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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오늘 Feb 09. 2022

27화) 나무꾼의 출근, 씨앗에 대한 생각

[옥상의 자연인이 사는 법 : 도전! 식량기르기]

이 글은, 완벽한 자연문맹이었던 도시인 '나자립 씨'가 옥상에서 식물(식량)을 길러 자급한 1년의 이야기입니다. 아무 생명체가 살지 않았던 녹색 방수페인트 행성이 80여 종이 넘는 식물과 다양한 생태계가 이루어진 옥상 낙원으로 변신한 놀라운 천지창조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주워온 스티로폼 박스에 토종작물을 심고 생태 순환농사로 길렀습니다. 직접 모든 씨앗을 받고 나누었습니다. 그 좌충우돌 재밌는 경험을 나누려 합니다 :)



13째 주 (5.2~5.8)


나무꾼의 출근


나무가 필요하다. 오늘은 나무를 해와야 한다. 


왜냐하면 이제 콩과, 열매 식물들이 싹이 나 버렸기 때문에 어서 뿌리가 더 자라기 전에 지지대를 구해서 꼽아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무게를 지탱하게 하기 위해서, 또 넝쿨 식물은 타고 올라가야 할 나무들이 필요하니까.


자연 그대로의 숲이라면 수많은 이웃 풀과 나무들이 워낙 많으니 흔들릴 위험이 없겠지만, 인공의 도시 - 이 옥상 낙원 - 은 창조주가 부지런히 그에 맞는 천지창조를 빨리빨리 알아서 해주어야 한다.

산에 갈 때마다 한두 개씩 주워오곤 했는데, 웬걸! 집 바로 앞에 가지치기해서 누군가 버려놓은 나무들이 쌓어져 있는 것을 이제야 발견한 것이다.


무엇이나 항상! 그 자리에 원래 있었다. 내가 '보고자 하는' 눈을 떴느냐 아니냐에 따라 그 존재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이다. 이 나무들은 내가 이사 오기 전부터 이곳에 분명 있었다. 그러다가 오늘에서야 이 존재들을 제대로 인식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지나는 사람들에게 있어 이것은 그냥 배경, 쓰레기, 혹은 아예 시야에 들어오지도 않는 그 무엇일 것이다.

하하. 어제 눈여겨보아둔 이 보물을 채집하기 위해 오늘 무기를 들고 비장하게 나왔다. 다이소에서 산 중국산 접이식 미니 톱 만이 현재까지 유일한 무기일지라도 아직까지 내가 필요로 하는 나무들 채집엔 무리가 없다.


길 한복판에서 쓰레빠를 신고 나와 웬 톱을 들고 쓱쓱 나무 무더기를 비집으며 쓸만한 나뭇가지를 골라내는 이 자연인을 보고, 역시나 앞집 할머니는 '저 여자가 무얼 하나'하고 괜히 대문을 열어 이리저리 살피는 척하면서 계속 나를 관찰한다. 100% 따라오는 예상되는 시나리오다.


하지만 분명 관찰자들은 그런 지루함을 5분 이상 버틸 수 없다. 처음엔 호기심과 경계로 딴짓하는 척하면서 (이불 터는 척을 하거나, 누굴 찾는 척을 하거나.., 과감한 이들은 직접 와서 "뭐 하는 거유?" 묻기도 하면서) 매서운 눈초리로 날 구경하지만, 그냥 하염없이 나무 써는 모습이 계속되면 결국 그냥 '뭔가 필요해서 나무 썰어가나 보네.'하고 안심과 함께 지루해진 마음에 들어가 버리는 것이 예외 없는 흐름이다.

역시나 앞집 할머니도 정확히 5분 후 흥미를 잃으셔서 '두리번거리는 척 구경하기'를 멈추시고 들어가셨다.


아! 좋은 물건들 했다. 이렇게 아주 가까운 곳에 활용할 수 있는 것들이 이미 있었는데, 더 멀리 산에서만 찾으려고 했다니! 좀 더 '동네 관찰력'을 분발시켜야겠다.


받침용으로 쓸 두꺼운 나무들과 지지대용으로 쓸 곧고 얇은 나무 몇 개를 겟 하였다. 지지대는 항상 플라스틱이나 알루미늄 등으로 따로 판매하는 것을 사다 쓰곤 하던데, 이렇게 나무들이 쌓여있는데 왜 굳이 인공 품을 만들고 사서 써야 하나 싶다. 위로 벌어지는 갈래의 가지들도 여러 가지 활용이 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가장 자연스럽기도 하고 하여 조금씩 살려두었다.

이번엔 산으로 출장을 나서본다. 비가 온 다음날이어서 그런지, 엄청난 놈이 나를 맞아주었다!


끼악. 소리가 나올 만한 거대 몸집의 지렁이. 하지만, 이놈을 보는 순간 '얼마나 건강한 흙인가! 다행이다.'란 생각이 들었다. 모든 존재는 각자의 삶 자체로 꼭 필요한 역할들을 해낸다. 이렇게 많은 생물들이 부지런히 흙 속을 이리저리 뚫고 다니면서 공기가 통하도록 만들고 흙을 살아있게 만든다. 밟지 않게 조심조심.

산은 보물 천지이다. 누군가 방금 또 기막히게 가지치기를 하여 한 곳에 쌓아두었다. 곧은 나무 몇 개를 골라 또 주워온다.

흐어. 산 입구 공터 끝에서 퍼 오는 그 두 덩이 흙. 항상 거의 허리가 휘어질 지경으로 힘겹게 (라기엔 좀 많이 힘겹게) 집에 도착하곤 하는데,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그 무게가 궁금해져서 한번 달아보았다.


아! 그 힘듦의 이유는 바로.. 10kg였군.


신기한 것은 이제 이 10kg의 느낌을 몸으로 알 수 있어서, 매 보는 것만으로 대략 무게를 측정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음.. 이 정도 느낌은 한 6kg쯤 되겠군. 아니 그것보다는 약간 더 나가는 듯한데, 6.5 정도 되려나? 싶어서 재어보면 6.7kg 나오고! 하하. 나는 이제 반복되는 10kg 이동 수련으로 인하여 '어깨 자동저울 센서'를 장착하였다.

산에 다녀오면 너무 힘들기 때문에 우선 쉰다. 최고로 행복한 이 순간! 


빵 + 커피 같은 고당도 탄수화물, 카페인.. 안 좋은 것들 세트를 순식간에 들이키고 햇살을 맞는다. 옥상의 자연인은 이제 옥상에서 언제나 맨발이다. 오케스트라같이 합창하는 새들의 공연을 들으며 자라나는 싹들과 울창한 숲, 드넓은 하늘을 바라보면 '이 밖에 도대체 무엇이 있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일 중독자, 자연인

자연인의 휴식은 5분을 넘지 못한다. 일 중독자인 자연인은 어느새 무언가 눈에 보여서 또 무언가를 하고 있다. 


흙을 또 한 포대 다 썼다. 이 봉다리들을 모아보고 있는데, 나중에 언젠가 세어볼 것이다. 천지창조에 도대체 얼마 큼의 흙(자본)이 투여되었는지. 


마지막 종착지인 '50리터짜리 유기 배양토'의 거대한 봉다리를 밟고 서서 뒤늦게 설명서를 한번 읽어본다. 이제야 제대로 확인해보는 주의사항. 


"잦은 물 주기를 하지 말고, 표면이 말랐을 때 1번 주면서 아주 푹~ 충분히 주라고, 그리고 세게 가 아니라 살살 천천히 고르게 주라!"라고 되어있다. (자연에서 내리는 진짜 비를 보면 알겠듯이 - 한 방울씩 아주 오래 온다) 이제까지는 매일 한 번씩 계속 물을 주었는데! 아찔한 순간이다. 


옥상이라 무척 뜨겁고 흙 자체가 작으니 매일 주어야 하기도 할 것 같고, 또 너무 습해지면 썩으니 조심해야 하고.. 이 부분은 아직까지 어려운 부분이다. 흙의 수분 상태와 날씨에 따라 그때그때 잘 관찰하여 알아서 조절하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 조금 더 경험이 쌓여야 할 듯싶다.

매일 일이 있다. 이렇게 누구한테 배우지 않아도, 시킴을 받지 않아도 계속 무언가 해야 할 일들이 생긴다.


오늘은 파 화분이 너무 딱딱하니 좀 더 여유 있는 방으로 옮겨주기로 한다.

드디어 바깥을 보는 뿌리들. 으어! 이럴 수가! 파뿌리가 완전히 썩어 부러져나가고 있었다. 흙이 너무 딱딱해지면서 공기도 물도 잘 통하지 않아 과습이 된 것이겠지! 오늘 당장 옮겨주지 않았더라면 파들은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흑흑.


옮긴 방도 이런 일 없이 괜찮을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부드럽게 공기 숭숭 들어갈 수 있도록 신경 써서 가볍게 담았다. 드디어 숨을 좀 쉬겠는 NEW 파방.

토종 얼갈이배추 새싹도 오늘 흙 방으로 옮겨주기로 한다! 무척이나 깊고 넓은 많은 흙이 필요하다. 새싹 나온 것 2개 + 씨앗들을 간격 맞춰 심어주어 방을 마련해주었다. 이제 마음이 후련하다! 후~

강낭콩이 하나는 결국 썩어서 발아가 안되었기에 오늘 새 씨앗으로 교체하여 심어준다. 


이제는 불리지도 않고 그냥 심을 테야. 농사도 무언가 오히려 안 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은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엔 잘 자라나길 바라며!

새로운 방을 또 하나 만들고 있는데, 글쎄 깔망이 떨어져 버렸다. 한없이 계속 쓸 수 있을 것 같던 그 커다란 세탁망들도 벌써 다 쓰고 조각만이 남았다. 끝이 오지 않을 것 같은 우리의 '인생'처럼 말이다.


양파망 2가지 버전과 세탁망의 꼴라보로 조각조각 사용하여 마지막 깔개를 장식해본다.

목화 씨앗. 새싹을 기다린 지가 무척이나 오래되었는데 아직까지 아무 소식이 없어, 그냥! 다 심어버리기로 했다.


따로 발아시키고 뭐하고 하는 것보다, 이제는 그냥 모든 씨앗들은 자연 원리대로 그냥 땅에 심었을 때 오히려 가장 잘 나오는 듯하다. 3알만 심으려 했는데, 안 나오길래 혹시 몰라 추가한 2알까지 총 5알을 심어 본다. 이 중 하나라도 언젠가 나오겠지! 하면서. 목화를 키울 생각에 두근두근 한다.




씨앗을 판다?

오늘도 나익점이 되어, 소중한 토종 목화씨를 다시 소분하여 선물로 만든다. 친절하게 손글씨로 열심히 적은 안내서도 첨부하였다. 새로운 인연을 만나 어디선가 날개를 펼칠 수 있도록! 

그런데, 로즈마리와 라벤더는 씨앗을 추가로 샀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결국 씨앗 발아가 1개씩 밖에 되고 있지 않아서, 고민하다 어쩔 수 없이 추가로 더 구입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직 주위에 씨앗을 얻어올 수 있는 사람이 없다. 한 봉다리에 1000원이나 하는데, 눈에 보이지도 않을 그 작은 씨앗이 겨우 20개, 50개밖에 들어있지 않다. 매우 괘씸하다. 


비록 내 모든 시작은 씨앗을 '돈을 주고 구입'을 할 수밖에 없었지만, 씨앗이란 것은 사고파는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마땅히 풍요롭게 주어진 자연의 선물이다. 그것을 누군가가 '소유'하겠다는 푯말을 세움으로써 (마치 '땅'을 소유하겠다는 어이없는 개념처럼) 생명을 인질 삼아 돈을 내게 만든 것이다. 씨앗을 두 손에서 놓친다는 것은 완벽한 '종속'을 의미한다. 그것은 곧 '식량 주권'의 상실이요, 자신의 목숨이 '남의 손에 달려있다'는 뜻이다. 


보이지도 않는 아주 작은 씨앗 한 알을 50원이라는 미친 가격에 팔고 있는 '로즈마리'와 '라벤더'의 씨앗봉투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 손에 들어온 모든 식물들은 평생 대를 이어갈 것이다. 다시는 씨앗을 돈 주고 살 일이 없을 것이다! 이 망할 씨앗 회사 놈들아!'


"씨앗은 자연이 주고, 직접 받아서, 모두와 나누는 것이다. 생명은 사고파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내가 보여주겠다."

이렇게 자연인은 비장하게 외치며, 오늘의 옥상 일을 마쳤다.


(다음 편에 계속)


* 이 시리즈 전체 보기 : https://brunch.co.kr/magazine/natoday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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