는 실력 있는 음악가들을 국내외에서 발탁해 지원하고 격려했습니다. 스페인 작곡가 빈센테 마르틴 이 솔레르를 비롯, 이탈리아 작곡가 쥬세페 사르티, 도메니코 치마로사 등을 초청해 그들의 축적된 오페라 작곡 경험과 노하우를 러시아 작곡가들이 전수받을 수 있도록 좋은 음악적 환경을 만들어주었죠. 


음악 준비했습니다. 폴란드 출신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활동하고 있던 바실리 파슈케비치(Vasily Pashkevich, 1742–1797)에게 의뢰해 그녀가 쓴 대본 <페베이 공주 이야기>(Fevey)에 음악을 붙이게 작품이 있는데요. 다행히 유튜브에서 이 작품의 관현악 모음곡 음원을 찾았습니다. 함께 들어보시죠. 


https://youtu.be/h9NpMSnmhrM




* 이미지 출처 Wikimedia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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