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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픽 Apr 13. 2024

외계문명에게 지구 영화 한 편을 추천한다면?

저는 <타이타닉>입니다.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은 스무 살 무렵 남자친구와 함께 DVD방에 갔을 때이다. 우리는 단지 오래 머물고 싶은 마음에 상영 시간이 긴 것으로 유명한 타이타닉을 골랐다. 한마디로, 처음에는 영화 자체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타이타닉은 점점 우리를 매료시켰다. 우리는 곧 자세를 고쳐 잡았고, 영화가 끝날 때쯤 우리는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감추기 바빴다. DVD방을 나설 때, 우리는 서로를 잭과 로즈라 불렀다. 시간이 지나서 영화를 다시 찾아볼 때마다 나는 언제나 처음 보는 것처럼 이야기에 매료된다. 매번 타이타닉에 새롭게 탑승해 그 때의 감동과 공포와 슬픔과 희망을 느낀다. 


 영화를 처음 봤을 당시에는, 무엇보다 잭과 로즈의 비극적이고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에 매혹되었다. 그런데 영화를 반복해서 볼수록 처음 봤을 때 느낀 것보다 잭과 로즈의 플롯은 전체에 비하면 짧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치 ‘양들의 침묵’에서 한니발이 실제로 등장한 부분은 20분 남짓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충격이랄까. 영화는 잭과 로즈의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그는 일부분일 뿐이고 더 거대하고 복합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

 단순히 ‘선상 위의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로 압축할 수 있는 영화라면 이처럼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에 남고 사랑받을 수 없었을 것이다. 타이타닉의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는 것은 천문학적인 제작비, 아카데미에서의 11개의 트로피 그리고 각종 기록들로도 차고 넘치게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여전히 사람들은 타이타닉을 기억하고 그리워하고 궁금해 한다는 것이다. 자료를 조사하면서 최근까지도 타이타닉의 제작 비화 혹은 명장면들의 영상이 제작된다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물론 나 역시 그 중 하나이다.     


 이처럼 거대한 영화의 플롯을 조각낸다면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시점에서 난파된 타이타닉호의 다이아몬드를 찾고자하는 블록 로베트와 그의 동료들 이야기. 그리고 현재 로즈의 입을 통해 드러나는 과거 타이타닉에서 그녀와 잭의 신분을 넘어선 사랑 이야기. 마지막으로 기술의 발전과 인간의 오만함을 상징하는 타이타닉의 침몰과 그 속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들. 먼저 영화에서 잭과 로즈의 사랑 이야기가 핵심 플롯이 된 것에는 감독의 다음과 같은 의도가 있었다. 제작 당시를 기준으로 타이타닉의 침몰 사건은 약 80년이라는 시간이 흘러있었다. 그 역사적인 비극은 많은 사람들 뇌리에 박혀있었고 그동안 영상 매체로도 제작되어졌다. 때문에 카메론 감독은 먼저 관객이 아주 오래 전 일어난 타이타닉에 대해서 관심 갖게 하기 위해서 사랑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그는 잭과 로즈가 사랑에 빠지는 순간, 관객 또한 그들에게 사랑에 빠지며 그들과 같이 배에 있는 기분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그는 아주 현명한 선택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다음으로 현재와 과거를 오가는 액자식 구성을 택한 것은 타이타닉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주는 교훈 때문이 아니었을까? 감독은 타이타닉 침몰에 대하여 기술에 대한 인간의 오만함에 경종을 울리는 20세기 인류역사의 가장 교훈적인 사건이며, 더욱 진보한 21세기에 여전히 뒤돌아볼만한 가치를 지닌다고 언급한다. 따라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연출은 필연적이었음으로 보인다. 또한 블록 선장과 그의 동료들이 로즈의 이야기를 들으며 점점 매료되는 모습은 마치 관객처럼 리액션을 하는 역할로도 보인다. 마지막으로 타이타닉이 침몰하기 시작하면서 영화는 실제 인물들의 최후를 함께 보여준다. 감독은 당시 희생자들의 영혼을 기리는 의무감 또한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때문에 무엇보다 실제와 가까운 고증에 집착하였다. 재난 앞에 이즈메이처럼 비겁한 선택을 하는 인간과 영웅적이고 숭고한 최후를 맞는 이들의 모습을 고루 담아내며 희생자들을 기리고 인간의 존엄성을 생각해보게 한다. 이 세 조각의 이야기 중심에는 잭의 희생으로 살아남아 고령의 나이에도 여전히 당시를 잊지 못하고 그들을 마음 속 깊이 기리는 로즈가 있다. 



타이타닉이 이토록 오래도록 사랑받는 이유는 거대한 선상을 우리 세계의 메타포로 삼으며 이성 간의 연애 관계를 넘어 인애(人愛)라는 더 큰 주제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기술적으로도 훌륭한 영화이다. 기술은 실재했던 거대한 세계를 보여주기 위해 동원되었고 서사의 시적 효과를 높이는 데 일조하는 것으로 그 역할을 충실히 해냈다. 물론 영화의 플롯과 주제는 기술에 의해 온전히 구현될 수 있었다. 단순히 스펙터클 혹은 정서에만 치중한 영화들과 달리 타이타닉이 구별되는 지점이다. 만일 외계 문명에게 한 편의 상업영화를 소개해야한다면 나는 주저 없이 타이타닉을 보여줄 것이다. 영화 기술을 집대성해서 만들었으며 우리 세계를 거대한 타이타닉에 옮겨 재현해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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