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안락했던 휴식
똑똑똑..
아침부터 날씨가 꾸물거리기 시작하더니
비가 내린다.
아이슬란드를 여행하는 본격적인 첫째날인데
알람을 일출 시간에 맞춘 보람이 사라져가고 있었다.
"오빠... ㅠㅠ 날씨좀 봐. 일출 못보는 거 아니야?"
"그.. 그럴 것 같네.. ㅠㅠ"
레이캬비크 시내 관광과 블루라군에서 온천을 즐기기로 되어 있던 첫날부터 어려움이 닥쳤다.
특히나 자연 경관이 주요한 아이슬란드에서 눈도 아닌 비라니!!
겨울철이라 낮 시간도 짧은데 구름까지 자욱하니, 해가 뜨는 시간이 훨씬 지났을 때인데도 여전히 어두웠다.
아쉬운 마음이 한켠에 있었지만,
어쨌거나 눈이 오든 비가 오든,
우리는 씩씩하게 첫번째 여정지로 항했다. 바로 썬보이저였다.
첫번째 방문지: 썬보이저
태양을 향해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바이킹의 배를 닮은 조각물. 레이캬비크의 상징.
날이 좋으면 바다 너머의 산의 모습도 보인다고 한다.
맨 위의 사진처럼 붉은 일출을 배경으로 늠름한 바이킹의 배가 출항을 하려는 모습을 상상했지만,
역시나 현실은 우리의 상상에 결국 다다르지 못했다.
자욱한 안개와 투둑- 투둑 떨어지는 빗소리는 우리의 마음처럼 처량하기 그지 없었다.
"아.... 하늘이시어!"
날씨도 점점 쌀쌀해지기 시작했고
우리는 서둘러 레이캬비크의 아름다운 건축물인 "하르파"로 가기로 했다.
하르파: 아이슬란드의 대표적인 콘서트홀이자 컨퍼런스 센터
우리의 아쉬운 마음을 단번에 치유해줄 다음 장소는 바로 하르파였다.
하르파는 콘서트홀로 이용되고 있는데, 오로라를 연상케 하는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계단식 모양이 주상절리 같기도 했고, 글라스로 뒤덮인 창문은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한 빛깔을 내비쳤다.
바깥으로 보이는 아이슬란드의 전경, 왼쪽에는 바다.
창문 사이로 보이는 황홀한 풍경에 다시 힘이 솟기 시작했다.
우리 부부는 그림 같은 풍경 속에서 빙그르르 돌며 이리저리 포즈를 취해본다.
"자기야 선반에 기대봐~"
"나 분위기 있게 쬐끄맣게 찍어줘~"
"이제 마주보면서 찍어볼까?"
"치마자락 잡고~ 한 번 돌때 잘 맞춰서 찍는거 알지? 길고 날씬하게!"
사진을 양으로 승부하는 남편을 잘 토닥이며 인생샷을 건져보려고 주문을 마구 넣는다.
오그라드는 컨셉을 요청하기도 했지만, 이 것 또한 어떠랴! 그것이 바로 신혼의 묘미인 것을!
이 즐겁고도 아름다운 시간이 영원하길 바라며,
사진과 영상을 한가득 담았다.
하르파 1층에는 아직도 연말 분위기가 가득했다.
귀여운 책도 있고, 반짝이는 예쁜 것들을 보니 환희롭고 반짝 반짝 빛났던 우리의 결혼식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반짝이는 드레스를 입고 이 사람과 평생 함께 하겠다고 너무나도 자신있게 말했던 그 장면이!
따뜻하게 몸을 녹인 뒤, 우리는 세 번째 여정지인 "올드 하버"로 걸음을 옮겼다.
평소 우리는 여유로운 일정을 짜는 편이지만, 겨울철의 아이슬란드에서는 마음이 급해졌다.
날이 지기 전에 블루라군이 있는 숙소를 가야 했기에 빨리 움직여야했는데,
시간이 부족해도 여자라면 모두 좋아할 티파니 민트로 벽면을 칠해놓은 올드 하버를 그냥 지나 칠 수 없었다.
올드하버에 도착하니 맛있는 시푸드 냄새와 따뜻한 노란 빛을 내뿜고 있는 레스토랑에서 챠우더 스프를 들이키고 싶은 마음이 목구멍 끝까지 차올랐다. 한국이라면 당장에 들어가서 비를 맞아 더욱 차가워진 몸을 녹이며 노곤하고 느린 시간을 보냈을 테지만 현재는 시간이 금인지라 얼른 벽에 기대 사진을 찍고, 레스토랑의 따뜻한 느낌만을 질투하다 걸음을 옮겼다.
올드하버:
1910년대에 만들어지는 레이캬비크의 항구는 시푸드 레스토랑이 즐비하다.
짭쪼롬한 항구의 냄새도 그렇고 항구의 모습도 아이슬란드의 항구스럽다. 맛도 좋다고 하니, 여유로이 시내를 둘러보실 분이라면 올드 하버에서 식사하시는 것을 추천!
블루라군을 즐길 실리카 호텔로 가는 길엔 "티외르닌"이라는 호수를 지나쳐야 했다.
빗 속에서 둥둥- 자유로이 헤엄치는 백조, 오리들의 모습이 이국적이면서도 아름다웠다.
저 멀리 보이는 레이캬비크 시내를 배경으로, 교회 첨탑과, 알록달록한 집.
'눈길 닿는 곳마다 아름다운 것들 투성이구나 여긴.'
그리고 마침내 도착한 숙소 "실리카 호텔"
블루라군에서 운영하는 호텔이라그런지 걸어서도 블루라군에 갈 수 있고,
호텔 내의 프라이빗 블루라군이 있어서 밤새 블루라군 온천욕을 즐길 수 있다.
https://www.bluelagoon.com/accommodation/silica-hotel
일박당 60만원 정도의 금액이긴 하지만!
이마저도 성수기 때는 예약하기 힘들 정도!
우리도 3개월 전에야 겨우 하나 남은 방을 구할 수 있었다.
우리가 배정받은 곳은 푸른 이끼 배경의 객실.
발코니에서 바로 자연을 바라보고, 이끼의 상쾌한 냄새를 맡으며 따뜻한 커피를 내려 마시고 북유럽스타일로 꾸며진 깔끔한 방에서 짐을 풀고 본격적으로 힐링을 위한 준비를 했다.
(이 때 이후로, 나는 종종 한국에서도 이끼만 보이면- 이끼 가져다 키우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발코니에서 바로 나가면 만날 수 있는 이끼로 뒤덮인 화산지대.
세상의 그 어떤 러그보다 푹신하고 경이롭다.
이제는 블루라군으로 항할 시간.
검은 화산 흙을 밟으며, 은은한 소라색으로 드리워진 블루라군 길을 걷는다.
자연이 만들어낸 투명한 색감이 눈 앞에 펼쳐져 있다.
아름답다, 너무 예쁘다, 경이롭다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말하게 되는 황홀한 풍경이었다.
다인실의 다른 스위트 객실의 경우에는, 발코니에서 작은 블루라군도 만날 수 있다.
내 마당 앞에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두고 있다니!
이 곳에서 살면 매일 아침을 이 풍경을 보며 차를 마시고, 글을 쓸 것 같다.
계속 곁에 두고 생활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도착한 블루라군.
머리로는 차가운 아이슬란드의 추위를 느끼며, 어깨 밑으로는 따뜻하게 온천욕을 즐기니
아이슬란드로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국 여행을 하면서 많이 걷고, 눈에 많이 담느라 피곤함이 있었는데, 이게 한 번에 씻겨 내려간듯 따뜻하고 평화로웠다.
아이슬란드의 이국적이고 안락한 행복을 위해 모여든 세계 각지의 사람들과 함께 이 포근함을 느끼며
부드러운 석회 모래 위를 뒤뚱뒤뚱,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 블루라군 온천을 즐겨본다.
우리는 블루 라군 온천욕을 더 재미있게 즐기기 위해 플로팅 마사지 (Floating massage)도 신청했다.
두꺼운 매트 위에서 누워 따뜻한 수건을 몸 위로 덮어 진행하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방식의 마사지였다.
테라피스트가 추천하는 오일로 전신 마사지를 하니, 나도 모르게 잠이 스스르...
오늘 낮, 티외르닌 호수에서 보았던 백조처럼 나 또한 평화로이 둥둥 유영하는 중이었다.
밤이 늦을 때 까지, 손 발이 쭈글 쭈글해질 때까지 우리는 블루라군에서 나올 생각을 안했다.
블루라군에 들어가면 무료로 맥주든 스무디든 음료를 마실 수 있는 쿠폰을 주는데
밤이 되어 조명이 만들어낸 물그림자 속에서 달콤한 스무디를 마시니 풀바에 온듯한 기분도 들었다.
낮과 밤의 블루라군의 모습은 정말 달랐다.
문득 문득 켜진 조명을 기준으로, 어둠 속에서 이 차갑고 따뜻한 기분을 계속 느끼고 싶어진다.
그러나 이런 우리의 지치지 않는 수영을 막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롤렉스보다 더 정확하다는 배꼽시계의 울림이었다.
얼른 숙소로 돌아가 저녁을 후딱 먹고 이제는 프라이빗 블루라군을 즐겨줄테다!
블루라군에는 다음과 같은 블루라군 화이트 머드 제품도 판매했다.
아이슬란드 물가 x 관광지 물가 x 사람들의 수요
삼박자가 골고루 섞여 용량대비 비싼 몸값을 자랑하는 우리 블루라군 화장품들.
결론은 발라보라고 듬뿍 제품을 떠주는 점원이 상주하고 있으니, 내어주는 크림 샘플을 듬뿍 바르고 오자!
(그럼에도 불구하고ㅋㅋ 핸드크림을 사게 되었..... ㅇ_ㅇ)
향이 너무 좋았다.
숙소로 돌아와 우리는 라운지에 자리를 잡았다.
따뜻한 색감으로 가득한 실리카 호텔의 라운지에서는
프라이빗 블루라군을 바라보면서 요기를 할 수 있었다.
이 곳이 바로 프라이빗 블루라군.
연인들끼리 이용하기에 딱!
고운 화이트 머드 양도 더 많아 팔 다리에 계속 얹어주면서 피부 미용 하기에도 딱이다.
에덴버러에서 받은 honeymoon treat 중 하나였던 페리에 주에 샴페인과
아이슬란드의 호텔에서 구입한 샌드위치
그리고!!! 런던에서 갑자기 출출해서 샀다가 가져갈까 말까 망설이다 결국 챙겨온 농심 새우탕면까지.
(새우탕면 진짜 누가 작은 거 샀냐....)
의미 있고, 분위기 있는 우리의 작은 피크닉 같았다.
마지막으로 프라이빗 라군에서 두시간 가량을 더 놀며 아이슬란드에서의 공식적인 첫날은 이렇게 저물어갔다.
새로웠고, 행복했고, 또... 이 곳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오게 되어 더욱 낭만적이었던 하루.
매일 아이슬란드의 아름다움에 놀라고,
또 내 옆에 있는 이제는 남편이된 사람과 가슴이 뻥 뚤리는 이 감정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 하루.
3일차의 여행은 또 어떤 모습일까?
아까울만큼 멋진 하루가 저물어 갔지만 또 내일의 아이슬란드가 기다리고 있다.
매일 기대와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느낌.
그 느낌이 아이슬란드를 더 사랑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럼 우리는 아이슬란드 신혼여행 3일차에 또 만나요!
읽어주시고, 공감해주시고, 댓글을 남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