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을 때다~

by 빙고

1.


"나도 이제 세월이 좀 보이지?"

"(고개를 저으며) 그대론데 뭐, 멋있어졌다."

“사기 친 거 뻔히 알면서도 듣기 좋네. 그런 말 들으면 정말 나이 먹는 거라던데.”


중년의 늪에 빠져있는 내게, '이게 바로 중년의 멋인가'를 느끼게 해 준 장면이었다. 그냥 멋지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지만, 중년의 멋이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바로 이 대화의 주인공은, 드라마 <낭만닥터 김사부> 속 김혜수 배우와 한석규 배우다. 대학교 CC였다가 헤어진 두 사람이 10년이 넘어 오랜만에 만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었는데, 별 대화가 아닐 수 있는데 두 사람이 하니까 뭔가 멋있었다.


2.


“혜빈씨가 몇 년생이었지?”

“94년생이요!”

“아이고~ 좋을 때다~”

“허허… 뭘요…”


어른들의 "좋을 때다~" 시리즈가 있다. “학생일 때가 좋을 때다~”, “공부할 때가 좋을 때다~” 그 소리를 듣던 학생 시절에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지 했는데, 학생의 신분이 끝나고 보니 그제야 그 말이 무엇인지 알게 됐다. 20살 때 만나는 분마다 “좋을 때다~” 하셨는데, 지금의 나이가 되고 20살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좋을 때다~” 외치는 걸 보며, 이런 마음이었구나 싶었다.


지금의 "좋을 때다~" 역시, 나중이 되어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지금은 이런 마음이 더 크다. '맞아요. 좋은 때이겠고, 나중에는 또 그리울 수 있을 때이겠지만, 지금은 힘들기도 힘들어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제 삶을. 이리저리 흔들리고만 있어요. 단단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더 멋지고 부럽답니다.’


3.


중년의 사전적 의미를 검색하면서 조금 놀랐다. ‘마흔 살 안팎의 나이. 또는 그 나이의 사람.’ 마흔 살의 나이에 대한 감이 없지만, 중년은 무언가 마흔 살보다 많을 거 같은 느낌이었다. ‘청년과 노년의 중간을 이르며, 때로 50대까지 포함하는 경우도 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중년’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느 정도 나이가 차 있는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그 생각 안에는 나이를 허투루 먹은 게 아닌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다. 자신의 나이를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랄까? 내가 아직 나이를 허투루 먹은 사람이라서, 더 그렇게 느끼는 걸 수도 있다. 고등학생 때 나와 지금의 내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기에.


그래서인지 삶의 중반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저 그 나이를 살아가고 있음이 대단하다고 느낄 때가 있다. 죽음이 언제 닥쳐올지는 모르지만, 소위 100세 시대를 살아갈 자신이 없다. 뭔가 좀 무섭다. 코앞에 닥친 30대도 상상이 안 가고, 40대와 50대 역시 상상이 안 간다. 아직 어른이 아니라고 하지만, 사실 어른이긴 한가보다. 상상력이 이리도 없는 걸 보면.


4.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쓰면서 문득 든 생각인데, 나이를 떠나 삶의 중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중년이 아닐까 싶다. 삶의 중심을 찾아가다 보면, 어느새 나도 중년이 되어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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