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순간들에 대처하기 위한 잠깐의 생각을 할 뿐, 요즘 하루의 끝에 묵념의 시간을 갖는 일과와 멀어졌다. 침대에서 쓸데없이 핸드폰만 붙잡으며, 마음 한 켠에서 ‘뭔가 해야 하는데…’ 외치는 것을 외면하면서.
해야지 해야지 생각하는 것들이 많은데, 하지 않고 있는 요즘이다. 문득 요즘만 그랬다고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이 글도 해야지 해야지 생각만 하다가 쓰기 시작했고, 이 글을 쓰다가 해야지 해야지 생각만 하던 아침 산책을 나가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산책을 다녀오면 쓸 말이 더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좀 있었다.
책상에서 일어나 옷을 챙겨 입고, 신발을 신고 문을 나섰다. 문을 여는 순간부터 무릎에서 찌릿찌릿함이 느껴졌다. 갑자기. 그럼에도 계단을 내려가려는데, 무릎 통증이 심해졌다. 나가지 말라고 이러는 건가 생각이 들었다. 평소 같았으면 다시 집으로 했을 텐데, 괜히 지는 기분이 들어서 꾸역꾸역 출발했다. 더 아프면 돌아오면 되는 거니까. 평지를 걸음에는 문제없어 다행이다 싶었다. 집을 나와서 공원을 가는 길목에 꽃이 활짝 피었다. 어제 보았던 것보다 더 활짝 피었다고 느끼는 건 기분 탓이려나. 오늘도 날은 조금 쌀쌀하지만, 날씨가 좋았다. 하늘은 파랗고, 아침 햇살이 내린다. 해가 지는 시간에 빛깔과 아침 시간의 빛깔이 다름을 오랜만에 느꼈다. 아침에 부지런을 떨어본 게 언제 적이더라.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어린이대공원이 나의 산책 장소이다. 운동이 아니고 산책인 이유는, 말 그대로 걸으면서 풍경을 즐기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기 때문이다. 걸으려고 나온다기보다는 풍경을 즐기기 위해서 나온다. 특히 봄에는 하루하루가 지남에 따라 풍경이 달라진다. 챙기지 않고 깜빡 잊으면 봄이 지나가고 만다. 의식적으로 봄을 만나야 한다.
앙상했던 나뭇가지에 초록초록한 잎들이 생겼다. 아침 햇살을 받은 초록초록한 잎들이 반짝반짝 빛이 나고, 그걸 보고 있는 내 기분도 반짝반짝해진다. 눈으로 담고, 사진으로 영상으로 담는다. 산책을 나서면 내 눈은 바쁘다. 앞만 보고 걷는 것이 아니라 왼쪽, 오른쪽, 위쪽, 아래쪽, 이곳저곳 정신없이 시선을 보내며 걷는다. 가끔은 이런 나를 스스로 인식해서 뭔가 웃기다. 누군가가 나를 보며 저 사람은 왜 이리 정신없게 굴어 생각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반대로 나는 생각한다. 이 풍경이 지금 내 눈에만 이렇게 보이는 것인가 싶다. 이 풍경을 보고 어떻게 그냥 지나갈 수가 있지, 제발 좀 같이 봐달라고 오지랖을 부리고 싶어 진다. 오지랖에 질색이고 낯도 가리는 내가, 유일하게 오지랖을 부리고 싶고 낯가림을 파괴하고 싶어질 때이다. 나만 보기 아까운 풍경을 만났을 때. 사진을 찍는 것이 내가 본 것을 기억하고 기록하기 위해서도 있지만, 내가 본 것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일종의 풍경 배달이랄까? 내가 본 풍경을 나누어주는 일에서 작은 뿌듯함을 느낀다.
공원을 들어서자마자 손잡고 가는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다정한 모습을 만났다. 운동기구에서 열심히 움직이는 아주머니와 아저씨를 지나, 어슬렁어슬렁 돌아다니는 고양이 친구도 만났다. 오후 5시경에 만난 풍경과 아침 10시에 만난 풍경이 다르게 느껴졌다. 오후 5시경에는 찐하게 노란빛이 내려앉아 있다면, 아침 10시에는 보다 가볍게 맑은 빛이 닿아있다. 하늘이 더 파랗게 느껴졌다. 아침 햇살과 함께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을 눈에 담았다. 어린이대공원 어디에서나 보이는 팔각정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담았다. 한 바퀴를 돌려고 하는 계획은 무리라는 생각이 들어서 중간 지점에서 집 가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지나가면서 개나리도 보았지만, 오늘의 꽃은 목련이었다. 파란 하늘에 하얀 목련이 눈에 확 들어왔다. 아직 활짝 핀 것은 아니지만, 함께 모여서 피어있다 보니 이미 풍성해 보였다. 목련과 하늘을 함께 담아 사진을 찍었고, 나의 잠금화면이 되었다. 잠금화면에도 계절을 담고 있다. 별거 아니지만, 별거를 한 듯한 하루다. 30분도 채 안 되는 일이었지만, 작은 성취감이 느껴지는 일이다. 하루를 그리고 한 주를 시작함에 있어서, 이번 주는 뭔가 해야지해야지가 아니라 했다 했다가 될 기분이랄까? 이렇게 글까지 제출한 걸 보면. 시작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