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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오늘 Feb 08. 2022

26화) 하루의 시작은 옥상 문안인사로부터

[옥상의 자연인이 사는 법 : 도전! 식량기르기]

이 글은, 완벽한 자연문맹이었던 도시인 '나자립 씨'가 옥상에서 식물(식량)을 길러 자급한 1년의 이야기입니다. 아무 생명체가 살지 않았던 녹색 방수페인트 행성이 80여 종이 넘는 식물과 다양한 생태계가 이루어진 옥상 낙원으로 변신한 놀라운 천지창조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주워온 스티로폼 박스에 토종작물을 심고 생태 순환농사로 길렀습니다. 직접 모든 씨앗을 받고 나누었습니다. 그 좌충우돌 재밌는 경험을 나누려 합니다 :)



13째 주 (5.2~5.8)


하루의 시작, 옥상 순시


어김없이 식물 보육원 순시 시작. 하루하루 어느 날도 빠짐없이 놀랍도록 많은 변화들이 있는 옥상이기에 올라설 때마다 무척이나 설렌다.


"오늘은 또 무슨 일이 일어나 있을까?"

우선은 창틀 화분부터 인사한다. 


잘 자라는 카모마일. 그리고 애기 쪽파 하나, 그리고 여러 풀들, 그리고 생명력 무척이나 강한 요놈! 의 싹(오른쪽 하단)이 또 올라왔다. 저 싹은 무서운 것이 정말 무지막지하게 나날이 커지면서 하부에 고구마같이 생긴 덩어리까지 키우는 스케일이 큰 녀석이다. 산에 밭을 이루고 있는데, 용케 작은 그 일부(줄기, 씨앗 등)가 따라 들어왔나 보다. 


산 흙이 조금 섞인 탓에 생물 다양성이 자연히 늘어가는데, 아직까지는 좋다고 생각한다. 다른 풀들은 지켜보려 하는데 요놈만은 바오밥나무를 키우는 격이라 토지의 문제로 어쩔 수 없이 조금 더 자라면 줄기만 잘라주려고 한다.


이제 옥상으로! 

뒷산의 흑표범. 옥상 순시를 하러 올라갔더니, 나보다 먼저 뒷산을 순시하는 존재가 있었다. 

귀여운 흑표범.


옥상 문을 열고 짠! 나갔을 때, 그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따스한 햇살, 오케스트라를 이루는 새소리, 꽃향기와 산들바람, 드넓은 하늘까지. 매일 옥상 나가는 그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이제 옥상의 수많은 어린이 가족들과 하나하나 인사를 할 차례다. 먼저, 쑥쑥 자라는 강낭콩이.

완두콩은 3알 모두 싹이 나왔다. 아마 방금 콩깍지에서 깐 싱싱한 씨앗을 바로 심었더니 건강하게 잘 나온 것 같다. 


오른쪽은 하루가 지난 모습. 이제까지 본 식물들과 조금 떡잎 모양이 달라서 한참을 들여다본다. 무언가 복잡한 느낌! 과연 어떻게 생긴 잎들을 펼치는지 그 구조가 궁금해진다.

씨앗 껍질 모자를 쓰고 점차 커지는 토종 북방 오이의 새싹!

순식간에 커져버리는 무의 잎들에 가려져 기를 눌리고 있는 (아마도) 쥐눈이콩 새싹 2형제. 아무래도 저 콩들을 다른 밭으로 옮겨주어야 할 때가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무 씨앗을 엄청나게 많이 뿌렸고, 하나도 죽이지 않고 계속 밭을 확장시켜서 옮겨 심은 덕분에 옥상은 점점 더 무밭이 되어가고 있다. 부지런히 잎을 따먹을 것이다.

양파 3형제 중에서 2형제에서 싹이 올라오고. 가운데 가장 튼실한 놈의 잎이 분수처럼 솟구치는 모양으로 올라오고 있다.


양파를 아주 오래전에 집 안에서 키워본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야말로, 진짜 처음 키워본 식물이다), 실내여서 그런지 키가 무척이나 크고 꽃을 보지 못하고 말랐던 기억이 있다. 그때 그 모습이 잘 기억나지 않아 양파가 어떻게 자라는지 이번엔 제대로 잘 관찰해보려 한다. 공부할 게 많네!

토종 조선파. 이 쬐매난 놈이 벌써 2갈래로 줄기를 분화시켰다. 아주 작지만 이미 파의 늠름한 모양을 하고 있어.

겨우 깨어난 소중한 로즈마리. 딱 2개 새싹이 깨어났다. 그 많은 씨앗들은 어디 간 건지? 발아가 힘든 종류인가 싶다. 아니면 물에 휩쓸려 흙 구석으로 빠져버렸거나.

바질. 다행히 싹이 너무나 귀한 로즈마리와 라벤더와 달리, 바질 밭에서는 하나 둘 잎이 깨어나더니 동시에 무척이나 많은 새싹이 눈을 떴다! 분명 씨앗은 나올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게다. 깜깜무소식이어서 걱정했지만, 씨앗은 언젠가 나오는구나.

우아한 돌나물 밭.

돌나물과 함께 살고 있는 이름 모를 이 하얀 꽃. 무척이나 작고 예쁘다. 지금 우리 밭에 유일하게 핀 꽃. 밤이면 꽃이 닫히고, 낮에만 활짝 핀다.

이것이 세잎클로버인가!? 요 녀석들도 돌나물 밭에 함께 있다. 따라왔다.

우왕. 점점 더 꽃의 모양을 만들어내고 있는 양배추 조각. 잎 사이사이에서 끊임없이 꽃들이 준비되고 있다. 이 에너지는 도대체 어디서 오는가?

깻잎 첫째. 누군가 뽕뽕 먹었지만, 그래도 괜찮아! 깻잎이가 부지런히 더 많은 잎들을 키워내고 있다.

나비 잔치가 되어가는 적겨자의 밭. 


'겨자 = 갓'이라는 것을 오늘에서야 처음 알았다. 정확한 이름은 '갓'이고, 이것의 씨앗 알맹이들이 '겨자'인 것이다. 그 매콤한 씨앗으로 겨자소스를 만들고!


정말이지 식물 (또 연계된 음식, 과학..)에 대해서 난 알고 있는 것이 너무나 없다. 전무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공부할 것이 많고, 하루하루 새로운 것들을 (남들은 알고 있었을지 모르는 것들) 알게 되면서 깜짝깜짝 놀라고 말할 수 없는 기쁨에 가득 차게 되는 것이다. 올해 입학한 이 학교는 아주 훌륭하다. 학비도 공짜인데, 먹을 것도 주고 알려주는 것이 너무나 많다.

와~ 정말 탐스럽게 익어가는 청경채! 큰형.

푸르른 비타민들의 빛나는 잎들을 바라보고 만지면 기분이 좋아진다.

토종 상추 8형제도 잘 자라고 있다. 조만간 임시 거주민 비타민이들을 마저 다 다른 곳으로 옮기고, 상추 씨앗들을 조금 더 심어야겠다. 


3개도 너무 많을 것이라고 두려움에 떨었던 처음의 모습에서 불과 13주 만에 배포가 아주 커져버렸다. 그냥 용감하기만 한 것이다. 상추가 다 크면 얼마 만해지는지 아직 1학년이라 모르기 때문이다. 어쨌건 그냥 좀 더 심어보기로 한다.

당근이 밭. 무척이나 예쁜 당근 잎. 무섭게 생긴 산에서 온 다른 풀들도 같이 자라나고 있다.

풍성한 토종 자주감자 밭. 잎만 보아도 그 성질이 느껴진다. 아주 단단하고 알찬 느낌의 폭신폭신한 감자 잎.

토종 게걸무들도 씩씩하게 성장 중. 이 하트 모양의 떡잎이 어찌나 튼실하고 햇살 아래 찬란한 빛을 내는지! 감탄. 확실히 일반 무 (다이소에서 산 외국 종자회사에서 온)와 비교가 안된다. 월등히 성장 속도가 빠르고, 잎들도 스케일이 크다. 2배는 더 빨리, 크게 자라는 것 같다.

오! 파 형님들께서 한동안 꽃에 매진하더니 이제 슬슬 다시 새로운 줄기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씨앗을 맺고 익혀가고 있는 꽃들.


이렇게 영원히 계속되는 요술 '파'. 파는 여러 해 살이다. 크게 문제가 없으면 (기후, 습도..) 이렇게 영원히 분화하고 씨를 뿌리고 계속 늘어간다는 말인 것이다. 파와 같은 작물은 정말 마트에서 사야 할 이유가 없는 식물이 아닐까 싶다. 

마늘은 조금씩 줄기는 자라나지만 싱싱한 새 잎은 잘 나오지 않고 있다. 자라긴 하는데 계속 말라가는 느낌이 있다. 이대로 성장을 멈추는 것인가? 공부가 필요하다. 덜 자란 마늘을 심어둔 것이라 조금 더 커지기를 기다려보고 있는 것인데 과연 알들이 굵어졌을지 어쩔지 궁금하다. 조금 더 줄기를 먹으면서 기다려보기로 한다.

머리가 다시 잘 자라고 있는 쪽파들도 몇 가닥 헤어 컷.

달래는 처음부터 줄기가 시들은 것이 많아 불안하더니, 결국 다 말라버리고 요즘 계속 비가 온 바람에 습기 차서 썩고.. 많은 고난을 받고 있길래 안 되겠기에 그냥 알을 꺼내어 먹기로 했다. 2줄기만 남겨놓고 흙 속에 묻혔던 달래 알을 꺼낸다. 


결국 달래의 남은 많은 부지는 당근이들의 땅이 되었다. 당근 밭의 새싹들의 간격들을 조정해 주면서 이곳을 제2부지로 삼아 분산시켜주었다.



오늘의 수확, 가까워지는 새들

짠. 오늘의 수확! 마늘, 쪽파, 달래. 싱싱한 자연.

달래가 무척이나 귀엽다. 이것은 뿌리니, 이대로 계속 두면 또 줄기가 분명 나오지 않을까 싶긴 한데.. 갈등을 잠시 했지만 오늘은 맛있게 먹는 것으로! 고추장찌개 속으로 퐁퐁퐁.


고맙다~ 얘들아~ 잘 먹을게! 잘 먹고 또 너희들을 잘 키워줄게. 그리고 또 먹고. 또 키워주고. 그렇게 너와 나는 구별 없는 존재로구나.

'옥상의 자연인'을 오랫동안 시청자로 관찰하던 동네의 새들도 내가 조금은 친숙해졌는지, 조금씩 과감하게 가까이 오기 시작한다. 이제는 내가 있는데도 괜히 옥상 끝이나 안테나 위에 앉아보거나, 괜히 가깝게 날아가 보거나 하며 은근슬쩍 점점 나에게 가깝게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친근감의 표시라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 점점 새들과 사이가 가까워져 간다.

누군가 흘리고 간 흔적. 비둘기의 털이지 않을까 싶다. 내가 없는 시간 옥상의 모습을 그 흔적들로 조금씩 상상해본다.


식물의 세계에 이렇게 난데없이 눈을 뜨게 되어 광대한 정글에 들어섰다. 이곳은 알게 되면 알수록, 관찰하면 할수록 점점 더 많은 세계가 보이는 '언제나 존재했으나 보이지 않던' 세계인 것이다. 식물에서 시작하여 새, 뒷산의 표범, 수많은 곤충 친구들로까지 시야가 확장되어 가겠구나!


오늘도 이렇게 식물 세계의 새싹, '옥상 자연인'은 매일 놀라며, 새로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다음 편에 계속)



* 이 시리즈 전체 보기 : https://brunch.co.kr/magazine/natoday1


*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는, 이 작가의 비법이 궁금하다면?

[하루한걸음 Daily Project] 소개 & 참여 : https://blog.naver.com/cocolikesun/222636226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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