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살아가는 우리
우리는‘무임승차’라는 말을 쉽게 한다. 공동의 일을 하면서 노력은 보태지 않고 보상은 잘도 취하는 이들을 향한 분노가 느껴진다. 나 역시 자주 했던 말이다.
그러다 문득,
지금 누리는 이 혜택들 모두 직접 기여해서 얻은 것인가?
내가 취한 것들을 스스로 이루었나?라는 화들짝 한 자문을 해본다.
‘무임승차’만 생각하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후배가 있다. 직장 노동조합 임원으로 오랫동안 헌신해온 녀석. 그 수고에 늘 감사하고, 적극적인 참여를 못하는 죄책감도 있다. 참석률이 저조했던 노동조합 총회에서 그의 목소리는 높아지고 참여자들의 고개는 수그러든다.
“노조활동에는 참여하지 않으면서 애써 이루는 일에는 ‘무임승차’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 보호받지 못합니다. 1년에 한 번 총회조차 참석 않고, 정말 답답하고 한심합니다.”
목소리에 정당한 질책이라는 힘과 원망이 깃들어 있다. 그 수고를 모르는 바 아니고 늘 미안함을 느꼈지만 그 옳은 소리에 마음이 불편해진다. 정작 참여 않는 사람은 듣지 못하는 상황인데 참여한 사람만 애꿎게 혼나는 형국이다.
노조라 하면 흔히 사측과의 갈등과 투쟁을 떠올린다. 그 필요성에는 동의하지만 시대가 흘러도 변함없이 거칠어 식상하고, 투쟁이라는 단어 앞에 왠지 멱살 잡히는 기분이라 뒷걸음질 치게 되는 게 사실이다. 죄책감을 건드리는 호통에도 ‘무임승차자’는 늘어간다.
변화를 요구하는 우리가 먼저, 그 틀을 깨고 변화해야 한다. 노조에 대한 고마움과 부채감, 변화를 위한 도전의 일환으로 나는 조합원 교육운영에 자원했다.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 낼 방법을 찾기 위해 책을 통한 동행이라는 새로운 상상을 모색했는데.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책으로 공감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에서 ‘하나의 책 하나의 노조’라는 가치를 담은 책모임 ‘원북원유니언’이 시작되었다.
같은 활자를 읽지만 각기 너무도 다양한 해석을 나누며 동료에 대한 이해를 넓혔다. 그러다 비슷한 생각을 만나면 공감받는 듯 마음이 따뜻해졌다. 다른 세계를 들여다보며 나를 확장하는 여정이었다.
당초 원북원유니언은 7월 한 번으로 끝나는 기획이었지만 새로운 변화에 호응하는 동료들의 요청이 이어졌고 11월, 12월엔 선정 책 작가와 함께하는 온라인 북콘서트로 책을 통한 동행의 의미를 유쾌하게 만끽할 수 있었다.
행사 후 조금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겠다며 원북원유니언의 도전을 뿌듯하게 해 준 한 참가자의 소감문이 마음에 남는다
‘애써주신 노조에 감사하고 무임승차라 죄송합니다. 다음번엔 열심히 참여하겠습니다.’
참가자들은 그간 소홀했던 노조활동에 대한 미안함과 변화에 대한 고마움을 털어놓았다. 돌아보면 결국 낯선 시도에 첫걸음을 보태며 변화를 만든 건 그들이었다.
우리는 모두 덕분에 살아간다.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일에 기여하지 못하는 경우가 훨씬 많고, 아예 그런 일들이 어디쯤에서 일어나는지 모르기도 한다. 사회의 불합리를 고치는데 삶을 헌신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나는 바쁜 삶을 핑계로 외면하기도 했다.
그럴 때 ‘너는 무임승차자야. 반성해!!’라고 하면 ‘아, 정말 죄송합니다.’ 라고 고개를 조아리며 반성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결국 그 훈계는 실행자의 기분풀이에 끝나고 그 몇 사람마저 ‘왜 괜히 와서 혼나는 거야’자책하며 발걸음을 돌릴지도 모른다.
공동체에 헌신하며 성과를 만들어 온 사람들의 노고는 진심으로 고맙다. 다만 그들의 주변에는 힘 빠지게 하는 무임승객뿐 아니라 우연히 참여했다가 따뜻한 공감 속에 적극적인 지원자로 탑승하는 동료들도 분명 있음을 기억해 주기 바란다. 모두의 보폭이 같지 않으니 그 걸음을 기다려주는 아량이 필요하다. 또한 일이 되는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 조금 더 지혜로운 태도를 고민해보면 좋겠다.
‘나는 무임승차하지 않을 거야’는 다짐과 실천으로 스스로에게는 품격을 부여하고 타인에게는 ‘무임승차라고 자책하지 마세요. 무임승차하는 사람들로 인해 길은 더 넓어지기도 한답니다. 다음번엔 적극적으로 한걸음만 더 힘을 내주세요’라는 관대함과 격려를 연습해보면 어떨까?
유기적으로 엮인 세상에서 각기 어느 분야에선 변화를 이끌기도 하지만 관여할 수 없는 세계도 엄연히 있고, 마음조차 내기 어려운 곤궁한 경우도 많다. 여러 유형의 삶으로 살아가며 자의든 타의든 무임승차를 하게 된다. 그러니 쉽게 타인의 무임승차를 비난하기에 앞서 우리 모두 덕분에 살아간다는 마음으로 주변을 바라 보는 시선에 온기와 감사를 담아 보자.
내가 누리는 이 혜택들은 나의 시선 닿지 않는 곳에서도 애쓰고 있는 이들, 그리고 새로운 도전에 한걸음 격려를 보태며 성장을 도운 그들 덕분임을 다시 한번 꼭꼭 눌러 새겨본다.
우리는 모두 길을 넓히고 다져가는 무임승차자 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