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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Jan 25. 2021

관계가 주는 마법 같은 시간

영화 <선생님의 일기> 리뷰

 사람은 홀로 있을  돌연 아름답지만  아름다움은 곁에 있음이 잠재된 홀로임을 믿는다. 이혜미 시인의 시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사람은 누구나 타인과의 관계로부터 존재의 의미를 찾는다. 설령  존재가 다른 시간 다른 공간에 있다 하더라도 말이다.  하나의 연결고리로도 이어지는 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관계가 주는 마법과 같은 시간들은 아주 사소한 것으로부터 시작되기 마련이다.
 
 니티왓 다라톤 감독의 영화 <선생님의 일기>에선 작은 일기장 하나가  가교 역할을 한다. 배경은 태국의  마을, 드넓은 바다 위에 수상 학교가 하나  있다. 학생들 하나하나를 배로 실어 날라야  정도로 외딴곳에 위치한 수상 학교에 임시교사로 부임하게  전직 레슬링 선수 ( 스크릿 위셋케우 ). 맞지 않은 옷처럼 불편한 교사 자리와 열악한 수상 학교의 환경 속에 지쳐가던 그는 우연히 이전 교사 (레일라 분야삭 ) 두고  일기장을 발견한다. 손으로 꾹꾹 써 내려간 일기장 안에는 이곳에서 혼자 살아가던 앤의 일상과 생각이 담겨있었고  일기와 교감하며 학교 생활에 적응해 나가기 시작한 송은 점차 앤에게 빠져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1  다시 수상학교의 교사로 발령받은 . 그곳에 송은  이상 없었지만 자신의 일기장의 남겨진 송의 흔적을 발견한 앤은 마치 송이 그랬던 것처럼 일기로 그의 모습을 더듬어 간다.

 <선생님의 일기>  스크린 가득 태국 영화만의 감성을 채우며 우리가 이전에 보지 못한 낯선 분위기를 자아낸다. 사람의 흔적조차 찾기 힘든 태국 오지 마을과 도시의 대비,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물의 향연은 태국 영화적 언어가 가진 독특한 매력을 드러낸다. 특히 일기장에 등장하는 생소한 태국어나 수상 가옥  신선한 풍경과 인물에 따른 촬영 앵글의 변화 그리고 여유가 가득한 롱샷에서는 니티왓 다라톤 감독이 그려낸 태국 영화의 섬세한 기교가 엿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선생님의 일기> 관객을 사로잡은  송과   사람이 공유하는 공간이 불러일으킨 몽환적인 시간의 교감으로부터 오는 감정 변화다.  
 
 앤의 일기를     넘길 때마다 교차되어 편집된 앤과 송의 시간은 마치 다른  시간이 함께 일어나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일기로 매개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  사람은 각자의 상상을 양분 삼아 시간을 뛰어넘는 교감을 이끌어낸 것이다. 공간을 따라 흐르는 시간은 일기의  페이지 페이지마다 서려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었고 앤과 송은  가상의 세계에서 정신적인 만남을 갖는다. 수상 학교라는 공간의 공유는 교사로 생활하는 경험의 공유로 이어졌고 일기를 통해 이뤄진 비현실적인 만남은 서로에 대해 알고자 하는 욕망의 씨앗을 심었다. 이는 결국  사람이 일기장 밖으로 나와 현실에서 서로를 찾게 하는 계기가  것이다. 공간과 경험의 공유로 시작된 감정은 홀로 있으면서도 홀로 있지 않다는 사실을 환기시키며  사람이 수상 학교에서의 생활을 이어나가는 동력이 되기도 했다.  

 더불어  사람이 공유한 수상 학교라는 공간은 현실로부터의 도피처라는 점에서 송과 앤의 공감을 증폭시켰다. 애인의 등쌀에 떠밀려 억지로 임시 교사직을 맡은 송은 그녀로부터 도망치듯 수상 학교를 찾았고  역시 현실과 타협하지 못한  유배당하듯 수상 학교를 찾으며 현실과 단절된다. 연인의 변심과 현실의 압박. 누구나 느낄  있는 보편적인 경험이지만 수상 학교라는 특별한 장소는  경험에 특이성을 부여했고 일기를 통해 서로 같은 경험을 지녔다는    사람이 더욱 서로에 대해 마음을 키울  있도록 만들었다. 마음이 힘들 때마다 매번 수평선 너머를 바라보는  사람. 넘실거리는 물결이 가져다준 선물은 그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이었다.
 
 위기에 몰려 부딪힌 삶의 선택에 순간에서 택한 수상 학교 생활. 송과 앤이 원했던  그저 행복한 삶이었다. 수상 학교에서의 삶은 현실의 목소리에 가려졌던  사람의 심장 소리를 키웠고 타인에게 얽매여 있던  사람은 이제  심장 소리에  기울여 움직이기로 결심한다. 사람을 결코 자기 자신의 등을 어루만질 수는 없는 . <선생님의 일기> 선사하는 관계의 마법은 현실에 치여 개인주의에 잠식된 사람들에게 잊고 있던 공유, 공감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아주 작은 일로부터 피어나는 작은 위안.  삶에서 아직 발견하지 못한 일기장을 찾을  있을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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